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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일요 시론, 시평

제2의 6.25를 만들지 말자.

by anarchopists 2020. 1. 4.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12/26 06:56]에 발행한 글입니다.


제2의 6.25전쟁을 만들지 말자

이명박 권력이 들어선 뒤 어느 하루도 한반도에 평화가 깃드는 날이 없었다. 급기야 또 다시 한반도전쟁이 눈앞에 다가온 듯한 불안이 엄습해 온다. 글쓴이는 6.25전쟁의 피해자 중 한 사람이기 때문에 6.25가 다시 회상된다. 6.25가 달래 일어난 게 아니다. 역사적 입장에서 관찰해 본다.

1949년 이후, 분단세력인 김일성은 연일 조국통일을 부르짖고 있었다. 그리고 같은 분단세력이었던 이승만 또한 북진통일을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쌍방이 연일 남북분단선인 38선에서 총기를 쏘아댔다. 이러한 한민족의 불쌍하고 못난 모습을 주변 강대국들은 교묘하게 이용했다. 소련은 한반도를 사회주의 영향권에 두어야만 잠재적 적국 일본을 견제하면서 아시아 전체를 사회주의세력권에 둘 수 있다. 또 미국은 공산주의 세력의 전아시아로 확장을 막기 위해 일본을 자본주의 방어선의 보루로 만들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동서이념의 냉전구도 속에서 한반도는 강대국에 이용되었다. 그런데 한반도 내부에서는 이러한 강대국들의 속셈도 모르는 채, 민족간 서로 총을 겨누며 으르렁댔다. 이것을 두 이념적 강대국, 곧 미국과 소련이 이용 안할 이유가 없다. 결국 한반도는 강대국의 이익에 이용되었다. 미국은 한반도를 자유주의 수호선에서 제외시켰다. 에치슨 라인(한반도는 미국의 태평양 방위선에 들어가지 않는다.)의 발표다. 사회주의연맹(북한 소련 중국)들은 이에 자극되어 38도선을 밀고 내려왔다.

한반도는 전쟁터가 되었다. 엄청난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400만명 이상) 그리고 재산이 소실되고 집들이 파괴되었다. 어린애들이 제 부모를 잃고 거리에서 울부짖는다. 다리가 잘리고 팔이 부러지고 온몸이 다쳐 상처치료도 못한 사람들이 거리에서 고통에 신음하고 있다. 민족상잔의 비극이었다. 결국 동서이념의 충돌로 빗어진 6.25전쟁으로 희생이 된 자들은, 군인으로 나간 우리 서민민중들이고 산 자들은 권력자와 강대국이다. 그리고 강대국의 이익만이 남았다. 오늘날이 그때 그 모습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인다.

지금 연평도 연해에서 남측의 한미연합에 의한 합동훈련과 사격훈련이 그렇다. 또 북측에 의한 연평도 포격사건이 그렇다. 미국과 이명박 정부, 그리고 사회주의연맹세력(러시아, 중국)들이 연일 서로 강경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6.25와 같은 역사적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한반도가 전쟁터가 된다면, 전쟁의 주체는 6.25처럼, 우리가 아닌, 자본주의연합세력(미국과 일본, 그리고 남한)과 사회주의연맹세력(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북한)이 되리라 본다. 지금 한반도의 권력자들의 역사인식에 대한 무지가 지금 또 다시 한반도를 전면전쟁 위기의 직전상황으로까지 몰고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이 든다.


글쓴이는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늘 그렇게 말해왔다. "이제 한반도에서 전쟁은 없다. 화평과 평화적 통일뿐이다." 그 이유는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의 평화정책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서 이러한 글쓴이의 가르침은 거짓이 되고 말았다. 정치적 목적이 되었던, 권력연장의 속셈이 되었던 국민을 전쟁의 볼모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전쟁은 비극 자체이다. 권력자들은 지하벙커가 있지만 우리 서민들은 지하벙커가 없다. 지배층과 관료들은 군대에 가서 총을 쏠 염려가 없지만, 전쟁이 나면 전쟁터에 끌려가는 사람들은 우리 서민들이다. 결국 전쟁이 끝나서 죽는 자는 서민이지만, 산 자는 지하벙커에 있던 권력자와 정치관료들이다.

죽은 자의 시체 위에서 우는 자 누굴까? 다리가 절단되어 병상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자 누구일까?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괴로워할 자 누구일까? 하루아침에 엄마와 아빠를 잃고 거리에서 울며 엄마를 찾는 애는 누구일까? 그 누구는 모두 애꿎은 남북의 민중들이 되리라. 가난하고 먹기 살기 어려운 서민들이 되리라. 그리고 여성과 아이들이 되리라. 전쟁이 나면, 맨 먼저 재앙을 뒤집어쓰는 사람들은 가난한 민중들이다. 나약한 여성과 어린이다. 도망갈 수 없는 노인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한반도에서 제2의 6,25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그 동안 한반도 평화를 열망하는 사람들의 노력과 염려의 덕으로 한반도 정세는 잠시나마 평화를 누려왔다. 그러나 또다시 한반도에 이념에 의한 긴장분위기가 돌고 있다. 두 분단고착세력들이 남북7.4공동성명을 통해 유신독재와 세습독재를 탄생시킨 기억이 되살아온다. 지금 한반도는 세습정권의 안정과 당 독재를 획책하는 세력들이 양립하면서 서로의 권력연장을 위해 한반도에 전쟁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북의 인민과 남의 국민들은 권력의 희생자가 아니다. 고귀한 생명들이다. 이제 우리는 개개인의 생명과 자유와 자율을 소중히 여겨지는 시대로 가고 있다. 권력자들의 이익을 위해 이 소중한 생명들이 목숨을 빼앗기는 시대는 지나갔다.

국가의 가치보다 한 개인의 가치가 더 소중하다. 그래서 개인의 자유와 자율을 해치고 자연을 파괴할 수 있는 전쟁은 반대되어야 한다. 이 땅의 주인은 민중이다. 이 땅의 자유의 주체는 우리다. 그래서 국가, 그 지배자는 개인의 자유를 구속할 우려가 있는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 국민 개개인의 의사에 반하는 '전쟁 불사', '북한은 붕괴한다'는 발언을 해서는 안 된다. 어떠한 전쟁발발의 공포분위기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개인의 심리적 불안을 조성하여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위협하는 발언이 되기 때문이다. 국가의 권력자라 할지라도, 국민 개개인의 의사에 반하여 ‘전쟁을 원하는 국가, 또는 그 세력’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국가의 권력자들은 전쟁을 막고 평화를 유지할 책임만 있지, 전쟁을 일으킬 권리는 없다. 한반도는 이제 예처럼 강대국을 위해 희생하는 땅이 아니다. 한반도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은 자율적으로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 이 점을 국가 권력자들은 알았으면 한다.(2010.12.26.아침, 취래원농부)

취래원농사는
황보윤식(皇甫允植, 醉來苑農士)
학생시절부터 민족/통일운동을 하였다. 동시에 사회개혁에도 관심을 갖고 생명운동을 하였다. 나이 60을 넘기자 바람으로, 도시생활을 과감히 접고 소백산(영주) 산간에 들어와(2010) 농업에 종사하면서 글방(書堂, 반딧불이서당)을 열고 있다. “국가보안법폐지를위한시민모임”, "함석헌학회" “함석헌평화포럼”, “함석헌평화연구소”에도 관여를 하고 있다. 글로는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2017) 등 다수의 글이 있다.(수정 2018. 10.3) /함석헌평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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