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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교육

[제3강] 한국역사의 주체는 민중이다.

by anarchopists 2020. 2. 4.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1/21 09:15]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의 ‘성서적 입장’은
성서주의가 아니다

'조선역사'는 기독교 전파의 목적이 아니다.

함석헌은 한국역사의 기조(基調)를 고난이라고 확신한다. 마치 음악의 어떤 기본 음조(音調)와 같이 한국역사는 고난이 기조를 이룬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선이라는 악기”가 내는 소리를 고난으로 나타낸다. 이 고난의 역사를 한국사학자 천관우는 「조선역사」를 “어떤 특정한 사관을 가지고 한국사를 일관되게 꿰뚫어 본 거의 유일한 역사책”이라고 평가한다.(1) 그러나 그는 자신이 발견한 고난의 역사를 “전인미답”이요 “참으로 견딜 수 없는 슬픔”으로 받아들인다. 그 충격을 다스리는 물길트기가 ‘성서적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함석헌은 그때의 일을 다음과 같이 회고한 적이 있다.


어떤 날 어떻게 된 것인지도 모르게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고난의 메시아가 만일 영광의 메시아라면, 고난의 역사가 영광의 역사가 될 수는 어찌 없겠느냐?’ 나는 십자가의 원리를 민족에게 적용해보기로 하였습니다.(2)

그의 ‘성서적 입장’은 성서주의가 아니라는 말이다. 말 그대로 「조선역사」는 고난의 역사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틀로 ‘성서적 입장’이 필요했다는 뜻이지, 기독교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저술된 것이 아니다.

까닭에 「조선역사」가 메시아사상 혹은 기독교신앙으로 서술되었다는 것은 본질을 크게 벗어난다. 가령 한국사학자 이만열은 「조선역사」를 “일종의 신 중심의 역사관이나 역사서술”이라고 비판한다.(3)

그러나 서양사학자 노명식은 「조선역사」가 “종교이론을 통하여 비로소 분석할 수 있는 그러한 저작이 아니”라고 본다. 그래서 “의도적으로는 아니더라도 자기의 민족주의를 다소라도 감추기 위해 섭리사관이니 고난사관이니 하는 외장이 필요”했을 가능성을 제기한 적이 있다.(4)

그렇다면, 이런 현실주의가 도리어 독자들에게 ‘성서적 입장’을 성서주의로 착각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이에 따라 ‘성서적 입장’을 성서주의로 본다면, 「조선역사」를 신앙의 도구로 전락시킬 수 밖에 없게 된다. 그것은 예수가 “어린이처럼 되라”고 한 것을 ‘어린이가 되라’고 착각한 것과 다르지 않다. 진실에 대한 왜곡은 참다운 기독교신앙도 아니다. 함석헌은 다음과 같이 「조선역사」의 저술동기를 밝힌 적이 있다.

“하나님 믿는데 거짓말 할 수 없지, 한국 사람인데 한국민족 버릴 수 없지, 과학적 사실은 믿지”(5)

함석헌의 역사의 주체는 민중이요 조선사람이다.

말하자면, 그에게 기독교신앙은 진실을 찾는 원천이다. 그 진실은 민족주의사학과 합리적 이성이 창조한 ‘조선사람’으로 태어난다. 그리고 착함과 용감함과 인자함을 ‘조선사람’의 본성이라고 그려낸다. 「조선역사」에서 ‘조선사람’은 민중과 동의어이다. 민족의 토대를 이루는 민중은 민족주의시대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함석헌은 이탈리아 건국운동과 진리파지(satyagraha)운동이 메시아사상과 함께 「조선역사」를 구성하는 세 요소라고 밝히고 있다.(6)

마찌니의 민중과 간디의 불가촉천민(harijan)이 ‘조선사람’의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조선역사 전 기간에 걸쳐 일어난 역사적 사건의 중심에 ‘조선사람’을 놓는다. 이 경우는 아마 다른 역사책에서 찾아내기 어려울 것이다.

과연 함석헌에게 역사의 주체는 민중이요 ‘조선사람’이다. 메시아도 아니고 하나님도 아니다. 민중이야말로 조선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관통하는 「조선역사」의 실체이다. 따라서 민중신학자 안병무는 그들을 ‘반역자’로 파악한다.(7) 그때까지 반민중적인 지배층 중심의 조선역사에 반역하기 위해서 창조된 역사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묘청과 홍경래가 대표적이다. 그들은 영웅이 아니라 민중의 집단정신(mentality)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역자’는 메시아사상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기독교신앙을 수용하기 이전의 사건이기 때문이 아니라 기독교신앙의 도구로 삼지 않았기 때문이다. 메시아는 「조선역사」의 중심도 아니고 사건의 주인공도 아니다. 즉 함석헌의 ‘성서적 입장’은 사건 자체에 개입하지 않는다. 단지 사건의 의미를 풀이하는데 도움을 줄 따름이다. 독자들도 사건의 인과관계 설명이 아니라 고난에 처한 ‘조선사람’의 집단정신의 향방에 눈길이 끌린다. 그래서 에세이로 읽히기도 하고, 역사적 사실의 정확성 때문에 비판을 받기도 한다.

요컨대, 「조선역사」의 기조는 고난이며, 그 주체는 ‘조선사람’이다. 고난의 메시아는 구원의 희망을 제공할 뿐,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없다. 성서주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은 교조적인 모든 ‘주의’를 거부하는 사상가 함석헌의 태도와 일맥상통한다.

1. 천관우, “함선생의 한국사관”,『씨알의 소리』1971년 12월호
2. 『함석헌전집』1권, 한길사.
3. 이만열, “한 역사학도에게 비친 함석헌선생” 『씨알의 소리』1991년 2월호.
4. 노명식, “한국의 역사가, 함석헌”,『한국사시민강좌』제26집, 일조각, 2000.
5. 함석헌(필자의 녹취록/날짜미상)
6. 『함석헌전집』1권, 한길사.
7. 안병무, “순수와 저항의 길” 『씨알인간 역사』한길사, 1882

이치석 선생님은
함석헌의 역사관
* 이치석 선생님은, 프랑스 아미앙대학교 역사학 박사과정(D.E.A)수료하였으며, 함석헌의 "씨알교육"을 우리나라에 보급하려 애써오셨다. 현재"씨알의 소리"편집위원으로 계신다

* 저서로는『씨알 함석헌평전』『전쟁과 학교』가 있고, 공저로는『황국신민화교육과 초등학교제』외 다수가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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