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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취래원 농사 칼럼

젊은이들이여, 역사의 명령을 받으라

by anarchopists 2020. 1. 1.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1/13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젊은이들이여,
역사의 명령을 받으라.

“반전과 평화데모를 외치며 거리로 몰려나와 교통질서를 마비시키는 그대들이 과연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를 수구세력으로 폄훼할 자격이 있는가... ”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풍요로움이 그 분들의 희생과 수고가 있었기에 가능하기에 나라님을 비롯한 50, 60대....그 분들께 감사함을 전합니다.”

위 글은 2006년 4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있을 때 인터넷상에 떠돌아다니던 <50ㆍ60대의 아픔>이라는 제목의 글이다. 참으로 황당무계하고 해괴망측(駭怪罔測)한 글이다. 아직도 ‘인간의 권리와 자유’보다 ‘교통질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서글픔이 인다. 또 있다.

“평생 모은 1백억 원대의 재산을 군에 모두 기증한 90살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이 돈으로 첨단 무기 연구소가 설립됐는데요. "인생은 유한하지만, 나라는 영원하다.", 이 할아버지가 남긴 말입니다. (mbc,11.01.12) 어제 뉴스에서 mbc가 한 말이다.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시대의 발전과 변화를 읽어내지 못하고 아직도 낡은 우상인 국가주의와 반공주의에 젖어 있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씁쓸함이 인다. 너무 아까운 100억이라는 돈을 학생들 공부하는데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갖는다. 하여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에서 이 나라 젊은이들에게 바로 보는 역사인식을 하나 이야기해 본다.

“50~60대의 아픔”이라는 글을 다 소개할 수 없어 유감이다. 이 글을 보면 지극히 감상적 내용을 통하여 우리 사회의 본질을 왜곡ㆍ호도하고 있다. 앞글의 내용은 마치 이 나라 경제 부흥이 박정희 때문으로 미화하고 있다. 그래서 ‘5.16군사쿠데타’도 ‘혁명’으로 미화시키고 있다. 그리고 70년대 서독에 광부와 간호사를 파견하고, 미군 대신 월남에서 우리 젊은이를 총알받이로 희생시킨 것도 이 나라 경제 부흥을 위해 당연한 것처럼 말하고 있다. 경제성장만 하면 인간목숨은 파리 목숨이 되어도 괜찮고, 자유를 박탈해도 괜찮다는 말이다. 개인의 권리는 국가발전을 위해서는 희생되어도 괜찮다는 무식의 소치를 드러내놓고 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일제강점시대 친일파 박정희가 일본침략군의 장교가 되어 수많은 우리 독립투사와 민족주의자들을 잡아가두고 두들겨 팬 사실은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적고 있다. 이러한 사람들 때문에 친일파요, 유신독재, 반공독재, 군사독재자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가 설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는 박정희 부패독재권력 때문에 수많은 인재들이 인권을 유린당하고 숨져갔다. 뿐만 아니라 박정희의 독재로 이 나라 민주주의(국가중심보다 인간중심의)가 수십 년 뒷걸음 쳤다. 박정희 군부독재와 그 일당들은 ‘경제성장제일주의’에 빠져 인간의 기본권을 무시했다. 인간답게 살 삶의 권리도 무시했다. 지네들은 안가(安家)에서 계집 끼고 술 처먹으면서 온갖 잡소리를 다 해쳐놓고는, 우리 민중들이 술집에서 “더러워서 못살겠다고 말만해”도 빨갱이라는 누명을 씌워서 감옥에 보냈다. 그 때는 방범대원이 팔뚝에 완장을 차고 서슬이 퍼렇게 설치던 시대였다. 그래서 완장이 무서웠던 시대이다. 학교에서 주번이 ‘주번완장’만 차도 으스대던 시대이다.

오늘 우리 경제는 부정축재의 만연, 빈부격차의 심화, 매판자본의 집중, 부패자본과 부패권력의 유착 등 악순환이 꽈리처럼 꿰돌고 있다. 이것이 독제권력의 장기집권을 위한 박정희의 계획경제정책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왜 모르는지 모르겠다. 이 때문에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은 그 피해를 고스란히 입고 있다. 빈부격차의 심화, 사회안전망 취약, 개혁ㆍ진보에 대한 정서적 억압, 친미편향적 외교정책과 공안탄압, 양극단의 한반도 정국 등 부정적 사회현상들이 바로 우리가 입고 있는 피해이다.

박정희 독재권력은 가시적 경제효과를 위하여 수많은 노동자들의 권리를 침탈하고 유린하였다. 이 때문에 50~60대는 인간다운 삶을 거부당한 채 비참한 삶을 강요당해왔다. 이 나라의 경제성장은 박정희라는 한 개인과 무관하다. 1960~70년대는 전 인류사회가 달나라에 가고, 경제성장을 하는 변화의 시간을 맞고 있던 때였다. 따라서 우리 민족도 세계역사의 발전단계를 맞아 급변의 시간을 갖는 것은 당연한 역사적 이치였다. 경제성장과 개인의 영도력을 연관시키는 것은 낡은 영웅주의 사관이다. 우리는 다른 나라가 발전할 때 우리도 함께 발전할 수 있는 저력을 가진 민족이다. 영웅이 있었기 때문에 나라가 발전한 것이 아니다. 민족의 내재된 힘, 즉 3.1운동과 4.19혁명과업을 완수한 민중의 역량이 순기능적으로 발전하여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을 가능케 하였다. 다시 말하면 우리나라는 박정희가 아니라도 경제발전을 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ㆍ역사적 요청이 있었다는 말이다.


박정희가 이른바 ‘유가자본주의’식으로 자본주의를 이식시키지만 않았더라면, 우리 경제는 보다 정직한 경제윤리와 양심적 사회질서를 확립하였을 것이다. 박정희의 존재 때문에 오히려 우리 사회는 비도덕적이고 비양심적인 사회로 악화되었다. 그래서 부조리가 순환고리를 이루고 있는 사회, 부(富)가 일방적으로 특수층에 집중되어 있는 사회, 노동자가 부당한 대우를 받는 사회, 부적절치 못한 공기업이 유난히 발달된 사회가 된 것은 모두 박정희 장기집권에서 빗어진 잘못된 경제정책 때문이다.

이제 마무리를 하자. 한국의 50~60대 사람들은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넘어가는 과도기에서 친일파요, 군부독제권력자인 파시스트 박정희로부터 희생을 강요당한 불쌍한 역사적 존재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젊은이들이여, 일터에서 그대들의 권리를 찾을 수 없거들랑은, 단결하라, 그리고 투쟁하라, 그대들의 인격이 존중되고, 삶의 가치가 존중되는 그날까지 싸워야 한다. 국가보다 그대들 개인의 권리와 인격이 더 소중함을 알아야 한다. 그대들은 나약하게 독재자에게 굴종하면서 그게 굴종이요 노예라는 것도 모르고, 비굴하게 살아온 50~60대 너희 아버지세대를 결코 닮지 마라. 이것은 역사의 명령이다. (2006. 4. 8, 초고, 2011. 01.13 아침 마무리, 취래원농부)

취래원농사는
황보윤식(皇甫允植, 醉來苑農士)
학생시절부터 민족/통일운동을 하였다. 동시에 사회개혁에도 관심을 갖고 생명운동을 하였다. 나이 60을 넘기자 바람으로, 도시생활을 과감히 접고 소백산(영주) 산간에 들어와(2010) 농업에 종사하면서 글방(書堂, 반딧불이서당)을 열고 있다. “국가보안법폐지를위한시민모임”, "함석헌학회" “함석헌평화포럼”, “함석헌평화연구소”에도 관여를 하고 있다. 글로는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2017) 등 다수의 글이 있다.(수정 2018. 10.3) /함석헌평화연구소

* 본문 내용 중, 사진은 인터넷 네이버에서 따온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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