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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환경

[제2강] 환경문제와 씨알정신 - 정신이 문제다.

by anarchopists 2020. 2. 3.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2/03 09:0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의 사상을 생태적으로 읽기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중심으로


2. 환경문제와 씨알의 정신_“모든 문제는 결국 정신 문제다!”

씨알은 대지에서 움트는 생명력이자, 인간 본성을 자라게 하는 정신 에너지입니다. 그 정신은 자신을 자유롭게 할 뿐만 아니라 우주를 놓아두는 초월성을 지녔습니다. 이에 함석헌은, “사람은 정신이요, 정신은 자유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올바른 정신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라면,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들을 구속하고 소유하려는 자세를 버립니다. 그래서 먼저 사람 자체가 정신이 되어야 합니다.

정신이 된 사람, 정신이 된 씨알이어야 비로소 모든 생명의 죽임을 지양하고, 온갖 죽음의 문화를 삶의 문화로 전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의 표현대로 “죽음을 죽음으로 알지 않으므로 정신이 된다”고 말할 수 있는 씨은 죽음까지도 넘어서는 자유로운 정신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씨알은 “제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민족의 시작이자, 기틀이라고 함석헌이 말한 것처럼, “제 생각”은 바른 생각, 온전한 생각, 자주적인 생각, 생명의 생각으로 볼 수 있습니다.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인간학적 태도는 바로 환경운동가와 그러한 운동에 동참하는 모든 사람들이 “제 생각”을 갖는 것입니다. “제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생명이 인(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함석헌의 주장대로 생명에 대한 ‘아가페’의 발로가 되는 것입니다. 씨알이 “제 생각”을 가진 자유로운 정신이 된다면 씨알의 행위는 자연히 생명 일반을 향한 생명적인 행위가 묻어날 것입니다.

함석헌은 말합니다. “고난의 역사는 고난의 말로 써라.”  그런데 인간의 삶의 역사만이 고난의 역사가 아닙니다. 환경의 역사도 고난의 역사입니다. 그 동안 우리는 ‘자연을 통해 주시는 하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았던 짐승이었고, 짐승만도 못한 죄수’였기에 자연이 고난을 당한다는 의식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인간의 역사뿐만 아니라 환경의 역사도 고난의 말로 써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 고난의 언어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바로 씨알의 정신입니다. 씨알의 제 생각입니다. 씨알이 “제 생각”을 갖고 산다면, 자신만이 씨알이 아니라 씨알을 씨알되게 했던 그 근원인 우주를 참 생명의 씨알로 여길 수 있을 것입니다.

3. 환경문제와 새로운 인간학_우주의 씨을 체험해야 합니다!

‘자연을 어떻게 인식하느냐’라는 인식론적 사유는 자연을 생명으로, 살아-있음으로 바라보는 생명 인식의 근본적인 물음입니다. 자연에 대한 생명 인식론적 사유는 자연의 ‘격’(格)을 달리 할 수 있는 중요한 인식의 전환이기도 합니다. ‘격’은 자연의 ‘자리’를 인정하고, 자연의 생명‘다움’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연에 ‘격’을 부여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인간의 ‘인격’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인간의 인간다움과 인간의 자기 본래성, 인간 그 고유의 자리를 인정받고자 한다면, 오히려 우주 전체의 ‘자리’(格)에서 인간의 ‘자리’(格)를 물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인격은 ‘환경인격’, ‘생명인격’, ‘생태인격’이 되어야 합니다. 인간에게만 ‘격’(格)이 있고, 자기 자신다움이 있다는 것은 인간의 오만입니다. 그러한 인간이 환경의 근본적인 문제를 가져왔고, 또한 그 문제조차도 치유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의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제로는 먼저 새로운 인간학이 요청됩니다. 필자는 그 새로운 인간학의 단초를 함석헌의 씨알사상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계속 연재됩니다, 김대식)
김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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