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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평화

[제3강] 민족을 사랑한 민족주의자, 세계주의자 함석헌

by anarchopists 2020. 2. 9.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8/12/08 23:55 함석헌을 ]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의 세계화시대 민족의 갈길
민족을 사랑한 민족주의자 / 세계주의자 함석헌


김영호(함석헌씨알사상연구원장, 인하대명예교수)



함석헌은 일찍이 오늘날의 세계화를 미리 내다본 예언자였다.

“이때까지 인류 문화는 정치에서 국가지상, 민족지상을 부르짖는 배타적인 국가주의와, 종교에서 저만이 유일의 진리라 주장하는 정통주의적인 종파주의에 의하여 되어왔다. 이제부터는 그런 것이 없어질 것이다. 세계는 모든 민족과 말의 차별 없이 한 나라가 될 것이다. 종교는 결국, 모든 종교는 하나요, 그 하나가 가지가지의 나타남에 지나지 않는다는 세계종교가 되고야 말 것이다....우물 안 개구리 같은 광신자나 협잡적 야심가인 정치가나 종교가가 아닌, 적어도 이성의 소유자라면 이것이 인류가 나아가는 길로 대세가 결정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썩어지는 씨알이라야 산다')

지금은 보편화된 다원주의 담론이 서구에서 일어나기 전에 그는 이미 다원종교관을 정립하고 있었다. 그의 선견지명이 나타나는 대목이다. 이러한 변화는 이미 배타주의에 시달려온 서구사회에서 활발히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세계종교는 대학의 기초과목이 되었다. 그런데 우리사회에서는 모두 아직도 종파주의의 가면을 쓰고 있다. 원만상이 아니고 세모돌이, 네모돌이 얼굴들이다. 앞으로 올 새 종교는 둥글고 무색하다고 함석헌은 말했다.

그러나 이것만인가. 함석헌의 예언대로 세계화의 물결이 한국사회를 온통 휩쓸고 있다. 너도나도 영어에 몰입하고 왜래 문물에 정신을 잃고 있다. 거스릴 수 없는 세계화 물결 속에서 우리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어떻게 유지하며 살아갈 것인가. 함석헌은 민족과 국가에 대해서 어떤 입장이었나.

한국역사를 새로 쓰고 나라의 독립과 민주화를 위해서 평생 싸운 애국지사였다. (그의 유해가 대전 현충원의 애국지사 묘역에 묻혀있다.) 우리말과 문화를 사랑하고 귀중하게 여겼던 한국인이었다. 그래서 민족문화와 세계주의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관계를 함석헌은 어떻게 풀고 있나. 그의 말을 들어보자.

“나는 민족주의는 아닙니다. 세계주의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세계라도 인격 없는 역사, 문화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인격은 특정적이지 일반적이 아닙니다. 세계의 일원이 되기 위해 나는 나여야 할 것입니다. 세계적이 되면 변할 것입니다. 민족성도 달라지고 문화도 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달라질 때는 달라져도 그때까지는 나의 서는 자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온고지신(溫故知新)’입니다.” (함석헌전집14, 327쪽('씨알')

민족과 인류의 갈 길에 대하여 더 이상 합리적이고 명쾌할 수 없다. 세계화의 와중에서 자칫 잃기 쉬운 민족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 분명한 지침을 제공한다. 요즘 한창 논의되는 대로 ‘생각은 지구전체로, 행동은 지역적으로’ 해야 한다는 ‘세계와 지역의 조화론’(glocalism), 다양성이 전제된 통일성(unity in diversity)의 문화원리를 이미 제시한 선구자였다.

민족주의에 대한 태도는 양가적이다. 그는 좁은 민족(지상)주의자는 아니지만 열린 민족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누구나 통과해야할 민족주의 시대에 자기 소명을 다한 민족주의자면서 거기에 머물러있지 않았다. 그래서 민족주의를 넘어설 자격을 갖추게 된 것이다.

민족주의는 넘어서야하지만 그때까지는 민족이 민족으로서 맡은 역할을 충실히 다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분단된 민족의 통일도 이루어져야 한다. 분단은 우리의 정신분열증이다. 그는 애초에 고구려가 아닌 신라에 의한 통일로 본래의 영토를 잃어버리게 된 것이 민족의 역량과 정신의 축소를 초래했다고 보았다. ‘한’ 민족과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게 된 원인을 제공했다.

그의 민족주의는 독특한 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문화민족주의이다. 문화가 빠진 민족주의는 허구일 뿐이다. 이 점에서 김구와 일치한다. 그는 민족문화의 핵심도구인 우리말의 가치를 높이 선양했다. 그 뜻은 무엇인가.

“죽은 말을 캐어 살려보려 애써야, 그러는 동안에 생명이 살아납니다. 죽은 어머니의 귀청을 두드리며 “어머니, 어머니” 하는 것은 말을 듣자는 것이 아닙니다, 목숨을 듣자는 것이지. 그래 죽은 어머니를 깨우려 할 때 내가 영어 한다고 “mother, mother” 하겠습니까? 어머니를 깨우려면 어머니의 말로 해야지. 말은 생명입니다. 말은 사랑입니다. 그래 나는 모두들 “미스, 미스” 하니 한국엔 아가씨 없다, 미국놈 다 줘 버렸다 합니다.”

이 비유 속에 심오한 언어철학과 생명사상이 내포되어있다. 요즘의 외국어 중시와 우리말 경시 풍조에 대한 경고인 셈이다. 우리말을 점차 잃어버리고 있다. 잃어버린 옛말도 살려내야 한다. 그가 왜 한자와 외국어보다는 될 수록 한글을 쓰려했는지 그 깊은 뜻을 알 수 있다. 그는 늘 말과 글이 일치(言文一致) 되는 스타일로 민중언어를 구사했다.

그 과정에서 함석헌의 사상체계에 핵심적인 용어가 된 ‘씨알’이 등장한다. 그는 지배자와 정치가들이 잘못 써먹어버린 ‘인민’, ‘국민’, 그리고 ‘민중’을 대치하는 새 말로서 ‘씨알‘을 살려냈다, 그 개념 속에 그의 다양한 사상의 갈래들이 합류된다.

‘알’ 속에 동서 철학의 진수가 통합되고. 본체와 현상, 신과 인간 등 대립개념들이 ‘천인합일’(天人合一), ‘범아일여’(梵我一如) 사상처럼 함께 융화된다. 인간처럼 신도 자라나고 진화하는 존재다. ‘씨알’ 속에 함석헌의 역동적인 신관, 인간관, 종교관, 세계관, 인식론, 전체론(holism), 상생(같이 살기)운동, 비폭력사상, 공동체주의, 세계주의 등 다양한 사상과 실천방법론이 배태되어 있다.

따라서 이 씨알은 민족의 울타리 안에서만 자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새 인류의 씨앗이 될 이 품종을 세상에 널리 뿌리자는 것이다. 그 태동 과정에서 우리가 겪고 있는 “오늘 현실의 의미는 인류의 장래를 위한 그 씨을 닦아내자는 데 있다.” 함석헌이 뿌린 이 씨알을 움트게 하고 길러서 꽃 피우고 열매 맺게 하는 일은 ‘참(진리)의 바통’을 받은 후세대에게 넘겨진 몫이다. (지금까지 그를 따르고 기념한 성과가 무엇인지, 종합평가와 깊은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마치 한글날 기념식만 하고 정작 한글의 보존, 발전, 연구는 소홀히 한 것과 같은 격이 아니었을까. ‘바통’을 받기나 한 것인가. “너희가 진정 내 뜻을 아느냐?”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내일은 [제4강] 총체적 혁명과 탈바꿈이 필요한 시점- 혁명과 갈아엎기를 외친 함석헌이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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