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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취래원 농사 칼럼

이 '나라'를 되찾자-진보와 보수 모두 가라

by anarchopists 2019. 11. 23.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2/20 06:57]에 발행한 글입니다.


이 '나라'를 되찾자-진보와 보수 모두 가라

2012년 올해는 우리나라에서 특별한 해다. 동양사상으로 흑용(黑龍)의 해이다. 그리고 이 나라 사람들에게는 정치적·사회적 성향을 무엇으로 정할 것인지를 결정짓는 해이다. 두 개의 선거(국회의원과 대통령을 뽑는)가 함께 들어 있다.

이 나라는 이제까지, 일제 병탄(倂呑)과 노예상태에서 해방이 된 이후 또 다시 미국의 배후 조정을 받는 반노예상태에 놓여왔다. 이 탓으로 반공 자유주의와 독재 민주주의 세력이 이 나라의 권력자가 되어 국민 위에 군림해 왔다. 그러다가 역사시간의 흐름과 함께 국민의 인지가 깨어났다. 이 결과,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에서 ‘반공’과 ‘독재’라는 개념을 빼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리고 이 나라사람들은 진정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선거혁명을 일으켰다. 곧 1997년 12월 15대 대통령에 김대중이 당선된 일이다. 이어서 2002년 12월 16대 대통령에 노무현이 당선된 일이다.

이후로 이 나라에는 정치적 수작에 의하여 진보와 보수 세력이라는 두 그룹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진보와 보수의 개념이 전혀 엉뚱하게 와전되어 설명되고 있다. 곧 보수=애국자=민족중흥=친미자유, 진보=빨갱이=민족반역=반미공산이라는 등식이다.

이 설명과 유행어는 크게 잘못되었다. 보수도 진보도 진정 이 나라와 사회발전을 위하는 세력이다. 전날 이야기한 바와 같이 보수와 진보는 모두 사회발전, 곧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세력이다. 두 용어의 차이는 사회발전을 하되, 그 속도를 빨리 할 건가 늦출 건가의 차이에 있다. 그리고 그들이 무엇을 추구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간추려 말하면 다음과 같이 개념정립을 할 수 있다.

보수집단도 개혁을 추구하는 세력이다. 그러나 진보와 차이는 “보다 집단적이면서, 개혁에 소극적이고 점진적 태도”를 보일 뿐이다. 때문에 수구세력과는 선을 긋는다. 수구세력이 개인과 가족의 이익에 충실한 데 비하여 보수세력은 개인과 집단을 포함한 사회이익에도 관심을 보인다. 그래서 보수세력을 보수집단이라고 부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리고 진보세력은 자신의 이익과 집단의 이익을 초월한다. 이들은 전체 사회변화와 나라발전에 대하여 보다 적극적이고 급진적인 태도를 보이는 계층이다. 이들은 인간의 본질에 충실한 다. 인간의 천부적 인권을 수호하려는 데 관심을 갖는다. 정치적 압력과 경제적 착취, 사회적 편파, 문화적 불이익에 의하여 인간의 천부인권이 유린되는 것을 시정하거나 폐지하려는 세력이다.

따라서 지금 이 나라에서 보수를 자유주의자, 진보를 공산주의자로 편을 갈라 말하는 것은 개념 파악 자체부터 잘못되었다. 이러한 잘못된 개념이 시회에 유통되도록 내버려 두는 지식인들은 직무유기다. 잘못된 개념이 유통되도록 방치하는 정치권도 불순한 의도가 깔려있다.

때문에 이 나라는 지금 “진보다 보수다”가 중요한 게 아니다. “나라가 어디로 가야 하나” 그리고 “나라의 중심이 누구냐”를 놓고 따질 때이다. 그래서 함석헌은 이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진작부터 내놓고 있다. ‘나라’와 ‘국가’에 대한 구분이다. 함석헌의 설명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나라는 사회적 의미의 전통적 나라를 말하고, 국가는 정치적 의미의 근대적 국가라는 설명이다. 곧, 함석헌이 말하는 ‘나라’는 인간성(인정과 의리)과 종교신앙에 근거를 둔 관습법(불문법)으로 유지되는 전통사회를 의미한다. 그리고 전통사회, 곧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는 성군 타입의 족장이거나 덕망을 갖춘 자였다. 그 후 역사의 시간이 흐르면서 개인적 자각이 일어났다. 이러한 과정에서 지능적 교만을 지닌 어떤 분자가 나왔다. 이 어떤 교만을 가진 분자는 지배욕을 발동시켜 나라를 도둑질 했다. 나라를 도둑질한 자를 역사적으로 양웅(英雄)이라 부른다. 이들 정치적 영웅은 복잡해진 사회에서 자신의 권력을 방어하기 위한 권력의 보호수단으로 성문법(成文法)을 만든다. 그리고 이 성문법에 의해 인민을 강제라고 압박한다. 성문법에 근거하여 인민을 강제(이를 권력자들은 질서를 위한 사회통제라는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정치적 영웅이 나타나면서 전통사회의 ‘나라’가 근대사회의‘국가’로 양태변화를 하였다. 그리고 나라의 지도자는 聖君(덕망을 갖춘 자)이었고, 국가의 지배자는 英雄(지능적 교만자)이다
. (《함석헌저작집》 12권, 한길사, 2009, 50쪽)

이와 같이 함석헌은 정치(대통령 이하 국회의원, 장관들)하는 자(영웅)들을, 참된 사회질서를 가지고 있던 나라를 도둑질한 권력자들이라고 한다. 이들 국가의 권력자들은 법을 만들고 힘을 소유하였다. 이 탓으로 정치적 분쟁이 야기되었다. 정치적 분쟁을 통하여 권력을 장악한 자들은 종교와 도덕을 무시한다. 그리고 민중(씨알=인민)을 무시하고 노골적인 권력정치를 행사한다. 바로 씨알을 무시하는 정치를 정부지상주의, 국가지상주의라고 함석헌은 말한다. 그리고 정부지상, 국가지상주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 올해 양대 선거는 이 나라 사람들이 시대정신을 살릴 때이다. 국가가 먼저 아니다. 나라사람들이 중심이 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진보와 보수를 놓고 싸우는 것은 시대착오다. 지금 싸움의 핵심은 정치적 권력자들이 더 이상 나라사람(씨알)들을 바보로 만드는 그런 정치는 사라져야 한다는 점이다.

국가지상주의가 사라져가는 이 시대에 개발독재를 휘두르며 나라사람들을 우롱하고 4대강을 파헤치는 그런 행위는 이제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또 있다. 세계가 평화주의를 지향해가는 이때 민족분단을 부채질하고 전쟁분위기를 권력에 이용하려는 그런 권력자가 더 이상은 나와서는 안 된다. 게다가 과거 독재자를 기념하는 도서관을 세우고, 독재자의 딸을 앞세워 권력을 연장하려는 수작은 이 시대의 흐름에 맞지를 않는다. 함석헌의 말 맞다나 이제는 ‘국가’가 아닌 ‘나라’로 돌아가야 한다. 정치는 이제 폭력, 독재의 상징인 권력자(영웅)가 아니라. 성군(聖君), 현덕(賢德)의 상징인 진정한 ‘머슴’들이 나와야 한다. 나라사람들도 이제는 주인정신을 챙겨야 할 때이다. 그래서 나라를 도독질하는, 정말 정치를 하고자 하는 못된 권력자(국회의원 대통령)는 뽑아서는 안 되는 때라고 생각한다.(2012. 2.20, 취래원농부)

취래원농사는
황보윤식(皇甫允植, 醉來苑農士)
학생시절부터 민족/통일운동을 하였다. 동시에 사회개혁에도 관심을 갖고 생명운동을 하였다. 나이 60을 넘기자 바람으로, 도시생활을 과감히 접고 소백산(영주) 산간에 들어와(2010) 농업에 종사하면서 글방(書堂, 반딧불이서당)을 열고 있다. “국가보안법폐지를위한시민모임”, "함석헌학회" “함석헌평화포럼”, “함석헌평화연구소”에도 관여를 하고 있다. 글로는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2017) 등 다수의 글이 있다.(수정 2018. 10.3) /함석헌평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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