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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교육

[제4강] 함석헌의 역사학은 성서중심적이지 않다.

by anarchopists 2020. 2. 4.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1/22 09:12]에 발행한 글입니다.


성서적 입장’과 ‘여산진면목(廬山眞面目)


함석헌의 사관은 성서적 입장이 아니다.

함석헌은 ‘성서적 입장’을 인구에 회자되는 송나라 때 동파거사(東坡居士) 소식(蘇軾)의 시에 비유한다. 그가 풀이한 것은 다음과 같다.


횡간성령측성봉(橫看成嶺側成峰/모로 보니 재, 옆에서 보니 봉우리)
처처간산각부동(處處看山各不同/곳곳마다 보는 산 서로서로 다름이)
부식여산진면목(不識廬山眞面目/여산의 참얼굴 알아볼 수 없기는)
지연신재차산중(只緣身在此山中/다만 내 몸 이 산 속에 있음이네)


두 번째 연은 원래 원근고저각부동(遠近高低各不同)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역사이해가 “관점이 변함을 따라 그 보이는 바가 각이(各異)하다”라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서 이 시를 인용한다. 그래서 우리는 중등학생들에게 역사를 가르치는 청년교사의 능란한 교수방법도 엿볼 수 있게 된다. 함석헌의 설명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 사관도 이와 같다.

“이성계의 혁명을 이조(李朝)의 사가(史家)가 보면 건국이지만, 고려사가의 눈으로 보면 탈국(奪國)이다. 예수의 십자가까지도 복음적 입장에서 보면 그리스도의 승리지만, 세상적 입장에서 보면 30청년의 실패사의 종막이다. 고로 역사가 진정한 역사이기 위하여는 몸을 여산중(廬山中)에 두는 것이 아니라 일목(一目) 하에 전산모(全山貌)를 남취(覽取)할 수 있는……어떤 입장에서 세계를 조감하면서 쓴 것이어야 한다.”(1)

여기에서 ‘어떤 입장’이란 ‘성서적 입장’이요 사관이다. 그것을 『성경』구절이 아니라, 굳이 소동파의 시로 풀이해준다. 그리고 사관의 『성경』 중심주의도 거부하지만, 또한 사관도 역사철학으로부터 엄정하게 분리시킨다. 그것은 대학에서 역사교육을 전공한 함석헌에게 너무나 당연한 역사인식인지 모른다.

먼저 역사철학이란 역사를 철학적으로 본다는 것인데, 그것은 18세기의 계몽사상가 볼테르가 무언가를 자기 애인에게 설명해주다가 생겨났다고 전해지고 있다. 함석헌도 “참 의미의 역사철학은 『성서』에만 있지 다른 데는 없다”라는 후지이(藤井武)의 말을 “하나의 참고”로 삼았다고 회고한다.(2) 후지이는 우찌무라의 제자이다. 원로철학자 지명관은 후지이와 그의 『성서에서 본 일본』이 어떤 방식으로든지 함석헌의 「성서적 입자에서 본 조선역사」한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지적한 바 있다.(3)

사관이 있다면, 계급사관과 기독교사관밖에 없다.

그런데 역사철학은 사관과 다르므로 그것은 ‘참고’가 되었을지언정 「조선역사」를 서술하던 함석헌의 ‘성서적 입장’에 어떤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는 없다. 본디 사관이란 세계역사를 통일적으로 일관해보는 특정 관점이다. 예컨대 식민사관이니 한국사관이니 하는 것은 사관의 본질을 벗어난다. 실제로 사관다운 사관이 있다면 물질론에 의한 계급사관과 기독교의 역사관 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함석헌이 사관을 풀이하는 대목에서 ‘여산진면목’을 읽는다. 즉 여산 밖에 ‘나’를 ‘성서적 입장’과 일치시킨다. 시인이 알려주는 것처럼, 여산 속에 ‘나’는 여산의 일부이므로 여산의 전체를 볼 수 없다. 그때 ‘나’는 여산과 구별되지도 않는다. 산을 물이라 하고 물을 산이라 하는 경우이다. 여산의 참모습은 여산의 전체 모습에 있고, 그것은 여산 밖에서 봐야 보인다. 그때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 된다.

이 전체와 부분의 관계를 강조하는 ‘여산진면목’의 관점이 바로 ‘성서적 입장’이다. 그 만큼 보편적이지 특수한 것이 아니다. 그 만큼 합리적이지 『성경』 중심주의 신앙체계와 붙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만큼 역사적 진실을 파악하는 객관적 태도가 ‘성서적 입장’에서 드러나고 있다. 즉 역사적 사실의 객관과 주관, 우연과 필연, 윤리와 가치, 개인과 사회, 관념과 본질 등의 역사인식에 대해서 ‘성서적 입장’은 “전인미답”의 「조선역사」를 만들어낸다.

그 무렵, 신채호의 「상고문화사」는『조선일보』에 연재를 시작하고(1931), 백남운은 계급투쟁론으로 동경에서 『조선사회경제사』를 출판하고(1933), 실증주의를 내건 이병도는 진단학회(震檀學會)를 창립한다(1934).

또한 문일평은 『조선일보』에 「사안으로 본 조선」을(1933), 정인보는 『동아일보』에 「오천 년 간의 조선의 얼」을 선뵈인다(1936). 그들의 관점과 서술은 다양하다.
그러나 역사학자 베인의 말대로 역사학의 방법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학은 어떤 요구사항도 가지지 않기 때문에 진실만 추구하면 된다. 그래서 역사가 실망스러운 지식이 나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1. 함석헌, “사관”『聖書朝鮮』(1934년 3월호)
2. 함석헌 회고 녹취록(날짜미상)
3. 지명관, “함석헌의 조선사관에 대한 고찰”,『씨알의 소리』(2000년 5ㆍ6월호)

이치석 선생님은
함석헌의 역사관
* 이치석 선생님은, 프랑스 아미앙대학교 역사학 박사과정(D.E.A)수료하였으며, 함석헌의 "씨알교육"을 우리나라에 보급하려 애써오셨다. 현재"씨알의 소리"편집위원으로 계신다

* 저서로는『씨알 함석헌평전』『전쟁과 학교』가 있고, 공저로는『황국신민화교육과 초등학교제』외 다수가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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