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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박정환 목사 칼럼

정치인들, 정치가 뭔지 아는가

by anarchopists 2019. 12. 3.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10/31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정치(政治)를 정치(正治)하라!

이성복 시인은 〈산〉이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세상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가장 더러운 진창과 사람들의 손이 닿지 않는 가장 정결한 나무들이 있다 세상에는 그것들이 모두 다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함께 있지 않아서 일부러 찾아가야 한다 그것들 사이에 찾아야 할 길이 있고 시간이 있다." -이성복 시집 《그 여름의 끝》(문학과지성사, 1990)

이상은 높고 현실의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이상과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조화롭게 할 것인가? 갈등하는 오늘날의 현실 속에 이상적인 정치가를 찾는다. 아니 만나고 싶다. 그 분의 진정한 정치의 의미를 알고 행하는 진실된 정치를 보고 싶다. 그런데 쉽지 않다. 내가 눈멀어서 그런가?

한문에서 정치(政治)를 한다고 할 때 정치 정(政)은 바를 정(正)자와 칠 복(攵)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의 복(攵)은 원래 아버지 부(父)의 변형으로 문자의 오른쪽에서 부수 노릇을 할 때는 攵(복)으로 변신한다. 대게 攵(복)변이 있는 문자는 행동, 지도, 리드, 통솔 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므로 연상을 해보면 이 말의 뜻은 ‘바르게 지도한다’는 의미이다. 잘못되어가는 아들을 매를 대어서라도 ‘바르게 인도한다’라는 뜻이리라.

또한 다스릴 치(治)자는 물 수(氵)변에 태아 태(台)자로 구성되어 있다. 태아에게 물은 생명 그 자체다. 양수가 없이는 태아의 생존은 불가능할뿐더러 또한 성장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다스릴 치자(治)의 의미다.

그러면 정치를 한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정치를 한다는 것의 전제 조건은 정치는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치는 적어도 두 사람 이상의 공동체가 필요한 것이다. 두 사람 이상이 존재하는 조직에 정치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정치의 의미는 첫째, 정치는 그 조직체를 바르게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바른 길로 가게 조정하고 타협하고 인도하는 일, 즉 정의로운 길로 가게 하는 것이 정치다. 둘째, 정치는 바로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태아에게 물이 절대불가결 하듯이 정치를 한다는 것은 바로 정치력이 필요한 곳에 정치를 함으로서 인간의 생명이 살아나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한자에 나타난 정치의 뜻이다.

유명한 옛 글이 있다. 굴원(屈原)이란 사람의 〈어부사(漁父詞)〉라는 것이다. 그는 마음이 곧고 맑은 사람으로 초(楚)나라 국무총리 노릇을 했는데 처음에는 임금이 신용하여 그의 말을 잘 들었다. 그러나 나중에 임금이 되지못한 놈의 쏟아놓는 말을 듣게 되자 울분을 참지 못해 번민하다 멱라수라는 강에 나가 가슴에 돌을 안고 물속에 뛰어들어 죽었는데, 〈어부사〉란 그때의 심경을 그린 것이다.

속이 터질 듯 답답해 견딜 수 없는 굴원은 강가로 나와 넋두리를 하며 배회하다 물속을 들여다본다. 물에 비친 얼굴은 시들고 몸은 바짝 여위어 예와 같지 않다. 그때 고기잡이 늙은이가 지나가다가 보고 깜짝 놀라 묻는다.

"당신 저 유명한 삼려대부(三閭大夫: 중국 전국시대 초나라에 왕족인 소씨昭氏)ㆍ굴씨屈氏)ㆍ경씨景氏) 등이 있었다. 이들 세 집안三家의 비리를 단속하는 고위직 관리를 일컬음-필자 주) 아니오? 어쩌다 이 지경이 됐소?"

"세상이 다 흐린데 나 홀로 깨끗하고, 모든 사람이 다 취했는데 나 홀로 정신이 맑아 그래 쫓겨난 거요.“

“나는 들으니 성인(聖人)은 세상과 잘 어울려 살아간답디다. 세상이 다 흐리면 한가지로 흐린 물속에 들어가 물장구를 치며 놀고, 모든 사람이 다 취했으면 한데 들어 먹고 마시고 하면 그만일 것을 혼자 깊이 생각하고 높이 서 있어서 스스로 내쫓겼음을 입을 것이 뭐요.”

굴원이 대답했다.

“내 들으니 목욕한 사람은 그 옷을 떨어서 입고 모자의 먼지를 털어서 쓴답니다. 내 이 깨끗한 몸으로 어찌 그 더러운 먼지를 뒤어쓸 수 있소. 차라리 저 물 속에 들어 고기 배에 장사를 지내면 지냈지 그 더러움을 그대로 받고 싶은 생각은 없소.”

어부는 그 소리를 듣고 휘적휘적 노를 저어가면서 노래를 불렀다.

“창랑물 맑으면 내 갓끈 씻고, 창랑물 흐렸다 하면 내 발 씻지.”

그리고 서로 헤어진 다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상 〈진실을 찾는 벗들에게〉, 《함석헌 전집 18》 334-335쪽에서)

오늘날의 한가지로 썩은 사회에 있으면서도 그 취하는 태도는 서로 다르지 않는가? 굴원은 대단히 대쪽 같은 비타협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어부는 현실주의적인 대중노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현실적인 그런 주장을 펴고 있다. 이 글을 대할 때, 이 나라의 정치가라면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사뭇 기대가 되면서도 궁금하다. 이 땅의 정치가들이여! 바름을 세우고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정치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비록 돌을 품고 물속에 들어가는 길이라 할지라도 이 땅의 정치가들이여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제발 정치(政治)답게 정치(正治)하소서!(2011. 10.31, 박정환)

박정환 목사님은
박정환 목사님은 1960년대 초반에 태어났다. 영남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후, 영남신학대학교와 장신대 신학대학원(목회연구과)을 거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생태영성을 연구하여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지금은 대구가톨릭대학교의 강사이면서 포항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측) 포항바다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바다’라 함은 “바름과 다름”의 합성어다. 박목사님에 대한 보다 더 자세한 정보는 cafe.daum.net/seachurch에서 얻을 수 있다.

또한 박목사님은 사회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어 <교회개혁실천연대> 등에서도 활동을 하고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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