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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박경희 작가 단상

안상수, 당신이 '낡은 우상'의 자연산이요

by anarchopists 2020. 1. 2.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12/29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안상수 의원,
그에게 '자연산 발언' 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 아니었을까?

며칠 전, 약속 시간을 착각해 한 시간 정도 일찍 약속 장소에 도착한 적이 있다. 망설이다 추위도 피할 겸 모처럼 백화점 구경을 하기로 맘먹었다. 백화점 안은 휘황찬란한 불빛과 화려한 차림의 손님들로 부산스러웠다. 나는 잠시 숨을 돌린 뒤, 매장을 슬슬 돌았다. 독특한 문양의 모피코트가 있어 가격표를 슬쩍 보았다. 18,000,000원. 내 머릿속은 갑자기 복잡해졌다. 내 눈이 벌써 침침해진 걸까. 잘못 본 거겠지. 자동차 한 대 값을 몸에 걸치고 다닌다고? 확인이 필요했다.

"이 모피 코트 얼마예요?"

가격표를 못 본 척 종업원에게 물었다. 근데 어쩐 일인가. 아리따운 아가씨가 눈만 말똥거릴 뿐 대답을 않았다. 기분이 상했다. 다시 물었다. 그랬더니 그녀가 귀찮은 듯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냉랭하면서도 심드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가격표대로예요!"

대답을 하면서 아가씨는 나의 온몸을 훑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침에 급히 나오느라 머리도 부스스하고 걸친 코트도 10년 쯤 된 구닥다리고, 명품은커녕 아울렛에서 산 싸구려 가방이 유난히 눈에 크게 들어왔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차림새로 보아 아줌마는 죽었다 깨어나도 그 모피 코트 못 살걸요. 그냥 나가시죠!"

절대로 종업원은 이 말을 소리내어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의 온몸을 훑어보던 그녀의 눈빛이 그렇게 말했다. 난 마치 모피를 훔치려다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매장을 총총히 걸어 나와야만 했다. 씁쓸했다.

내가 만약 그 날 머리 손질도 잘하고 온몸을 명품으로 휘감고 나갔다면 종업원에게 그런 대접을 받았을까. 분명 아닐 것이다. 그건 누구나 한번 쯤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그날의 옷차림새가 어떠냐에 따라 종업원의 태도가 달라지는 것을.

이처럼 여자들은 단지 외모 때문에 무시당하고 싶지 않아서라도 겉치레에 신경을 쓰는 경우가 있다. 정신 나간 소리라고 통박을 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돈과 시간을 영혼 살찌우는 일에 매진하라고 충고까지 하면서.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은 외모지상주의 천국이라는 걸 부인할 사람이 있을까. 얼굴 예쁘고 몸매만 빼어나면 모든 게 용서되는 세상. 명품을 사기 위해 빚을 지는 것이 능력인 세상이 되었다.

그래서 여자들은 조용한 시간에 책을 읽거나 교양 강좌를 들으러 다니기보다는 몸매를 가꾸기 위해 운동중독증에 걸리거나 거금을 들여 살을 빼기도 한다. 주름살 제거와 보톡스 또한 더는 연예인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평범한 이웃집 아줌마도 성형외과 마니아인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이런저런 것을 생각하면 안상수 의원이 '자연산 운운' 하는 건 결코 이상한 게 아닐 수도 있다. 그 높은 자리에 있다 보면 수없이 많은 성형미인을 봐 왔을 테니까. 어쩌면 자신의 솔직하면서도 일상적인 발언에 대해 돌팔매질을 하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나는 안상수 의원이 ‘자연산’ 발언에 대해 사과를 하는 것을 보면서 한 편의 코미디를 보는 것 같았다. 며칠 고민한 결과 고작 한다는 소리가 결코 사퇴(辭退)는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 주는 대목에서는 더욱 그랬다.

진정한 사과는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나는 배웠다. 책임 없는 사과는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다. 손톱만큼의 양심마저도 없는 사람이 국민의 안녕과 질서 운운하는 걸 볼 때마다 차라리 코미디 프로라면 허허실실 웃기라도 할텐데. 결코 반전은 기대조차 할 수 없으니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2010. 12.28, 박경희)

박경희 작가님은
2006년 한국프로듀서연합회 한국방송 라디오부문 작가상을 수상했다. 전에는 극동방송에서 "김혜자와 차 한잔을" 프로의 구성 작가로 18년 간 일하다 지금은 탈북대안학교 '하늘꿈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함석헌평화포럼의 필진이다.

작품으로는 《분홍벽돌집》(다른, 2009), 《이대로 감사합니다》(두란노, 2008), 《여자 나이 마흔으로 산다는 것은》(고려문화사, 2006), 《천국을 수놓은 작은 손수건》(평단문화사, 2004)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 본문 내용 중, 위 사진은 강원도민일보에서, 아래사진은 인터넷 다움에서 따온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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