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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민족

[제2강] 그리스도교민족주의 성립배경과 특질

by anarchopists 2020. 2. 7.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1/13 09:3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의 그리스도교민족주의와 통일민족주의-2]


그리스도교민족주의
성립배경과
특질


그리스도교민족주의는 항일민족주의다

한국에서 ‘그리스도교민족주의’가 성립되는 시대적 배경은 20세기 전반기 조선사회가 일본제국주의에 의하여 침략당하고 있던 역사적 현실에서 발생한다. 당시 조선 땅은 조선인으로서는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보금자리였으나, 그리스도교도로서는 하느님이 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었다. 그런데 그 땅이 외세에 의하여 약탈당하고 있었다.

같은 운명적 현실에 직면하게 된 그리스도교와 한국민족주의는 서로 감흥(感興) 되었다. 그리스도교는 신앙적 토대에서 볼 때 고난에 처한 민족문제를 외면할 수 없게 만들었다.(閔庚培, 1978) 그리고 민족해방운동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던 독립운동가와 한국 지식인들은 종교적 이유에서보다 위기에 빠진 조국의 현실 타개를 위한 새로운 가치관의 모색과 선교사가 가지고 온 선진문명에 대한 사회적 기대치를 안고 교회를 찾았다. 이리하여 그리스도교 교회는 신앙적 교인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정치ㆍ경제적 피난처로 생각하는 ‘비신앙적 교인’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한말 이후 일제침략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의병활동 및 계몽활동의 한계를 목도(目睹)한 일부 지식층은 치외법권적 영역이면서 상대적 자율성이 보장되고 있던 그리스도교 교회를 찾아 세례를 받고 ‘목적의식적 교인’이 되었다. 또 중인계층ㆍ중소상공인ㆍ도시 소시민층들도 교회를 찾았다.

“그리스도교(기독교)는 조선의 민족적 위기상황에서 도입되고 수용되었기 때문에 의식분자 형성과정이 여기에 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천부인권의 긍지, 이제까지 경험할 수 없었던 인간에 대한 보람, 민족에 대한 자긍심을 부여해 주었다. 즉 그리스도교는 한국인에게 윤리적 판단력이나 섭리적 신앙의 경세적(經世的) 희망 같은 것을 줄 수 있는 강력한 새 가치의 비전이었다.”라고《독립신문》(獨立新聞)에서 지적했듯이(1898년 12월 23일 논설) 당시 조선의 중간계층도 이 땅에 막 들어온 교회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았다.

이들 ‘목적의식적 교인’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성경을 통하여 정의ㆍ자유ㆍ독립과 평화의 이념을 체득하였고 민족주의에도 눈을 뜨게 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조선의 그리스도교 교인들은 신앙의 터전 위에 조국의 독립을 유지하고 회복하려는 ‘항일민족주의’를 갖게 되었다. 이들의 정신구조 속에는 종교적 신앙의 측면과 민족적 양심의 측면 모두를 가지게 되었다.

때문에 그리스도교 교인이 조선의 국권회복운동ㆍ실력양성운동ㆍ민족해방운동에 참여하는 것은 곧 그리스도 교인으로서 참여하는 신앙적 양심의 측면과 민족구성원으로서 참여하는 애족적 책무의 측면 모두를 내포한다. 따라서 일제가 한민족에게 폭압적 식민통치를 강화할수록 그리스도교 교인의 종교적 신앙의 측면과 민족적 양심의 측면이 상보적(相補的)으로 상승 작용하여 신앙적 양심은 민족적 책무를 강화시켰고, 민족적 책무는 종교적 신앙심을 더욱 심화시켜주었다.(이만열, 1990) 이러한 일제 강점하의 고난 속에서 연단(鍊鍛)되고 심화된 불가분의 신앙심과 민족의식은 ‘그리스도교민족주의’를 탄생시켰다.

민족에너지가 그리스도교민족주의로 분출하였다.

한편, ‘그리스도교민족주의’가 탄생하는 배경에는 그리스도교의 천부인권설도 한몫을 했다. 서재필은 《독립신문》 논설에서 “그 나라에 사는 사람은 모두 그 나라 백성이므로 백성마다 얼마만큼 하나님이 주신 권리가 있는데 그 권리는 아무도 뺐지 못하는 권리요”라는 그리스도교적 천부인권설에 영향을 받은 논설을 싣고 있다. 그리스도교가 당시 조선사람에게 준 가치관은 그리스도교적 천부인권사상에 기초한 하느님 앞에 누구나 평등하다는 ‘사민평등’ (四民平等)의 윤리였다. 즉 그리스도교적 인간존엄이었다.

당시 조선의 중산층은 신분적으로 사회진출의 기회가 봉쇄되어 있었기 때문에 양반 중심의 신분구조로부터 탈출을 갈망하고 있었다. 그리스도교 교회는 하류층 서민계급을 서구 그리스도교의 금욕주의 윤리로 교육시키고 훈련하면서 이들을 서구적 시민계급으로 만들어갔다. 이것이 이제까지 한국에 없었던 근대적 시민, 곧 국가와 사회에 책임의식을 갖는 주체적 시민으로서 창조적 인간상을 만들어냈다.(민경배, 1974)

이렇듯 그리스도교의 가치관에서 보여주고 있는 천부인권설, 인류평등설은 일제침략에 대항하는 한국인의 저항적 민족에너지와 결탁하게 만들었다. 즉 조선의 19세기 후반 러시아ㆍ일본ㆍ중국ㆍ영국 등 세계열강이 호시탐탐 조선침략의 기회를 노리면서 압박해 들어오는 역사적 현실 속에서 그리스도교는 국권과 인권, 그리고 기본생존권의 유일한 지탱자요 방파제로서 조선민족에게 거대한 에너지를 제공하면서 신앙의 토착화를 이룩해 나갔다.

(민경배, 1978)

이렇게 해서 조선에 들어온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교 이념을 바탕으로 조선의 민족공동체가 직면하고 있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민족주의와 결합하면서 ‘그리스도교민족주의’로 나아가게 되었다. 그래서 이들 그리스도교신자는 그리스도교적 체험으로 종교적 가치가 내면화된 신앙적 토대 위에 민족해방운동을 실천하였다. 일제의 강압으로 고난을 받고 있는 같은 민족공동체 구성원들의 고통을 벗게 해주는 것이 곧 ‘하나님의 뜻’이라고 인식하고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여러 차례의 민중기의(民衆起義)에 합세하게 된다.

이렇듯 한반도의 근대화과정에서 수용된, ‘자유ㆍ평등ㆍ평화ㆍ해방’의 이념을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기반으로 민족공동체가 처한 현실적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지성적ㆍ이념적ㆍ문화적 이데올로기를 ‘그리스도교민족주의’라고 한다.

[참고자료]
1. 《독립신문》1897년 3월 9일자 논설
2. 민경배, 한국민족교회형성사론』, 연세대학교출판부, 1974.
3. 閔庚培, “韓國基督敎와 그 民族敎會 成立”,『論文集』8-제1편 인문사회과학 편-(숭실대 학교, 1978)
4. 이만열, <3.1운동과 한국기독교>,《基督敎思想》,199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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