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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박경희 작가 단상

인사동, 한국의 자존심 좀 살려라

by anarchopists 2020. 1. 2.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12/28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인사동은 더 이상 인사동이 아니다.
인사동 살리기 운동 시급하다

나는 시간 날 때마다 시내 어디든 걷는다. 내 안의 더럽고 추한 모든 것을 내려놓으며 걷다보면, 어느새 등줄기에 뭉근한 땀줄기가 흐른다. 그 순간이 참으로 좋다. 그래서 나는 걷고 또 걷는지도 모른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이 대학로라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이 많아 더욱 좋다. 집에서 교보 문고까지는 45분이면 갈 수 있고, 북촌은 40분이면 충분한 거리에 있다. 내가 걷는 코스가 우리의 문화유산이 살아 움직이는 곳이라 걸을 때마다 감동을 받는다. 그 중에 내가 가장 즐겨 찾는 곳이 인사동이었다.

인사동에 가면 나의 유년을 만날 수 있었다.

창호지에 맨드라미 붙인 옛 창문을 만날 수 있고,
뒤란 장독대에 수없이 널린 엄마의 항아리가 있고,
할머니의 방에 신주단지처럼 모시던 고가구들이 즐비하고,
어린 시절 큰댁 부엌에 지천으로 깔린 백자 그릇들이 널려 있고,
알록달록 색동저고리도 심심찮게 만나는 거리가 바로 인사동이었다.

인사동 길을 열 번도 더 오르락내리락 걸으며 난 옛 정취에 흠뻑 젖곤 했다. 어쩌다 너무 바빠 일주일만이라도 인사동 산책을 못하면 병이 날 지경이었다. 그만큼 인사동은 내가 사랑하는 거리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인사동에 가는 걸 꺼리게 되었다.

고가구라고 내놓은 것들은 연변 등에서 급조한 것들이 많았고, 외국 관광객을 위한 선물 또한 대부분 'made in china' 이었다. 대부분의 물건들이 짝퉁이거나 조잡한 것들로 가득 차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 손님들을 위한 상인들의 호객 행위 또한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심했다.

인사동을 걷다보면 유난히 일본 손님들과 많이 마주치게 된다. 어느 날 유심히 그들을 살펴보았다. 선물 가게에 들어 가 이것저것 물건을 들춰 보더니, 인상을 찌푸리며 가게를 나왔다. 그들 입에서 나온 말은 다 알아 듣지는 못해도 'made in china' 를 파는 것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었다.

외국 관광객들이 인사동을 찾을 때는 한국 고유의 맛과 멋이 깃들어진 풍경을 기대했을 것이다. 우리가 해외여행을 갔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런데 인사동은 국적불명의 도시가 되어 버렸다. 조잡한 중국 제품들이 판을 치고, 상인들은 호객 행위를 하느라 바쁘고, 온갖 먹을거리를 내 놓은 음식점만(엄밀히 말하면 술집) 늘어가고 있으니 어쩌란 말인가.

인사동을 오가는 외국 관광객들을 볼 때마다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특히 중국 관광객들을 볼 때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우린 그동안 저들을 못 사는 나라라고 은근히 깔보지 않았던가. 그런데 자신의 나라에서 만든 물건을 갖다 이문까지 붙여 팔고 있으니. 우릴 얼마나 우습게 여길까 싶었다.


요즘은 자치단체가 발달하면서 각 마을마다 동네 살리기 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제발 '인사동 살리기' 운동이 불같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그래서 다시 인사동 고유의 얼굴을 되찾아 한다.

인사동이 대한민국의 숨결이 살아 움직이는 인사동 보여 줄 수 있는 곳으로 변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린 머지않아 전 세계적으로 "짝퉁 대한민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쓸 지도 모른다.

개인도 마찬가지만 특히 민족 자존감은 누군가 손에 쥐어주는 것이 아니다. 국민 개개인이 지켜가는 것이다. 부디 인사동이 생존의 터전인 모든 분들이 진정한 자존심을 회복하길 진심으로 빈다
.(2010.12.28., 박경희)

박경희 작가님은
2006년 한국프로듀서연합회 한국방송 라디오부문 작가상을 수상했다. 전에는 극동방송에서 "김혜자와 차 한잔을" 프로의 구성 작가로 18년 간 일하다 지금은 탈북대안학교 '하늘꿈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함석헌평화포럼의 필진이다.

작품으로는 《분홍벽돌집》(다른, 2009), 《이대로 감사합니다》(두란노, 2008), 《여자 나이 마흔으로 산다는 것은》(고려문화사, 2006), 《천국을 수놓은 작은 손수건》(평단문화사, 2004)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본문 내용 중 사진은 인터넷 다움에서 따온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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