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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영호 교수 칼럼

무소불위, 안하무민, 엉망진창의 2011년 (1)

by anarchopists 2019. 11. 27.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12/18 06:47]에 발행한 글입니다.


‘무소불위(無所不爲)’, ‘안하무민(眼下無民)’,
‘엉망진창’의 2011년

해마다 연말이 되면 한 주간 신문사(교수신문)에서 한 해의 역사를 사자성어(四字成語)로 축약해서 발표한다. 게다가 새해를 전망하는 표현도 뽑는다. 한문(漢文)학 교수들이 고전에서 후보 성구를 선정하여 여러 교수들에게 묻는 절차를 거쳐 결정하므로 비교적 정확하다고 할 수 있으나 이 역시 한 집단(교수)의 의식수준을 반영하는 셈이지 국민, 민중 전체가 현실 속에서 피부로 느끼는 것과는 거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던 금년은 어떤 성어가 뽑힐지 흥미로운 일이다.

그런 집단조사 형식보다는 각자가 나름대로 표현해보면 어떨까. 중국인처럼 꼭 한자로만 할 것이 아니고 한글로도 가능하다. 가령, ‘엉망진창’ 같은 말로. 그러고 보니 금년도 (지도자와 여당 때문에) 나라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 아니었던가. (실제) 실업자 수, 비정규직 비율, 자살률, 행복지수 등 각종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내치(內治)는 말할 것도 없고, 외치(外治)를 보아도 답답하고 불안하다. 대미, 대중, 대일 등 국제관계와 대북관계는 어느 것도 주도적인 전략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대중, 대북은 위태위태한 상태다. 아무것도 예측 가능한 것, 지속 가능한 것이 없었다. 있다면 관리와 측근의 부패와 비리는 불어날 거다 정도였다.

한 해를 되짚어보면서 얼듯 집히는 표현은 ‘무소불위(無所不爲)’나 ‘안하무인’(眼下無人) 같은 말이다.
안하무인보다는 다대수 국민이 무시된 ‘안하(眼下無民)’이 더 맞다. 그야말로 선불교에서 말하는 ‘무(無)’자 화두다. 법은 허울이고 원칙, 정의, 양심, 상식이 없거나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통하는 것은 가진 자의 재력, 권력, 학력, 폭력일 뿐이다. 그 원인을 제공한 원흉은 아무래도 무력으로 나라를 거머쥔 박정희로 거슬러간다. 백성이 주인이 되는 진정한 민주사회가 못 되는 판에 차라리 무주공산(無主空山)이라도 된다면 좋겠지만, 1% 특권층과 그 비호정권이 모든 것을 소유하고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이 비극이다. 하는 꼬락서니는 누가 봐도 희극이지만 국민에게는 비극이었다. 웃기면서 울린다고 할까 웃지도 웃을 도 없다고 할까 난감한 상황을 4년동안 연출하고 있다.

무소불위’, ‘안하무민’의 표현과 더불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집단은 대통령과 검찰이다. 이들을 재제할 장치가 없다. 무소불위의 대통령을 견제해야 할 입법부와 사법부 및 검찰은 시녀가 되어있다. 4대강 공사,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 등에서 보여주듯이 국민여론과 전문가 의견을 수렴, 통합하지 않고 밀어붙이기 식으로 처리하듯이 자의대로 임급 이상으로 만사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의미없는 말을 남발한 무정견, 무책임의 화신이 되었다. 본보기가 아니고 반면교사가 된 꼴이다. 그가 임명한 참모와 각료, 위원장들은 나름대로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했다. 그가 믿는다는 (그리고 서울을 봉헌하려했던) 신은 하늘이 아닌 민중 속에 그리고 내 속(양심)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었다면, 국민을 안하무인으로 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대수 신자들처럼 오도된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검찰은 어떤가. 전문학자(조국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스폰서 검사’는 단지 몇몇 검사의 일탈 문제가 아니다. 한국 검사는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기에 ‘스폰서’들이 앞다투어 들러붙는다. 일본 검사는 수사권이 아예 없다. 독일 검사는 수사지휘권이 있지만 범죄혐의가 인정되면 재량 없이 반드시 기소해야 한다. 미국 검사의 수사지휘는 수사 말기에 이뤄지고 미국 검사장은 선거로 선출된다. 그런데 한국 검사는 기소권 외에 수사권을 갖고 있고, 수사지휘권을 통해 경찰의 수사를 초기부터 좌지우지할 수 있으며, 범죄혐의가 확인되어도 재량으로 기소하지 않을 수 있다. 선거 등 대중적 통제로부터 자유로움은 물론이다.” (경향신문 12월10일 조국 [시론])

역시 무소불위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검사집단이다. 부패할 수밖에 없는 집단이다. 부정부패의 본보기가 되고있다. 문제는 이들을 견제할, 말하자면 검찰을 ‘검찰’할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있더라도 대통령이 막아준다. 야만적인 수사행태로 피의자들(정몽헌, 박태영 등)이 자살하는 경우가 많았다. 역대 대통령 중에도 괜찮았던 전직 대통령이 자살하고 그것을 비탄하던 다른 전 대통령이 일찍 세상 뜨게 만들었다. 막강한 겸찰이 이 사회의 양심으로 남아있어야 할 두 대통령을 잃게 만든 것이다. 마치 검찰이 통치하는 검찰국가가 된 꼴이다. 그나마 늦
게라도 하는 것이 났다고는 하지만, 단서가 있을 때 뿌리를 미리 뽑지 못하고 마지못해 그것도 보가 터져서 이제야 약발이 약해져가는 ‘절뚝발이 오리’가 된 대통령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듯이 기회주의적으로 청와대 인사, 친인척 비리를 손대고 있지만, 용두사미가 될지 두고 봐야 한다. 책임을 회피하고 재집권할 깜량으로 이제 여당은 해체나 ‘재창당’할 단계에 와있다. 임기가 끝나면 큰 돈이 들어가는 4대강 사후보수는 누가 할 것이며, 국민이 입을 협정(FTA) 피해는 누가 책임지거나 보상할 것인가.

무소불위한 집단은 또 하나 있다. 일부 대기업, 소위 재벌이다. 의식주, 교통, 통신, 스포츠, 교육, 병원까지 국민 생활의 거의 모든 분야를 지배하고 있다. 다른 나라 기업처럼 따로 따로 한 분야씩 분담하는 것이 아니고 각개 재벌이 여러 분야를 휩쓸고 잇다는 것이다. 이들은 보다 못해 중소기업의 원성을 무마하기 위해서 겉치레로 만든 [동반성자위원회]가 제안한 최소한의 이익 나누기를 단연 거부하는 권세도 누리고 있다. 얼마나 무소불위의 공룡들이 되어있는지 알 수 있다. 위원장(정운찬)이 “작심한 듯 대기업의 행태를 비판했다.” “대기업들이 무소불위의 경제권력으로 자리잡았다. 정치권력 비판하기는 쉽지만 교체되지 않는 경제권력을 비판하기는 얼마나 힘든 일인지 1년간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할 정도다. 재산의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하는 일을 하는 재단에 기증하고 부자들의 세금을 올리라고 아우성 치는 미국의 재벌들과 뚜렷이 대조되는 장면이다.

보수(수구)를 지원해오다 신당(‘중도신당’) 창당을 주도하고 있는 한 교수(‘폴리페서’)는 “대한민국을 이끌어온 주류세력이 스스로 와해되고 있다, “대한민국은 형식적 국가는 있으나 정신적 국가가 해체되고 있다, “주류세력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등 헌법적 가치를 소홀히 하면서 이익집단화했기 때문”이라고 인정했다. 나라를 ‘이끌어온 주류세력’이 누구인지, 아마 기득권 계층으로 따로 설정하고 있으나 사실, 주류는 머리를 굴리는 지식인이 아니고 여태까지 피땀을 흘려온 민중(노동자, 농민, 중산층)이라고 해야한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중시하는 것도 평등의 가치를 소홀히 하면서 미국사회를 금융위기와 종말로 몰고 온 신자유주의자들의 논리를 따르는 것이긴 하지만. 위기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은 올바르게 보인다.(2011. 12.18, 김영호, 계속)

김영호 선생님은
인문학의 몇 분야를 방황하면서 가로질러 수학, 연구(스톡홀름대, 하버드대 펠로우), 강사(연세대 숭실대), 교수(인하대, 현재 명예교수)로 일했다. 전공은 종교철학(원효사상)으로, 그의 세계관의 큰 틀(패러다임)은 다원주의다. 다원주의를 통해 민족분단. 사회 및 지역 갈등, 종교간 갈등 등 한국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극복하기위한 방법론을 모색하고 있다. 그의 사상적 준거는 함석헌과 크리슈나무르티이다. 그 동안, 해외 민주화운동의 도구인 민중신문』(캐나다) 창간(1079)에 관여,『씨알의 소리』편집위원, 함석헌기념사업회 씨알사상연구원장을 맡기도 했다. 지금은 함석헌평화포럼 공동대표와 함석헌학회 학회장직을 맡고 있다.(2015년 12월 현재)
/함석헌평화포럼

* 본문 내용 중 사진 위는 뉴시스(11.12.13일자), 아래는 시사저널(11.12.12)에서 따온 것임, 본 글 내용과는 무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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