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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박경희 작가 단상

대통령,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를 읽으세요

by anarchopists 2019. 12. 29.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2/07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부끄러움을 가르치는 학교

얼마 전 작업을 하고 있는데 “박완서 작가 작고” 라는 문구가 인터넷 메인 뉴스로 떴다. 나도 모르게 훅, 숨을 몰아쉬어야만 했다. 10년 전 아버지의 부음 소식을 들었을 때처럼 아득했다. 100세 까지 사는 세상이라는데, 아직도 선생님의 따스한 글 방패삼아 험한 세상을 사는 이들이 많은데 왜 그리 급히 가신 것인지. 애달 펐다. 오래 전, 방송 취재차 만나 나누었던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선생님, 저도 소설 공부 다시 할까 해요. 전파를 타는 순간 새처럼 날아가는 글 대신 내 이름으로 남는 글을 쓰고 싶어요. ”

선생님은 연민 가득한 눈빛으로 날 오랫동안 바라 보셨다. 그런 후 선생님은 특유의 조용하면서도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정말 소설 쓰고 싶어요? 그렇다면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집안에 걸레가 말라 비틀어져 나뒹굴어도 상관없이 앉아 글만 쓸 수 있는지. 그럴 각오가 되어 있지 않으면 그냥 이대로 사세요.”

난 솔직히 선생님의 격려와 응원을 기대했다. 장난으로 소설을 쓰겠다고 한 건 아니었기에. 하지만 선생님의 단호한 말씀을 듣는 순간, 왠지 움츠러들었다. 어찌어찌 해서 나는 소설이라는 장르에 발을 담그고 있지만 지금도 선생님의 말씀을 생각하면 그저 부끄러울 뿐이다. 선생님의 말씀 속에 들어 있던 열정을 다해 소설에 매진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요즘 시간이 날 때마다 박완서 작가의 책을 꺼내어 다시 읽고 있다. 소설이지만 다큐멘터리처럼 리얼리티가 강한 선생님의 작품을 읽다보면, 오래 전 내게 충고를 해 주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떠올렸다. 그 중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라는 작품은 많은 걸 시사해 주고 있었다.

"처음엔 나는 왜 내가 그 말 뜻을 알아들었을까 하고 무척 미안하게 생각했다. 그러다가 몸이 더워오면서 어떤 느낌이 왔다. 아 아 그것은 부끄러움이었다. 그 느낌은 고통스럽게 왔다. 나는 마치 내 내부에 불이 켜진 듯이 온몸이 뜨겁게 달아 오르는 걸 느꼈다."

이 부분을 읽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최근 들어 난 내부에 불이 켜진 듯이 온몸이 뜨겁게 달아오를 만큼의 부끄러움을 느껴 본 적이 있었던가. 그렇지 못했다. 나는 정작 부끄러워해야 할 일 앞에서도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잘못을 은폐하기에 급급했던 적이 많았다.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만 그런가? 세상이 다 그런데. 또 다른 변명이 은근히 나의 신경을 건드렸다.

그 순간, 박완서 작가의 영전에 꽃을 보낸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정치인들의 얼굴이 스쳐갔다. 대통령은 작가의 영전에 꽃을 보내며 부끄럽지 않았을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조차 부끄럽다. 기대치 없는 질문이기에.)
박완서 작가는 전쟁과 분단을 가족사적인 아픔으로 풀어 낸 글을 쓴 분이지만 특별한 이념을 내세운 작가는 아니었다. 하지만 작품을 읽어보면, 작가가 원하는 세상은 분명 정의가 살아 있는 따뜻한 세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대통령이나 일부 부패한 정치인 혹은 기업인들은 작가의 영전에 꽃을 보내지 말아야 했다. 대신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작품을 읽는 게 날 뻔 했다.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잊은 채, 너무나 뻔뻔스런 얼굴로 세상을 활보하고 있다. 이제라도 학교에서 아니 정규 과목으로가 아니면 학원에서라도 <부끄러움>을 가르치는 곳이 생겼으면 좋겠다. <부끄러움을 가르치는 학교>에 제일 먼저 수강해야 할 학생은 두말 할 것 없이 대통령을 비롯한 이권 다툼에 혈안이 되어 있는 정치인들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2011.2. 6, 박경희)

박경희 작가님은
2006년 한국프로듀서연합회 한국방송 라디오부문 작가상을 수상했다. 전에는 극동방송에서 "김혜자와 차 한잔을" 프로의 구성 작가로 18년 간 일하다 지금은 탈북대안학교 '하늘꿈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함석헌평화포럼의 필진이다.

작품으로는 《분홍벽돌집》(다른, 2009), 《이대로 감사합니다》(두란노, 2008), 《여자 나이 마흔으로 산다는 것은》(고려문화사, 2006), 《천국을 수놓은 작은 손수건》(평단문화사, 2004)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 본뭄 내용 중, 사진은 인터넷다움(위)과 네이버(아래)에서 따온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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