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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박정환 목사 칼럼

인생의 흔적, 그것은 아름다워야 한다

by anarchopists 2019. 12. 6.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10/16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바보새와 인생의 흔적

인생의 곳곳은 흔적으로 이어진다. 삶 자체가 흔적을 남기고 지우고 또 다시 남기는 삶의 연속이다. 그래서 삶은 켜켜이 쌓인 흔적의 무게이다. 두께이다. 언젠가 고속도로 휴게소에 쓰여 있는 문구를 보았다. ‘아름다운 사람은 떠난 자리도 아름답다’

“호사유피 인사유명”(虎死留皮하고 人死留名이라).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인간이 산다는 것은 결국 저마다의 삶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물질로, 권세로, 미모로, 지식으로, 달란트로 저마다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 한다. 하지만 인간사가 어찌 자기의 뜻대로 되기만 하던가? 어쩌면 그것들은 물처럼 흐르고 바람처럼 사라지며 모래처럼 흩어지기 일쑤다.

그러나 시대를 밝히고 누군가를 울린 감동의 흔적은 지울 수없는 문신처럼 짙게 새겨진 것을 볼 수 있다. 바람에 실려, 빗줄기를 따라 흔적 없이 사라진 것 같지만 어느 날 문득 다시 바람을 타고, 빗줄기를 타고, 햇살을 따라 떠오른다. 그것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씨알 사상을 주창한 함석헌!

그는 그의 이름 외에 또 하나의 이름이 있다. 그 아호는 대게가 그 사람의 인격을 대신해 주기도 한다. 함석헌의 아호는 ‘신천’(信天)이라는 이름이다. 신천이란 무슨 말인가? 하늘만을 믿는다는 이름이다. 그 스스로 ‘바보새’를 자처했다. 그 신천이라는 이름을 얻기까지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그의 스승인 남강 이승훈에게 털어놓은 이야기이다. -김병희, 《씨의 소리》 p.275.

“선생님, 저는 신천옹(信天翁)이라는 바보새가 좋습니다. 신천옹이라 이름한 이유는 이 놈이 날기는 잘해 태평양의 제왕이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고기를 잡을 줄 몰라서 갈매기란 놈이 잡아먹다 이따금 흘리는 것을 얻어먹고 살기 때문입니다. 그래 일본 사람은 그 새를 바보새라고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이유는 이 바보새란 이름 때문입니다. 어쩌면 제가 사는 꼴도 바보새 같다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은 푸른 하늘에 가 있으면서 밥벌이 할 줄은 몰라 여든이 다 되어 오는 오늘까지 친구들의 호의로 살아가니 그 아니 바보새입니까?” -함석헌, 《서풍의 노래》 p.349.

바보새는 나는 새 중에선 따를 자가 없을 만큼 커 ‘전설의 새’로 불리는 앨버트로스(Albatross)의 별명이다. 90㎏가량의 거구와 2~3m에 달하는 큰 날개 때문에 걷는 모양새가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데다 사람을 겁내지 않는 온순함 때문에 남태평양 선원들은 바보갈매기라고도 부른다.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도 자신의 운명을 지상에 유배되어 조롱의 대상이 돼버린 앨버트로스(Albatross)를 빗대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자주 뱃사람들은 장난삼아/거대한 앨버트로스를 붙잡는다/
바다 위를 지치는 배를 시름없는/항해의 동행자인 양 뒤쫓는 해조를…/
야유의 소용돌이 속에 지상에 유배되니/그 거인의 날개가 걷기조차 방해하네.’

미래의 누군가가 오늘 나의 흔적을 찾아낼지 모른다. 세상에 비밀이 있을까? 아무리 덮어도, 가리고, 지우려 해도 남는 것이 있을 것이다. 무엇일까? 그것이 인생의 흔적이다. 우리 모두는 자기 삶에 ‘흔적’으로 그림을 그린다. 그것이 내 인생이다. 시대가 고단할수록 삶이 힘들고 치열할수록 그 흔적도 깊지 않을까? 오늘도 우리는 흔적을 남긴다.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하는 이 한 날! 과연 나는 어떤 흔적을 남길 것인가? 당신의 흔적은 어떻게 남을 것인가?(2011. 10.16, 박정환)



● 함석헌평화포럼에서 박정환 목사님을 새 필진으로 모셨습니다. 박 목사님의 글을 많이 애독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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