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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취래원 농사 칼럼

'기생적 수구세력'의 족보를 캔다

by anarchopists 2020. 1. 6.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11/12 06:54]에 발행한 글입니다.


‘기생적 수구세력’의 족보를 캔다.
-한미FTA의 밀실 협상을 보면서-

[함석헌]
지금 우리나라 정치에 대해 불평을 말하는 자를 국민이 아니다 하고 내몰진대 이 나라는 텅 비고 말 것이다. 그러면 정치하는 이들은 누구와 더불어 이 나라를 누릴까. 그러지 말아요. 제발 마음을 크게 가지고 이 우는 씨알들의 호소를 들어주어요! 나무라고 욕하는 자가 그래도 친구지, 외국사람은 형식적인 칭찬을 하고 돌아서면 비웃는 줄 몰라요
?(함석헌, 〈‘생각하는 백성이라냐 산다’를 풀어 밝힌다〉, 《함석헌 저작집》5권, 한길사 2009, 123쪽)

의 글은 함 선생님이 1958년 《사상계》8월호에 〈생각하는 백성이라냐 산다〉는 글을 게재하였다가 이승만 당국에 체포되어 잠시 감옥에 갔다가 나와서 다시 쓰신 글이다. 이제나 저제나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정책과 행보를 비판하고 불만을 터트리면, 싫어한다. 그러나 함선생님이 말 한 것과 같이 권력자들이 “나무라고 욕하는 자가 친구”이고 외국은 결코 친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데 현실 정치는 그렇지가 않다. 그래서 오늘은 한미FTA 밀실타협과 관련하여 기생적 수구세력의 족보를 캐보기로 한다.

노무현 정권시대다. 난신오적(亂臣五賊: 조순형, 홍사덕, 최병렬, 박관용, 김종필)들이 ‘의회주도 정치쿠테타’를 시도한 적이 있다.(2004. 3.12) 그러나 대한민국 방송언론들의 ‘정의로운 용기’와 민중들의 끓어오르는 민주주의 수호의지에 의하여 의회의 정치쿠데타 시도는 실패하였다. 그러자 ‘3.12정치쿠테타’를 획책하던 의회세력들은 자신들을 ‘건전한 보수’로 규정하고 보수국민의 지지를 호소하였다. 그리고 지금도 여권의 의원들은 여전히 자신들을 ‘건전한 보수’로 자칭하고 있다. 그렇지만 지금의 의회세력은 ‘기생적 수구세력’일뿐, 결코 ‘자생적 보수세력’이거나 ‘건전한 보수’일 수가 없다. 수구(守舊)와 보수(保守)는 개념상 의미가 다르다. 사전적 의미로 보아도 “수구는 낡고 묵은 제도와 썩은 습관에 집착하여 일체의 변혁과 개혁, 혁신을 거부하는 것”을 말하고, 보수는 “급진적 변화에 반대하여 현상적인 것을 그대로 유지하기를 바라되 부분적인 개량은 일정부분 인정”하는 세력을 말한다. 따라서 진보에 대한 대칭개념은 보수이지 수구가 아니다. 그런데도 한국의 ‘기생적 수구세력’은 자신들을 ‘자생적 보수세력’으로 자칭하고 있다. 크게 잘못이다.

한국의 정치구도에서는 아직 ‘자생적 보수세력’이 형성되지 않았다고 본다. 사회가 정상적으로 발전하는 데는 진보적 사고도 중요하지만 전통과 관습이 현상화되어 정체(正體)된 제도나 관습을 보전하려는 보수적 노력도 필요하다. 그렇지만 한국의 정치판에는 현상화된 전통을 유지하려는 진정한 ‘자생적 보수세력’은 없다. 자신의 기득권만 지키려는 ‘기생적 수구세력만’이 있을 뿐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기생적 수구세력’들이 그 동안 누려왔던 기득권을 내놓지 않으려고 이미 용도가 폐기된 반공이념과 지역주의를 가지고 최악의 발악을 하고 있다. 이것을 볼 때마다 일희일비(一喜一悲)가 인다. 그러면 ‘기생적 수구세력’의 내력과 속성을 알기 위해 이들의 뿌리를 역사적으로 규명해 보자.

강화도조약을 계기로 조선을 병탄(倂呑)하고자 일본제국주의는 조선의 봉건세력을 그들의 지지기반으로 이용한다. 그리하여 일제는 조선말기 동학민중 등 피압박민중의 반봉건 항쟁으로 위기에 몰려 있던 지주층을 보호하기 위해 조선의 경제구조를 지주제 강화와 봉건적 생산관계로 재편한다. 이를 통해 봉건지주층을 제도 안으로 끌어들여 일제통치의 정치기반으로 삼는다. 이 결과 조선의 지주는 ‘식민지 지주’(압제세력)로 거듭나고 한국농민은 착취 받는 가난한 농민(피억압세력)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후, 식민지 조선은 식민지 지배계급과 반식민민중계급 사이에 모순을 낳고 이 두 세력의 상호 대립과정에서 민족해방운동을 탄생시킨다. 민족해방운동 과정에서 반식민민중계급은 일제의 탄압으로부터 해방되고자 춥고, 헐벗고, 굶주리는 인간의 한계상황을 극복하면서 일제와 아귀차게 싸웠다. 그러나 조선의 친일 압제세력들은 일제의 보호 아래 호의호식하면서 온갖 추잡하고 더러운 방법으로 민중을 탄압하고 민족해방운동을 훼방하였다. 이러한 일제에 빌붙어 반식민민중계급을 탄압하던 친일 압제세력이 한반도 남한의 ‘기생적 수구친일세력’의 1세대가 된다.

반식민민중계급의 항일투쟁과 국제적 노력으로 해방이 왔다. 이번에는 미국이 일본을 대신하여 한국을 신식민지로 만들었다. 미국은 한국을 종속국으로 만드는 한편, 한국지배의 방편으로 일제강점기의 식민지 지배계급(친일파)을 미군정 통치에 활용하였다. 이를 계기로 일제에 빌붙어 호의호식하며 민중을 탄압하던 제1세대 ‘기생적 수구반동세력’은 잽싸게 친미파로 변신하였다. 그리고 또 다시 미국 속국하의 한국에서 다시 제 동포를 압제하는 세력으로 군림한다. 친미파로 변신한 ‘기생적 수구반동세력’은 바로 친일관료, 식민경찰, 일제군인, 지주계급 등 반민족적 반동들이다.(미군정 당시 경찰의 82%가 일제 총독부 소속 경찰 출신이었다.) 그리고 친미적이고 영어를 할 줄 아는 지주 출신의 자제들이 행정고문이나 군정관리로 들어앉게 된다.

이들은 일제로부터 물려받은 재산과 미국이 안겨준 권력을 세습하면서 한국사회에서 다시 기득권 세력을 형성하였다. 이들 친미적 수구세력을 정치기반으로 하는 미군정은 다시 남한을 동아시아의 반공산주의와 반계급주의의 전진기지로 만들어갔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한국사회는 극단적 반공주의 사회로 변질되어 갔고 한국의 정치구도는 반공적 자유민주주의국가로 왜곡되어 갔다. 그래서 남한사회에서 자유와 민주, 평등과 인권을 주장하는 진보시민은 ‘진보적 인사= 빨갱이’ 라는 등식이 성립되었다. 반공이념으로 무장되고 친미적 기득권세력으로 변신한 ‘기생적 수구세력’(이승만과 그 관료)은 일제에게 배운 ‘민중착취기술’을 동원하여 민주민중을 압제해 들어갔다. 이렇게 해서 남한의 민중들은 이들에게 정치경제적으로 억압당하는 외에 사상ㆍ학문ㆍ 양심의 자유까지 혹독한 탄압을 받게 된다. 이렇게 친미반공이념으로 무장하고 민중을 압제하던 세력이 바로 제2세대 ‘기생적 수구반공세력’이 된다.

미국의 배후조종을 받으면서 장기집권을 구가하던 2세대 ‘기생적 수구반공세력’은 민주시민과 학생이 주도하는 4월혁명(1960)에 의하여 붕괴되었다. 이를 계기로 한국은 자력에 의한 민주주의 걸음마를 시작하는 역사적인 동기를 부여받았다. 그러나 5.16쿠테타(1961), 유신쿠테타(1972), 12.12쿠테타(979), 광주민중학살(1980)의 주범인 군부독재세력에 의하여 한국의 민주주의는 다시 혹독한 시련기를 맞는다. 그럼에도 ‘기생적 수구세력’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하여 이들 쿠데타세력에 빌붙어 군부독재의 하수인 노릇을 서슴없이 해댔다. 기득권 수호를 위하여 지역주의를 내세우며 국론분열에도 광분하였다. 또 민족의 분단을 외면한 채 오로지 기득권(권력과 저본)만을 장악하기 위하여 한반도 북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고 민족통일을 방해하였다. 이렇게 군부독재와 지역주의에 기생하면서 민족통일, 군부타도, 독재반대, 민주쟁취를 주장하는 민중을 탄압하던 자들을 제3세대 ‘기생적 수구친미세력’이라고 한다.

이러한 ‘기생적 수구세력’들이 몸을 담고 있던 포대자루가 자유당이요, 공화당이요, 민정당이요, 그리고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이다. 때문에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 의원들이 자신들을 ‘자생적 보수세력’으로 지칭하고 있는 말은 전혀 어불성설이다.

이렇듯, 한국의 수구세력은 태생이 기생적이기 때문에 독자적 정치행보를 취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기생적 수구세력’의 준동에는 반드시 이들 배후를 조종하는 외세 내지는 보호세력이 있기 마련이다. 미국이다. 그래서 한미FTA협상도 밀실협상을 통해 미국의 입맛대로 해주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을 짙게 한다. 자꾸 ‘기생적 수구세력’들이 나라의 발전보다 미국의 눈치나 보고, 자신의 이익에만 몰두한다면, 더 이상 4.19혁명, 5.18광주혁명, 6.10항쟁의 정신을 이어받은 민주민중의 저항에 부딪치게 되리라고 본다. 함석헌이 “외국사람은 형식적인 칭찬을 하고 돌아서면 비웃는 줄 몰라요?”라고 한말을 다시 상기해 본다.(2010.11.12., 2004. 3.19 글을 다시 쓰다, 취래원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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