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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취래원 농사 칼럼

이렇게 불쌍한 민족이 어디 있느냐

by anarchopists 2020. 1. 7.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11/10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이렇게 불쌍한 민족이 어디 있느냐
- 정신적 지도자를 키워야 한다-

“이렇게 불쌍한 민족이 어디 있느냐. 사람은 그렇게 재주 있으면서 정치 한다는 놈 잘못 만나서 신라 이래 오늘까지 이 꼴이다. 사람으로 보아서 무엇이 남만 못하단 말이냐. 이 나라의 지배자들이 그 어디를 보아도 악독했던 것뿐이다. 그래서 제대로 기운을 펴고 자리지 못했다.”

“이 도독놈들아, 이순신 팔아먹지 말고 이순신이 또 나게 하려무나....다만 너희 정치한다는 놈들이, 호랑이 아니 니와야 여우같은 놈들이 뽐낼 수 있을 것이므로 호랑이를 못 나오도록 한 것이 아니냐. 그것이 적어도 이조 5백년 역사 아니냐. 그래서 남들이 다 튼튼한 민족국가 세우는 때에 우리만은 실패한 원인이 아니냐
."(함석헌, 〈군인정치10년을 돌아본다〉, 《함석헌저작집》4권, 한길사, 2009, 264쪽)

위 글은 함석헌 선생님이 1971년 《씨알의 소리》 5호(10월)에 실었던 글이다. 여기서 함 선생님은 5.16에 대하여 그 동안 ‘군사혁명’으로 표현해 오던 태도를 버리고 비로소 5.16에 대하여 ‘5.16은 와서는 아니 되는 것’(239쪽), ‘5.16은 빗나간 칼이다’(255쪽)이라는 소주제에서 “군인이 정치에 주둥이를 내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일찍부터 들어 알고 있었다. 이것은 상식이다. 천하의 통칙이다 정치의 철칙이다 인류 전체가 여러 천 년을 두고 많은 쓰라린 체험을 통해서 얻은 지혜다“(4권 240~41쪽)라고 하면서 5.16에 대하여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이어 박정희를 중심으로 하는 군인정치로, 정치적 인물과 민족을 살려낼 인재들이 많이 죽어갔음을 애통해 했다.

유럽과 동아시아는 예로부터 정치구조가 달랐다. 그래서 다는 그렇지 않았지만, 유럽은 인재를 살리는 정치를 하였다면, 동아시아는 군주 이외의 사람이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는 전제적(專制的) 관념 때문에 많은 인제들이 왕의 칼날에 사라져갔다. 그래서 동아시아는 ‘반역(叛逆), 역적(逆賊), 모반(謀叛)’ 등의 용어가 역사서에 빈번히 등장한다. 그리고 모반이나 반역ㆍ역적의 대열에 든 사람들은 삼족(三族; 부계, 모계, 처계의 세 족속을 이르는 말로 대략 45명에서 60명 내외가 된다)을 멸하게 된다. 그러니, 이러한 사회구조 속에서 인제가 만들어지기란 불가능했다고 보인다. 대개 인재는, 유연한 사고를 가진 자들 중에서 나오는 법이다. 유연한 사고는 사회비판적, 체제비판적 사고를 말한다. 비판적 사고를 가지지 못한 자들은 인재가 될 수 없다.

유럽은 고대 그리스, 로마 때부터 민주정과 공화정 등 모범정치를 만들어냈다. 그 뒤에는 인재를 살리고 키우는 정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새로운 권력자가 나타나면(설령 독재자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정치에 비판적인 태도를 가진 정적(政敵)의 경우라 할지라도, 그를 잡아서 죽이지 않고 다른 나라 또는 해외로 추방하였다. 그를 추방하는 것은, 차후 자신이 정치에서 물러나고 그 인물이 권력을 장악했을 때 “더 좋은 정치를 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배려 때문이다. 그래서 그리스의 경우, 참주정을 단행하던 페이시스트라토스(Peisistratos, BC 600 ? ~ BC 527)는 독재정치를 하면서도 참주정에 비판세력이었던 클레이스테네스(Cleisthenes, ? ~ BC 570)를 죽이지 않고 해외로 추방한다. 그리고 뒤에 클레이스테네스는 아테나로 돌아와 참주정을 끝내고 민주정을 이끌어낸다. 이렇듯 정치에서는 괜찮은 사람 하나가 중요하다.

이제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자. 우리나라는 함석헌이 말한 바와 같이, 이승만 친미반공독재 때는 민족통일의 이념을 가진 인재들이 많이 죽었고, 박정희 반공유신독재 때는 민주주의 이념을 가진 자들이 많이 희생을 당하였다. 그리고 전두환 친미야만독재 때는 반미세력과 민주인사들이 감옥으로 많이 가는 바람에 인재들이 수난을 당하였다. 이 탓으로, 지금 한국 사회는 옳고 그름을 판단할 정신적 가치기준을 상실하였다.

4대강 개발 사업이 어떤 것인지, 물질주의의 패해는 무엇인지, 환경과 생태파괴가 무엇인지, 고향의 강 사업이 무엇인지, 비무장지대 개발이 무엇이지, G20 정상회의가 무엇인지, 민족통일을 왜 해야 되는 건지. 오늘 우리 사회 사람들은 도데체가 아는 게 아무 것도 없는 듯이 보인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무감각하고 무비판적 사회가 된 것은 우리 사회에 정신적 지도자를 키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역대 권력자들이 이들을 모두 죽였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우리는 비판적 인재, 곧 정신적 지도자를 키워나가야 한다. 정치지도자보다 정신적 지도자가 더 중요한 시점이다.(2010. 11.9 아침, 취래원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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