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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취래원 농사 칼럼

새해는 바꾸자-독점의식 버려라

by anarchopists 2019. 11. 27.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1/02 06:56]에 발행한 글입니다.

[새해메세지] 2

새해는 바꾸자-독점의식 버리자.

인간의 역사는 힘의 논리에 의하여 권력을 독점함으로써 정치적으로 지배와 피지배관계라는 불평등의 계급관계가 만들어져왔다. 그리고 그 힘에 의하여 생산력을 독점한 지배계급이 생산물을 독점하면서 경제적으로 불균등의 생산관계가 성립되었다. 무노동의 지주와 농업노동자인 농민관계다. 이러한 생산관계가 근대 산업사회로 오면서는 무노동의 자본가와 산업노동자, 자본독점가와 종업원이라는 불평등의 계급구조로 전이되었다.

정치면에서도 근대 이전에는 정치권력을 지닌 지배계급들이 통치수단으로 문자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를 독점하여 유식과 무식이라는 불균형의 문화적 계급관계를 만들어냈다. 이와 같이 옛날에는 권력의 독점, 부의 독점, 문화의 독점의식이 불평등, 불균등, 불균형의 인간관계를 가져다주었다. 따라서 인간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독점적 지배관계가 심화될수록 그 사회는 발전·진화하는 사회가 아니다. 낡은 사회다. 미개한 사회에 가깝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아직도 여러 분야에서 독점의식을 강하게 보이는 존재들이 많다.

독점의식이 가장 강한 분야는 정치분야다.
권력을 장악하면, 권력을 이용한 부의 축적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부를 독점하려는 욕망은 곧바로 정권장악을 위한 더러운 이전투구(泥田鬪狗)에 들어간다. 올해 총선과 대선이 겹쳤다. 그래서 그런지 벌써부터 이전투구의 현상이 눈에 보인다. 권력 장악을 위하여 협력과 화해라는 인간의 도덕정신과 사회적 양심을 버렸다. 남을 짓밟고 올라가야 하는 정치권력의 속성 때문에 거짓과 헐뜯음과 비난 등 온각 야비하고 비열한 더러운 수단들이 동원되고 있다. 4년 전 대통령선거에서 써먹었던 그런 비열한 수단 말이다. 이렇게 정치사회가 더러워지는 것은 권력의 독점의식에서 나온다.

지난 날, 노무현 정권은 사회개혁이라는 정치구호와 함께 촛불시위, 의회과반수 의석 확보 등 정치사회적 조건으로 절호의 개혁정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런데 개혁에 실패한 것은 구태의 틀을 못 벗고 정치적 미혹에 빠져 방황했기 때문이다. 곧, 관료인사에 대한 독점의식이다. 세간에 코드인사, 코드정치라는 풍자가 그것을 말해준다. 결국 역량을 갖춘 일꾼들이 정치현장에 나가는 길을 원천봉쇄하고 말았다.

한나라당은 더하다.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시대를 “잊어버린 시대”라고 표현 했다. 아주 나쁜 표현이다. 권력을 자기네만 장악해야 한다는 더러운 욕망의 표현이다. 그래서 또 권력장악을 위한 추한 모습들을 지금도 보이고 있다. 친일파 박정희 딸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보기 흉한 수작들을 부리고 있다. 권력의 독점의식 때문이다. 권력은 주기적으로 교체를 이루어야 한다. 그래야만 급진적 개혁과 점진적 변화가 조화를 이루면서 사회가 진보해 간다. 이게 사회진화의 법칙이다. 수구적 기득권층들만 권력을 독점하게 되면, 사회는 변화와 개혁의 시간을 갖지 못한다. 정체되어 썩는다. 그리고 권력이 부패한다. 그 피해를 나라사람들이 입는다.

경제적 독점의식도 그렇다. 요즈음 한국사회의 유행어는 양극화 현상이다. 아니 양극화 심화현상이다. 우리 사회에서 양극화 현상은 필연적으로 나왔다. 우리 경제가 박정희라는 희대의 경제 사기꾼에게 농락당하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적다. 이것이 문제다. 그래서 60대 이상의 인구가 다 사라져야 바른 역사평가가 정당하게 받아들여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박정희는 ‘가시적 경제성장’을 그의 경제정책으로 삼았다. 100년 후의 민족경제는 생각지도 못하였다. 그것은 권력을 영원토록 장악하려는 독점의식 때문이었다. 박정희의 권력 독점의식이 우리 경제를 오늘날 WTO, UR, FTA에게 농락당하게 만들었다. 이 사실을 아는 이는 젊은 사람들이다.

박정희는 자신의 경제정책에 대한 신뢰를 높이기 위하여 모든 금융체제를 독점하였다. 그리고 금융특혜를 미끼로 수출위주의 산업정책을 경제원동력으로 삼았다. 이것이 정경유착을 가져왔다. 이 결과 부유층과 권력자에게 자본이 집중되도록 만들었다. 또 미래지향적 혜안이 없이 가시적 경제성장의 효과만을 노려 인구감소정책에 급급하였다. 큰 실책이다. 이러한 잘못된 경제정책을 박정희 이후 권력자들이 무비판적으로 계승하였다. 전두환이 그렇고 노태우, 김영삼이 그랬다. 심지어 김대중, 노무현도 그랬다. 이들도 박정희식 경제정책을 개혁하지 못하였다.

특히 두뇌구조가 단순하였던 김영삼은 준비 없는 세계화정책과 신자유주의정책을 밀어붙였다. 이 결과 필연적인 양극화 현상이 올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수구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이명박이 등장하였다. 그는 부자 감세정책으로 우리 사회를 극단적 양극화 사회로 만들었다. 모두가 권력과 자본의 독점의식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차기 대권주자인 박근혜 또한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반성조차 안 한다. 그리고 “감세정책으로 작은 정부 지향”라는 경제정책을 지향할 판이다. 감세정책은 또 다른 부의 독점을 부채질 할 뿐이다. 박근혜가 권력을 장악하게 되면 박정희식 경제정책의 대부활로 이 나라가 99% 씨알의 나라가 아닌 1%의 기득권세력의 나라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든다.

이렇게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권력과 자본에 대한 독점의식만 갖고 있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 공동체 구성원의 대다수가 소수의 권력자와 자본가를 위한 빈곤한 상업노동자로 전락하여 살고 있다. 이제 개혁과 변화가 와야 한다. 대한민국 공동체를 수평적 사회구조로 만드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의 불균형을 혁파하는 일이 급선무다. 수평적 사회로 전환은 정치권과 경제계가 권력과 자본의 독점의식을 갖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경제정책의 대원칙을 부의 합리적인 분배에 두는 일이다. 분배원칙의 기본 틀은 부의 독점의식을 개혁하는 양심을 세우는 일이다.

사회문화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일제시대 친일적 언론이었음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반성을 해야 한다. 모든 게 반성의 성찰을 통해서만 바른 생각이 나온다. 조선·동아는 일제시대 창간한 민족지라는 알량한 민족의식을 등에 업고 민족언론을 가장하여 독자를 호도하고 있다. 저들은 정당한 계도지로서 사회의 정상적인 발전을 주도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자신의 언론사에 이익이 되는 집단과 결탁하여 자사 언론의 이익창출에만 혈안이 되어있다. 민족구성체의 창조적 발전과 민족문화 창달과 건전한 사회의식 배양은 뒷전이다. 이러한 폐단은 언론에 대한 독점의식에서 나온다.

지식의 독점의식도 고쳐야 한다. 고등학교 실력으로 인생 전체의 헤게머니를 장악케 하는 대학입시제도는 이제 폐기해야 한다. 인간은 다양한 조건에서 태어난다. 그리고 저마다 타고난 재능과 역량이 다르다. 그래서 나라는 다양한 사람들이 평등한 조건 속에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기반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쟁사회를 지양해야 한다. 이제 경쟁논리는 사라져야 한다. 국제사회에서는 경쟁논리가 이미 사라지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이 나라는 중·고등학교시절 실력(경쟁)으로 인생을 결정되는 사회구조를 고수하고 있다. 이것은 불행한 사회를 재생산할 뿐이다.

2012년은 총선과 총선이 겹치는 중요한 해다. 고칠 게 많다. 돈 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의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경제성장 제일주의에서 양심배양 제일주의로 나가야 한다. 기계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나가야 한다. 개발 중심에서 자연 중심으로 나가야 한다. 이기적 경쟁 중심에서 이타적 평등 중심으로 나가야 한다. 이러한 사회를 만들어갈 인물이 이 나라의 앞 대열에서 앞서 나가야 한다.(2012. 1.2, 취래원농부)

취래원농사는
황보윤식(皇甫允植, 醉來苑農士)
학생시절부터 민족/통일운동을 하였다. 동시에 사회개혁에도 관심을 갖고 생명운동을 하였다. 나이 60을 넘기자 바람으로, 도시생활을 과감히 접고 소백산(영주) 산간에 들어와(2010) 농업에 종사하면서 글방(書堂, 반딧불이서당)을 열고 있다. “국가보안법폐지를위한시민모임”, "함석헌학회" “함석헌평화포럼”, “함석헌평화연구소”에도 관여를 하고 있다. 글로는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2017) 등 다수의 글이 있다.(수정 2018. 10.3) /함석헌평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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