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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민족

[제3강] 그리스도교민족주의의 동태화와 함석헌

by anarchopists 2020. 2. 7.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1/14 09:3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의 그리스도교민족주의와 통일민족주의-3]


그리스도교민족주의의
동태화와 함석헌

그리스도교민족주의의 동태화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종교적 신앙의 측면과 민족적 양심의 측면이 결합하여 형성된 ‘그리스도교민족주의’는, 시대의 ‘반동적 권력’들이 인민에 대한 압제를 달리할 때마다 이에 저항하는 태도 또한 달리하였다.(이만열, 1981) 개화기 그리스도교민족주의는 근대학교를 설립하여 조선의 청년들에게 민족공동체가 직면한 민족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민족의식과 자주독립의식을 고취시켜 주었다.

일제침략기는, 식민지사회가 일반적으로 겪는 조직적 공백 상태에서 ‘상대적 자율성’을 유지하고 있던 종교조직을 민족주의운동의 제도적 공간으로 제공하였다. 그리고 민족해방운동기는 독립운동 지도자계층에게 민족해방을 위한 민중기의를 기획하고 실천하는 원동력을 제공하였다. 이렇게 해서, ‘그리스도교민족주의’는 ‘항일민족주의’와 결합하여 조국의 해방을 가져왔다.

그러나 민족해방기 한반도는 국제적 현실 속에서 ‘민족주의의 완성’을 못 본 채 불행하게도 분단조국이라는 고난의 역사를 또 다시 만나게 된다. 그리고 반동권력들은 반공독재 - 군부독재 - 개발독재로 동태화하면서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인민을 압제하였다.

이에 ‘그리스도교민족주의’는 해방정국 초기부터 분단조국을 극복하기 위하여 반동권력들에 저항하였다. 함석헌의 평안남도건국준비위원회 용천자치위원회 위원장직 수행 및 그리스도교 목사와 장로들의 건국준비위원회 위원장직 수행이 그것이다. 그러나 북 지역의 그리스도교는 공산주의와 갈등을 겪으면서 남하하여 ‘반공주의’로 고착하는 역사의 오류에 빠진다.(김경재, 2005)

그러다가, 남북지역의 정치ㆍ경제ㆍ사회적 변동기를 맞는 1970년 초반에 들어와서 그리스도교는 반공주의에 대한 자기성찰과 함께 ‘그리스도교민족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게 된다. 즉 반공ㆍ안보논리적 신앙노선을 강화하면서 군사정권의 지지세력으로 작동하는 보수계열의 그리스도교에 대항하여 인권신장과 민주화운동, 나아가 민족통일문제에 관심을 보이는 정의로운 세력들에 의하여 ‘그리스도교민족주의’가 재가동하게 된다.


그리스도교민족주의와 함석헌의 '씨알의소리'

여기에는 함석헌과 김재준ㆍ박형규ㆍ문익환 등 목사와 지학순 천주교 주교 등이 주축을 이룬다. 이들은 《민주수호국민협의회》(1970.4.19)을 결성하여 남지역의 민주화와 통일운동을 이끈다. 이때 함석헌은 《씨알의 소리》(1970.4.19)를 통하여 민족ㆍ민주ㆍ통일에 대한 ‘신앙의 양심’을 대변해 갔다.(함석헌, 1985) 이어 함석헌은 《민주회복국민회의》(1974)에 참여하여 이 나라 민주주의 운동에도 적극 나선다. 그리고 그 실천을 위해 <3·1민주구국선언>(명동사건, 1976. 3) (1979)에 직접 개입하고 이에 연루되어 재판에 회부되는 등 많은 탄압을 받았다.

그리고 1980년대에 들어오면 이들 정의로운 세력의 ‘그리스도교민족주의’는 ‘5.18민주화운동’에 자극을 받아 인권ㆍ민주화운동과 함께 민족통일운동을 함께 전개해 나간다. 이 때문에 이들은 반통일의 반동권력에 의해 투옥되기도 한다.(문익환 목사의 단독평양방문사건, 1989.3) 이렇듯 ‘그리스도교민족주의’는 민족동란과 반공독재ㆍ개발독재ㆍ자본독재 등 반동권력들에게 오랜 시간 시달리면서 거의 멸살(滅殺)당하는 수준까지 이르렀지만 끈질기게 살아남아 수구자본권력ㆍ반공분단세력ㆍ분단국가주의 세력과 대항하여 싸워왔다.

그 결과 1988년 이후 비로소 민족통일운동의 한 축으로 되살아나 민족통일을 가로 막는 대내외의 강제적 분단세력들에 저항하는 평화적 ‘통일민족주의’로 승화ㆍ발전하게 되었다. 특히 함석헌은《씨알의 소리》를 통하여 ‘한국의 지성’을 결집시키고 씨알들을 조직화하였다.


이와 같이 정의롭지 못한 지배권력에 대한 함석헌의 저항정신은 곧 그리스도교민족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함석헌의 ‘정의의 실천’은 마침내 50년간의 반공독재ㆍ군부독재ㆍ자본독재를 물리치고 평화적인 정권교체(1998)를 이루게 하는 정신적 힘이 되었다.

한국사회의 ‘민족주의’는 보편적 담론이 될 수 없음은 사실이다. 그리고 영원불멸하는 이데올로기도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 역사의 발전단계와 우리민족이 현재 처한 상황으로 볼 때, 민족주의는 그 순기능을 계속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곧, 유럽사회와 달리, 한반도는 미국 등 주변외세의 탄압과 방해로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민족주의의 미완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한국의 ‘민족주의 완성’은 조국통일이 되어야 완성된다. 이런 마당에서 친일ㆍ친미적 성향의 경제학자들과 일부 설익은 역사가들이 ‘탈민족주의 운운’하는 것은 분단조국에서는 아직 시기상조이다.

[참고자료]
1. 이만열, <한말 기독교인의 민족의식 動態化과정>,『민족주의와 기독교』, 민중사, 1981
2. 함석헌, <한국 기독교는 무엇을 하려는가>,《함석헌전집》제3권,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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