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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취래원 농사 칼럼

세계가 꿈틀거린다. 우리도 함께 나아가자

by anarchopists 2019. 12. 27.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3/11 07:58]에 발행한 글입니다.


세계가 꿈틀거린다.
우리도 함께 나아가자!

세계가 꿈틀거리고 있다. 가장 수구적이고 부족적 전통을 가지고 있는 중동아시아가 꿈틀되고 있다. 이집트가 30년 독재자 무바라크((Hosni Mubarak, 1928~)를 몰아냈다. 중동의 민주화 도미노가 계속되고 있다. 바레인, 오만,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끝내 리비아의 카다피(Muammar Abu Minyar al Qaddafi, 1942~)가 축출위기에 놓여 있다. 중동의 민주화 도미노에 미국이 배후세력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렇지만 민주화는 세계가 거쳐 가야 하는 ‘미래를 향한 여정’이다. 구시대의 청산이다. 이것은 세계일류가 근대주의를 완성하고 새로운 세계로 향해가는 필연적 과정이다.


세계가 맨 먼저 꿈틀 거린 곳은 유럽이다. 꿈틀거림이라는 말은 피지배층의 자각이라는 말이다. 곧 밑으로부터 변혁운동이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다. 이후 유럽은 시민혁명을 거쳐 근대를 만들어냈다. 유럽이 만들어낸 근대의 특징은 법치주의, 민주주의, 자유주의다. 이러한 시대사조에 영향을 받아 시민사회가 만들어진다. 근대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시민에 의한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자본주의 생산양식도 성립한다. 곧 자본주의 경제사회가 된다. 종교개혁에 수반하여 민족주의도 탄생한다. 민족주의는 17세기 영국에서 처음 그 양태를 드러내면서 유럽민족주의가 본격화한다.

이러한 근대정신은 19세기 제국주의화한다. 제국주의 근대유럽은 아시아를 비롯한 여타지역으로 영토침략을 해 간다. 아프리카, 소아시아, 동북아시아, 동남아시아, 중동 아시아로 그 침략이 이어진다. 곧 유럽과 유럽화한 근대국가에 의해 아시아지역이 식민지가 되었다. 여기서 식민지 민족주의가 발생하고 각 지역에서 민족해방운동이 일어났다. 이 결과 식민지해방이 일어난다.(1945년 이후) 그리고 이들 지역은 왕정을 폐기하고 민주주의를 성립시켰다. 그러나 독재 권력들의 헛된 욕망과 비인간적 통치행위로 이 지역은 근대주의의 전착(纏着)이 지체되었다. 다시 말하면 인간발전 단계에서 한걸음 뒤처지게 되었다.

동아시아의 한국에서 먼저 근대주의를 완성시키기 위한 몸부림을 쳤다. 독재 권력을 몰아내고 인간답게 살기 위한 몸부림이다. 4.19혁명(1960)이다. 그러나 인간지배에 희열을 느끼는 금수 같은 권력자의 광분한 지배욕구로 한 동안 한국의 인민들은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그렇지만, 정의롭고 강한 자유의지를 가진 한국 인민들은 더 이상 광분하는 독재권력을 용남하지 않았다. 박정희의 군부독재권력에 인민의 분노의 저항이 일어났다. 부마항쟁이다(1979) 이것이 기폭제가 되어, 신군부 독재권력에 저항하는 5.18 광주민주화운동(1980), 6월항쟁(1987)과 선거를 통한 민주혁명(1997, 2002)이 일어났다. 그리고 민주정권이 들어서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한 아직도 정신보다 물질을, 사람보다 저본을, 자유보다 통치를 최고 가치로 여기는 덜 떨어지고 야비한 짐승 같은 정치꾼들에 의해 한국의 근대정신(민주주의, 자유주의, 자치주의)의 완성은 아직 멀었다.

한국에 동남아시아도 근대주의 완성을 위한 몸부림이 있었다. 필리핀의 2월 혁명(1986), 태국의 5월 혁명(1992), 그리고 버마(미얀마)의 민주화운동(2007년 이후)이 그것이다. 이제는 아시아의 근대주의 완성을 위한 몸부림은 중동아시아로 옮겨갔다. 석유자원을 독점하고 부와 권력과 행복을 독식하던 중동의 야만적 독재 권력자들을 몰아내기 위한 인민들의 피의 투쟁이 시작되었다.

근대주의는 오랜 시간을 거쳐 완성의 단계로 간다. 근대주의의 다음 단계는 인간해방이다. 인간의 정신을 속박하고 인간의 정서를 구속하고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어떠한 인위적인 정치조직은 사라져야 한다. 물질주의에서 정신주의로, 자연파괴에서 자연과 조화로 가야한다. 인간이 새로운 삶의 형태를 가지기 위해서는 지금의 먼저 근대주의를 완성해야 한다. 그리고 탈근재주의로 가야 한다. 탈근대주의의 첫걸음은 근대주의가 가져온 중앙집권적 정치구조를 깨는 일이다. 중앙집권시스템은 지역관리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 그리고 끝내는 주민자치의 자주적 공동체기구를 가야 한다.

탈근대주의의 새로운 사조는 한국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한국은 처음부터 근대주의를 잘못 받아들였다. 그 이유는 강제적 식민지시대 자발적 식민지시대(반공독재시대 군부폭력시대, 토목개발독재) 등 잘못된 정치구조를 가지면서 근대주의가 어그러졌다. 그래서 근대정신의 어느 것 하나 완성되지 못했다. 법치주의는 권력의 시녀로 전락하였고, 민주주의는 독재 권력에 유린되고, 자유주의는 반공정신에 왜곡되고, 민족주의는 분단권력에 파괴되었다. 세계가 꿈틀거리고 있다. 근대주의를 하루빨리 완성하고 새로운 삶의 형태를 찾아가기 위함이다. 우리도 이제 새롭게 도래하고 있는 새 시대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그래서 근대주의를 다른 지역에 뒤지지 않게 완성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첫째, 민족주의를 완성해야 한다.
민족주의의 완성은 분단국가와 영토분단을 하나로 통합하는데 있다. 곧 ‘통일 민족주의’로 나가는 일이다. ‘통일 민족주의’로 가는 길은 우선 미국에 대한 ‘자발적 식민지’로부터 독립하는 일이다. 군작전권의 회수, 경제적 독립, 문화적 독립이 그것이다.

둘째, 법치주의를 완성해야 한다. 분명한 사법부의 독립이 이루어져야 한다. 사법부의 독립은 정치권력과 무관한 독립된 인사권을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권력적 논리에 의한 사법관련 일에 종사하는 인력배출방법이 행정부에서 독립되어야 한다. 이어 사법부 안에도 정치권력에 대응하는 ‘사법검찰기구’가 따로 설치되어야 한다. 하여 행정부의 검찰권력의 권력남용과 수사의 독직, 부정과 부패를 견재해 주어야 한다.

셋째, 자유주의를 완성해야 한다. 한국은 분명히 자유주의 국가이다. 그런데 잔정한 자유(자유의지)를 알고 행사하면 살고 있는 한국인이 정말 있는지 모르겠다.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한 한국인에게 자유(사상의, 언론의, 집회의)는 없다. 게다가 집회시위법도 폐지하여야 한다. 국가권력이 지들의 권익만을 위해 국가구성원의 어떠한 자유를 제한, 억압하는 일체의 법은 폐지되어야 한다. 특히 한국에서 필요한 자유는 사상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다.

넷째, 부패한 자본주의의 척결이다.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완전한 근대정신을 구현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기란 어렵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는 운동이 필요하다. 바로 공동체주의다. 자원분배의 평등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어 노동의 가치를 기준으로 한 이익분배의 평등이 이루어져야 한다. 자본의 크기에 의해 이익이 분배되는 원리는 잘못되었다. 인간의 가치를 기준으로 한 이익분배가 이루어져야 한다.

다섯째, 자치주의의 완성이다. 고대 노예제사회 때부터 존재해 왔던 중앙통제식 권력구조는 낡은 제도이다. 21세기, 그리고 2012년을 향해 가는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중앙권력이 아니라 지역자치이다. 모든 자원통제는 중앙이 아닌 지역으로 넘겨야 한다. 그 중 제일 중요한 것은 조세의 징수를 지역정부가 총괄해야 한다. 따라서 중앙정부의 재정은 지역정부의 지원으로 충당되어야 한다. 국가유지를 위한 최소한 기구(중앙군대와 외교관 등)를 제외하고는 모든 사회조직을 지역정부가 관리하여야 한다. 이어 지역정부는 마을 단위의 자치적 공동체조직을 활성화하는데 노력해야 한다.

이렇게 근대주의를 완성하고 탈근대로 가는 길은 요원하다. 그러나 우리는 가야 한다. 이것이 ‘미래의 행복’을 보장하는 길이다. 중앙집권적 정치권력의 특권들을 줄일수록 국가구성원 개개인의 행복지수는 높아지게 된다. (2011.3.4. 아침/취래원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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