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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상태 박사 칼럼

정치인은 투표하는 유권자를 두려워 한다.

by anarchopists 2019. 11. 20.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4/11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是非의 진실

주기적으로 《한국고전번역원》에서 보내주는 〈고전포럼〉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그때마다 생각을 다양하게 해준다. 우선 그 이야기를 전제한다.

"시비(是非)의 진실이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고 해서 단정 지어도 안 되며, 한 사람의 말이라고 해서 버려서도 안 된다." (是非之眞 不可以衆口斷 不可以單辭棄)

이 글은 성호 이익(星湖 李瀷, 1681~1763)의 《星湖全書》, 〈觀物〉篇(성호전서, 관물편)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학생들과 수업을 하면서 꼭 요구하는 주제가 하나 있다. 모두에게 동의를 받지 않아도 좋으니 주관적으로 사물을 바라 볼 수 있는 자신만의 눈을 가져라. 지금은 어렵지만 자꾸 훈련하다 보면 주관적으로 바라본다 하더라도 객관성을 담보로 하고 있는 주관적인 눈은 언제나 통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온통 혼란스럽다. 마치 방촌 황희(尨村 黃喜, 1363~1452) 정승처럼 행동하지 않으면 참으로 살기 힘들겠다는 생각이다. 네가 말한 것도 옳고, 또 네가 말한 것도 옳고. 그럼에도 우리는 시시비비를 가리기를 원하는 것이 많다. 그런데 그 시시비비라는 것이 절대 선이고 절대 악이지도 않다는 사실에 약간은 혼란스럽다. 때문에 성호 선생도 시비의 진실을 가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이야기 하며 신중에 신중을 기할 것을 언급한 것이다.

요사이 다행스럽게 인터넷이 발달하고 사이버 공간이 활성화되면서 자신의 견해를 표출할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해 졌다는 점에서 그 혼란을 줄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다. 한편으로 아직도 우리는 그 혼란의 늪 속에서 헤쳐 나오기에는 조금은 더 성숙되고 훈련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다만 다양성을 표출할 수 있고 정화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논의의 장이 계속 유지되어야 하는 것은 우리는 아직 이런 논의의 공간을 제대로 가져 본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왕정시대에는 시민의 힘을 제대로 표출하기가 쉽지 않았다. 왕정이 끝나고 식민지시기가 왔다. 이 시기에는 더더구나 시민의 의식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해방이 왔다. 그리고 갑자기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위한 보통선거권이 시민들에게 주어졌다. 투쟁하지 않고 훈련되지 않은 시민의 권리가 갑자기 우리 앞에 등장하면서 시행착오를 겪은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진정한 민주사회를 만들지 못했고, 많은 시간 불행하게 지내왔다. 이제 그런 시행착오는 지나온 시간만으로도 족하다. 그렇치만  앞으로 오는 인간 삶의 모습은 이제껏 어느 누구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것이다. 그래서 또다시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을 것이고, 그에 대한 대가도 각오해야 한다. 이 때문에 권리와 책임과 의무를 명확히 이해하고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학생(젊은이)들에게 자신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주관적 판단을 위한 준비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들이 다음 세계를 이끌고 나아갈 주역이기 때문이다.

오늘, 2012년 오늘, 이 나라의 선량을 뽑는 선거 날이다. 모두들 고민들이 많을 것이다. 누구를 뽑아야 한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기도 어렵다. 최소한 객관성을 담보로 한 주관적 판단을 해야 할 시간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선거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다시금 생각하면서 지난 시간의 착오를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선거후 또 내 가슴을 치면서 후회하지 말아야 한다. 인간의 삶은 똑같이 반복될 수 없다. 언제나 조건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해서 자신의 잣대가 필요한 것이다. 그 잣대는 나름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사족으로 모 선관위 홍보계장이 했던 말을 옮겨 본다. ‘정치인은 투표하는 유권자만 두려워한다’(2012.4.11., 김상태)

김상태 선생님은
김상태 선생님은 인문학(역사: 한국근대사)을 전공하였다. 현재 사단법인 <인천사연구소> 소장 겸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이외 기호일보 객원논설위원과 함석헌학회 학술위원을 겸하고 있다. 현재 인하대에 출강하고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 본문 내용 중 사진은 한겨레(12. 4.10일자)에서 따온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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