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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박경희 작가 단상

전쟁준비 그만, 가난한 서민도 돌보세요

by anarchopists 2020. 1. 2.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12/30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내 가까운 주변부터 도와주자.

연말이 되니 찬주 생각이 났다. 올 봄에 방송 취재차 만난 찬주의 소식이 궁금해졌다. 혹시 잘못된 것은 아닌지. 생각 난 김에 찬주를 보러 가기로 했다. 태어나 단 한 번도 스스로 자리에서 일어나 보지 못한 아이. 아버지마저 교통사고로 잃어 아빠의 얼굴조차 모르는 찬주. 그 때부터 여덟 살이 되도록 엄마는 아이의 수족이 되어야만 했다. 찬주 엄마는 코스모스처럼 가녀린 손으로 날 보자마자 하얀 종이를 내 밀었다.

“찬주 입학통지서예요. 처음 이 통지서를 받는데 기분이 묘해지더군요. 벌써 세월이 그렇게 흘렀구나, 싶기도 하고...그러나 영원히 내 아이는 학교 문 앞에도 못 가보겠지, 싶으니 서러워서 한참을 울었어요.”

찬주 엄마가 울먹이던 모습이 떠오르자 마음이 급해졌다. 그동안 무심했던 것이 못내 미안해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문이 열리자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단칸방에 종일 누워 있는 찬주 때문에 환기를 못 시켰기 때문이다. 방에 들어 가 찬주의 손을 잡았다. 아이는 여전히 누워만 있었고, 아직도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며, 옹알이하듯 혼자 중얼거리며 장난감을 갖고 놀았다.

찬주의 어머니는 여전히 아이 때문에 창살 없는 감옥에 종일 갇혀 살고 있었다. 폐병 환자처럼 핏기 없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웠다. 그런데 찬주는 봄에 봤을 때보다 많이 컸다. 놀라워서 의사 선생님이 진전이 있다고 희망을 주더냐고 물었더니 그렇지는 않다고 했다. 그 날, 나는 정기적으로 병원 가는 일 외에는 전혀 외출이 없는 찬주 가족을 위해 교회와 연계를 상의하고 돌아왔다.


그리곤 실제로 그들을 도와 줄 수 있는 방법을 여기저기 건의도 하고 글도 쓰고 있는 중이다. 생각해 보니 늘 누워서 소변과 대변 모두를 해결해야 하는 찬주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내복일 것 같아 준비해 간 것을 내밀었다. 찬주 엄마는 정말 내복이 많이 필요했다며 좋아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기뻤다. 힘든 이웃에게 꼭 필요한 선물을 전할 수 있다는 건 남다른 기쁨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연말이면 가난한 이웃을 돕자는 말들을 많이 한다. 자의든 타의든 실제로 그 일에 동참한 경험도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작은 성금이 모여 큰일을 해내는 것은 너무나 귀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언제부터인가 생각이 바뀌었다. 큰 복지단체에 성금을 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친척이나 이웃, 혹은 교회 식구, 동네 재택 노인 등을 돕는 일이 진정한 나눔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 동네에는 사고를 당한 뒤 종일 누워 있는 어르신이 있다. 그 분은 밖에 나가 햇볕 구경 실컷 해 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다. 그 분을 이웃 아저씨가 가끔 모시고 나가 종일 구경을 시켜 드리고 맛있는 음식을 사 드리곤 한다. 대접 받은 어르신은 눈물까지 흘리며 고마워 하셨다. 또한 방학 중에 점심을 굶는 소년 가장에게 쌀 한 가마를 익명으로 사 주는 원로 장로님을 알고 있다. 그 일을 해마다 해 오고 계신 것을 보면서 그 분이야말로 진정한 신앙인이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 주위에는 의외로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들을 돕는 것은 자선단체나 복지관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복지기관에서 피 같은 시민의 성금을 유흥비로 썼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정말 실망했다.)

흔히 “이 다음에 좀 더 여유가 생기면 맘껏 봉사할 것” 이라고 말한다. 그렇지 않다. 현재 남에게 베풀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시간과 돈이 있어도 그 일에 선뜻 나서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남을 돕는 것 또한 습관이기 때문이다. 이 해가 가기 전, 혹 내 주위에 나의 손길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는지 살펴보면 좋겠다.(2010.12.29., 박경희)

박경희 작가님은
2006년 한국프로듀서연합회 한국방송 라디오부문 작가상을 수상했다. 전에는 극동방송에서 "김혜자와 차 한잔을" 프로의 구성 작가로 18년 간 일하다 지금은 탈북대안학교 '하늘꿈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함석헌평화포럼의 필진이다.

작품으로는 《분홍벽돌집》(다른, 2009), 《이대로 감사합니다》(두란노, 2008), 《여자 나이 마흔으로 산다는 것은》(고려문화사, 2006), 《천국을 수놓은 작은 손수건》(평단문화사, 2004)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 본문 내용 중 윗 사진은 다음 카페(천국사다리쎈타)에서 따온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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