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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취래원 농사 칼럼

[오늘의 명상] 한국은 미국의 자발적인 식민지국가인가

by anarchopists 2020. 1. 11.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9/02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한국은 미국의 자발적인 식민지국가인가.

[함석헌 말씀]
1. 나는 초(超)국가주의에 사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의 국가라는 것은 성립하는 초기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수천 년 정도로 내려오는 동안에 자기의 사명을 다하기 보다는 인간의 성장을 방해하는 노릇을 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선진국에서 국가는 지배주의에 기울어지고 있는 정치가들을 도와서 민중을 내리누르는 하나의 우상이 되고 있습니다
.(함석헌, <한국의 민중운동과 나의 걸어온 길>, 《함석헌저작집》13 우리민족의 이상, 한길사, 2009, 231쪽)

2. 만일 우리가 할 일이 있다고 한다면 될 수 있는 대로 지금 대국이 되어가고 있는중국이 미국이나 소련과 같이 패권을 다투는 나라로 떨어지지 않도록 한국이나 일본이 할 일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즉 세계를 건질 길이 있으면 나라를 건질 수가 있지만, 세계를 정복하고 자기 나라만을 건지려고 한다면 자기 나라도 건질 수 없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이 나의 생각입니다.(함석헌, <앞의 글>, 232쪽)

[오늘의 명상]
위의 글은 함석헌 선생님이 1985년 12월 일본 와세다 교회에서 있었던 제21회 <한국 그리스도인과의 연대를 생각하고 기도하는 모임>에서 행한 강연 내용입니다(《복음과 세계》1986 3월호) 여기에 강대국 소련(오늘날 러시아)과 미국, 그리고 중국이 나옵니다. 이어서 국가주의와 패권주의를 경계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러한 문제와 연결시켜 문화적으로 <한국은 미국의 자발적인 식민지국가인가>라는 주제로 오늘의 명상을 시작할까 합니다.

1918년 11월, 세계1차 대전(1914. 7. 28 ~ 1918. 11. 11)이 끝납니다. 그리고 전후처리를 위하여 전승극인 연합국들은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파리강화회의(1919. 1. 18~ 1920. 1. 21)를 열게 됩니다. 그러자, 당시 열강들의 반식민지 상태였던 중국 지식인들은 파리강화회의와 미국의 역할, 그리고 미 대통령 윌슨(민족자결주의 주장)에 대하여 기대를 겁니다. 그러나 파리강화회의에서 중국인의 기대는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그 이유는 파리강화회의에서 일본이 연합국에 속했다하여 패전국 독일이 중국에서 가졌던 이권(산둥21개조)을 모두 일본에게 귀속시킵니다. 그리고 미국도 이를 지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중국 지식인들은 세계와 미국에 대한 실망감과 함께 민족적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이의 영향으로 중국인들은 5.4운동(반제국주의, 반봉건주의)을 일으킵니다. 이 결과 중국인에게는 다음과 같은 인식이 팽배해집니다. 그리고 이 생각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1) 남에게 의지해서 독립국가가 되려고 하였던 알량한 구국(救國)의 꿈을 깨자.
2) “저들 구미 강대국은 입으로는 ‘정의, 인도’를 말하지만 일단 자기네의 이익과 상충될 때는 결코 정의, 인도를 말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깨닫자.
3) 중국이 만일 스스로 강국이 되려는 꿈을 갖지 않는다면 결코 강국이 될 수 없다.

곧, ‘강국몽’(强國夢)입니다.
이 강국몽이 함 선생님도 우려했던 오늘날 중국의 패권주의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오늘날 동북아질서에 재편이 오고 있지요. 그 후 중국인들은 미국에 대한, 그리고 국제회의에 대한 낙관적 환상을 빨리 떨쳐버립니다. 그래서 일본의 중국진출을 저지하고 중국 독립을 보장하기 위한 워싱턴회의(1921)가 열립니다. 그러나 중국지식인들이 워싱턴회의에 대하여 거의 부정적 시각으로 바라봅니다. 즉, 워싱턴회의는 미국이 “문호개방ㆍ기회균등(門戶開放, 機會均等)이라는 명분을 빌어, 중국에 대한 자본주의 경제침략”을 하려는 속셈으로 인식합니다. 이후 중국은 미국에 대한 기대보다는 소련에 대한 기대를 갖게 됩니다. 그리고 1946년 중국대륙은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합니다.

1920년대 중국지식인의 태도를 가지고, 오늘날 한국인들의 모습을 보면, 참으로 한심합니다. 한국이 미국의 51번째 주(州, state)가 아닌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한국인의 모든 기치관의 기준이 미국생활입니다. 요즈음 젊은이들의 하고 다니는 모습은 한국이 곧 미국입니다. 자기 철학이 없습니다. 자기 생각이 없습니다. 미국을 모방하는 게 자기 삶의 행복인 듯 느껴집니다. 미국의 부패한 문화가 곧 한국 젊은이들의 문화패턴이 되었습니다. 가수들의 노래를 들으면 일제시대 친일적 노래와 다를 바 없는 친미적 노래입니다.

물론 이 나라가 이렇게 된 데에는 세계화를 내걸고 자기 문화를 소외시키는 정치인들의 잘못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자기 문화를 계승ㆍ창달시킬 궁리는 안 하고 “영어몰입교육”이나 주장하였으니. 비교육적 문화에 매료되어 있는 가수들의 노래가사가 죄다 영어와 한글의 ‘짬뽕’입니다. 도데체가 어느 나라 노래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도시상인들이 내건 상점이나 빌딩의 간판, 그리고 아파트 이름들, 어느 나라 국적인지 알 수 없습니다. 완전이 미국판, 개판입니다. 또 음식문화도 미국식 패스트푸드에 한국의 전통적인 슬로푸드가 점령을 당했습니다.

게다가 요즈음 젊은 부부들은 미국의 육아교육법을 놓고 애기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우리의 전통적 육아법은 미신으로 생각합니다. 이렇게 되면, 말만 한국애지 크면서 미국사람이 됩니다. 또 한국교육에 실망한 사람들, 그리고 미국을 선망하는 사람들은 자기 아이들을 일찌감치 미국으로 유학을 보냅니다. 마치 일제시대 돈 많은 부자와 지주들이 자식들을 일본에 유학시킨 것과 똑같습니다. 이렇게 보니, 이런 생각이 듭니다. 20세기 전반기 한국이 일제의 식민지였다면, 21세기 전반기는 미국의 식민지다. 다만, 앞의 것이 강제된 식민지였다면 지금은 자발적 식민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과연 ‘미래 한국’은 존재할지 걱정이 됩니다.(2010. 9.2 새벽, 취래원농부)

취래원농사는
황보윤식(皇甫允植, 醉來苑農士)
학생시절부터 민족/통일운동을 하였다. 동시에 사회개혁에도 관심을 갖고 생명운동을 하였다. 나이 60을 넘기자 바람으로, 도시생활을 과감히 접고 소백산(영주) 산간에 들어와(2010) 농업에 종사하면서 글방(書堂, 반딧불이서당)을 열고 있다. “국가보안법폐지를위한시민모임”, "함석헌학회" “함석헌평화포럼”, “함석헌평화연구소”에도 관여를 하고 있다. 글로는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2017) 등 다수의 글이 있다.(수정 2018. 10.3) /함석헌평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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