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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박경희 작가 단상

오세훈, 내가 거지가?

by anarchopists 2020. 1. 2.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12/27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공짜 밥 먹는 아이라는 소리 듣는 게 싫어
점심시간이 싫다는 아이가 더는 없어야 한다
.

며칠 전 신문을 읽다 독특한 광고를 보게 되었다. 한 아이가 벌거벗은 채 식판을 들고 있는 사진이 눈에 띄었다. 무슨 광고인가 싶어 자세히 읽어 보았다.

벌거벗은 아이의 사진과 함께 전면 무상급식 때문에 학교보건시설 개선·확충, 과학실험실 현대화, 영어전용교실 등에 쓰일 금액이 전액 삭감된다며 “128만 학생이 안전한 학교를 누릴 기회를 빼앗아서야 되겠느냐”는 식의 문구였다.
참으로 놀라운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식판을 들고 있는 아이의 사진도 합성이라고 한다. 그 아이의 부모가 몹시 불쾌해 한다는 소리를 접하면서 씁쓸한 마음은 더욱 깊었다.

오세훈 서울 시장은 △반포인공분수 설치예산 690억 원 △서해뱃길사업 2250억 원 △한강 예술섬 조성공사 6735억 원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건립 △오세훈 서울시장 해외홍보비 400억 원을 쏟아 부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무상 급식 때문에 이런저런 학교 예산이 삭감되었다는 광고를 하는 걸 보면서, 황당하다 못해 분노가 치밀었다. 비싼 신문 광고비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국민의 혈세가 아닌가.

나는 매주 목요일마다 저소득층자녀를 위한 공부방 아이들에게 글쓰기 지도를 하고 있다. 그 아이들은 한 가정 부모이거나 조부나 조모와 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의 사연을 깊이 들어가 보면 가슴이 아플 정도로 힘겹다. 아이들은 따뜻한 '집밥'은 그림의 떡일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공부방에서 제공하는 식사를 달게 먹는 아이들이다. 요즘은 방학이라 점심과 저녁 등을 모두 공부방에서 해결해 주고 있다.

공부방 아이 중에는 중고등학생도 많다. 어느 날, 공부방 친구 중 한 여학생이 어느 날 일기처럼 쓴 글을 보게 되었다. "난 점심시간이 정말 싫다. 내가 다른 아이들처럼 급식비를 내고 밥을 먹는 게 아니라 공짜밥을 먹는다는 걸, 우리 반 아이들은 모두 알고 있다. 내 뒤에서 "쟤 공짜밥 먹는 아이잖아!" 수군거리는 아이들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들었던 식판을 던지고 싶지만 그럴수록 더 창피할 것 같아 꾹 참았다. 난 거지가 아니다. 밥 한 끼 공짜로 얻어 먹는다고 해서 나를 그런 눈으로 보는 선생님, 그리고 식사 배급해 주는 아주머니들, 친구들의 눈길을 대할 때마다 내가 벌레 같다. 모멸감이다. 그럴 때마다 날 가난한 아이로 만들어 놓고 도망간 엄마, 아빠가 정말 밉다."

이 글을 읽는 순간, 아이가 공짜 밥을 먹으며 겪었을 아픔이 눈에 보여 가슴이 아팠다. 이 여학생은 몹시 말랐다. 제대로 영양 공급을 취하지 못하기도 하지만, 사춘기라 모든 상황을 예민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학교 급식이 무상이 된다면 이처럼 저소득층의 아이들이 상처 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누구나 무상으로 급식을 먹는 것이기 때문에 남의 눈치 볼 필요가 없지 않은가.

오세훈 서울 시장은 시민의 혈세를 들여 무상급식 반대를 할 것이 아니라, 이토록 힘든 아이들을 위한 복지 정책에 더욱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보도에 의하면 겨울 방학 동안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급식비가 절감된 것으로 알고 있다. 학교에 다닐 때는 눈칫밥이라도 먹을 수 있어 다행이지만 길고 긴 겨울 방학 동안 점심을 거르는 아이들이 많다고 하니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한창 자랄 나이의 아이들이 라면 한 끼로 추운 겨울을 나야 할 생각을 하면 가슴이 저며 온다.

어떤 이유로든 배고픈 아이들이 이 땅에 존재해서는 안 된다. 공짜밥 때문에 모멸감을 느끼는 아이들 일도 없어야 한다.(2010.12.26. 밤, 박경희)

박경희 작가님은
2006년 한국프로듀서연합회 한국방송 라디오부문 작가상을 수상했다. 전에는 극동방송에서 "김혜자와 차 한잔을" 프로의 구성 작가로 18년 간 일하다 지금은 탈북대안학교 '하늘꿈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함석헌평화포럼의 필진이다.

작품으로는 《분홍벽돌집》(다른, 2009), 《이대로 감사합니다》(두란노, 2008), 《여자 나이 마흔으로 산다는 것은》(고려문화사, 2006), 《천국을 수놓은 작은 손수건》(평단문화사, 2004)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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