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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박경희 작가 단상

교사들, 문제아는 당신들이 만들었다는 것을 아시오

by anarchopists 2019. 12. 28.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2/11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문제아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흔히 청소년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한다. 망아지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청소년을 묘사할 때 이보다 더 적확한 표현은 없을 것이다. 내 아들도 한 때는 거센 방황의 물살을 탄 적이 있다. 모범생이던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야생마가 되어 날뛰었다. 아이는 가출을 하고 오토바이를 훔쳐 타며 비슷한 또래들과 어울려 다니며 온갖 사건과 사고에 연류 되었다. 난, 학교에 가서 비는 것으로도 모자라 경찰 앞에서 용서를 빌어야 하는 자리에 서 보기도 했다.

함께 어울리는 친구들을 보니 대부분 결손 가정 아이들이었다. 각기 사연을 들어보면 너무 안쓰러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래서 책도 사주고 공부도 가르치는 등 학생 본연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도록 많은 걸 시도해 보았다. 그러나 내 앞에서는 양같이 순한 아이들이 나가면 천방지축이었다. 그 때 난 참 마음 고생을 많이 했다. 왜일까. 경제적으로나 가정적으로 그런대로 안정적이며 아빠도 매우 인격적으로 아들을 대할 뿐 아니라, 어려서부터 참 많은 대화를 나누며 자라 온 아이가 왜 갑자기 돌변한 것인지. 아들이 왜 방황하는지 원인을 알아야 대책을 세울 것 아닌가.

아이의 방황이 쉽게 멈출 것 같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가족회의를 통해 내가 일을 쉬더라도 아이를 데리고 외국으로 나가기로 했다. 아이가 중학교 3학년으로 올라가면서였다. 지금 내 아이는 길 찾기를 잘 해서 열심히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청년이 되었다. 어느 날,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듬직한 청년이 된 아들에게 물었다.

"너, 그 때는 왜 그랬니? 내 아들 같지않았다구."
"엄마. 죄송해요. 저도 그 순간들을 가능하다면 지우개로 지우고 싶어요."

이 말을 마친 뒤, 아들은 엄마가 청소년 소설을 쓰는 작가니까 한 마디 꼭 하고 싶다며 가슴 속에 감춰 두었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밤을 꼬박 새며.

"초등학교 때 전교 회장까지 하던 제 속성대로 뭐든 나서는 제가 눈에 거슬렀나 봐요. 튄다고 무조건 야단을 치시더라구요. 이유 없이 미워하며 트집을 잡는 담임선생님이 이해가 안 갔어요. 어느 날은 체육복을 안 가져 왔다는 이유로 팬티만 입혀서 하루 종일 운동장을 뛰게 한 적도 있구요. 근데 문제는 담임선생님 한 분만 저를 괴롭히는 게 아니셨어요. 교무실에서 무슨 말이 돌았는지 들어오는 선생님들마다 저를 때리거나 폭언을 하고.....한 마디로 전 짐승 취급을 받아야만 했어요. 매도 엄청 맞았구요. 학교가 싫어지면서 불량 서클에 든 거지요."

스무 살이 넘은 아들이 눈물까지 글썽이며 말했다. 그 때 영화 필름 돌아가듯 스쳐 가는 장면이 있었다. 엄마인 나를 학교에 불러놓고 내가 보는 바로 앞에서 아들을 엎어놓고 큰 막대로 무지막지하게 후려치던 담임선생님. 그 때 초죽음이 되어 널브러져 있던 아들을 말없이 보아야만 했던 참담함. 그 모습이 떠오르자 온몸이 떨렸다. 그 당시의 나는 아무 말도 못했다. 내 아들이 문제아였으니까. 선생님 앞에서 문제아 엄마는 그저 죄인일 뿐이었다. (지금의 나라면 절대로 그냥 넘어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아들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심하게 고통을 당했던 것 같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만큼 암흑기였다는 말을 들어보면.

"학교에서 한번 문제아로 찍히면 졸업하는 그 순간까지 그 딱지를 뗄 수 없어요. 그러니까 점점 더 문제를 일으키는 등 악순환의 연속인 셈이지요. 그 때 한 분 만이라도 날 이해해 주는 선생님을 만났더라면..."

아들은 이 말을 마친 뒤, 조용히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선생님들이 체벌 금지 때문에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힘들다는 말을 할 때마다 고개가 저어진다. 그들은 그렇게 말하기 전에 진정 자신이 스승이라는 의식이 있는지 묻고 싶다. 잘못한 학생에게 매를 가해야 수업 분위기도 잡을 수 있고 생활 지도도 된다고 강변하는 선생님들. 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회초리 대신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마구 폭언을 쏟아내어 아이들에게 상처를 줄지도 모른다.


일부이긴 하지만 인격이 덜 된 선생님 때문에 꽃다운 청춘을 어둠 속에서 보내야 하는 아이들이 어디 내 아들 뿐이겠는가. 학교 체벌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시위하고 떼를 쓰기 전에 선생님들은 자기 자신을 거울에 비춰 봐야 할 것이다. 나는 과연 가르치는 자인가. 지식을 팔아먹는 장사꾼인가. 이 질문과 함께. 참된 스승이라면 회초리가 아니어도 '사랑' 이라는 든든한 무기로 얼마든지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다고 난 확신한다.(2011. 2. 10, 박경희)

박경희 작가님은
2006년 한국프로듀서연합회 한국방송 라디오부문 작가상을 수상했다. 전에는 극동방송에서 "김혜자와 차 한잔을" 프로의 구성 작가로 18년 간 일하다 지금은 탈북대안학교 '하늘꿈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함석헌평화포럼의 필진이다.

작품으로는 《분홍벽돌집》(다른, 2009), 《이대로 감사합니다》(두란노, 2008), 《여자 나이 마흔으로 산다는 것은》(고려문화사, 2006), 《천국을 수놓은 작은 손수건》(평단문화사, 2004)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 본문 내용 중 사진은 연합뉴스(아래)와 네이버 카페(박달이, 위)에서 따온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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