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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영호 교수 칼럼

[오늘의 명상] 통일논의 다시 본격화하자.

by anarchopists 2020. 1. 9.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9/28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통일논의 다시 본격화하자
'낮은 단계의 영방'다시 논의하자

고구려의 힘든 싸움이 고구려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던 것같이, 그 죽음도 고구려 하나만의 일이 아니다. 고구려의 사명은 전 민족과 그 문화를 보호하기 위하여 국경을 지키는 일이었다. 그들은 마지막까지 그것을 하였다. 한족(漢族)과 선비(鮮卑)족의 닥쳐오는 사나운 물결을 막다가 막다가 그 일선 위에 거꾸러진 것이다. 낙랑을 도로 찾느라고 그 손은 이미 다쳤고, 선비, 모용(貌容)의 포악한 대적을 막느라고 그 다리는 벌써 상하였고, 수(隋), 당(唐)의 흉악한 도둑을 용하게 물리치기는 하였으나 그로 인하여 가슴팍에 찔림을 입은 다음에는 신라가 염치없이 다시금 당나라를 이끌어들여 앞뒤로 들이치는데 그 고구려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민족 통일의 제일 첫째의 자격자인 고구려는 하다하다 못해 제 비통한 주검을 전선 위에 가로 놓는 것으로써 겨레에 대한 마지막 공헌으로 삼고 갔다.

겉으로 보면 신라와 고구려는 서로 적국 사이요, 이해가 서로 다르다 할 수 있으나, 전민족의 자리에서 보면 신라의 통일사업을 고구려도 도왔다. 신라가 삼국통일을 한 것은 고구려의 비장한 주검의 그늘 밑에서 된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반도 동남 구석의 조그만 신라가 반도 통일의 터를 닦게 된 것은 고구려가 몇 백 년 두고 북쪽의 침략자와 피를 흘리며 고된 싸움에 쉴 날이 없는 동안 덕택을 입어가면서 된 일이다. 신라 통일사업의 공로의 거의 절반은 고구려의 영 앞에 제물로 바쳐야 한다.
그러나 신라가 통일을 하기는 했으나 그것이 본래 마땅히 될 것대로 된 것이 아니므로, 다시 말하면 통일을 참으로 이룬 것이 아니므로, 한국 역사는 고구려의 패망을 계기로 일대 전환을 하게 된다. 이제부터 비극의 시작이다. 고구려가 그 거인의 시체를 만주 벌판에 드러내 놓음으로써 한국 민족은 고난의 연옥 길을 걷게 된다. 엎누름과 부끄럼이 퍼붓고 한숨과 신음소리가 연달아 나오게 된다... 삼국 시대는 어느 모로 보나 한국 역사의 가장 중요한 귀절이다.

신라는 너무 과한 값을 주고 통일을 샀으나 그 통일은 참 보잘 것 없는 통일이었다. 청천강 이북을 가 보지 못한 통일이다. 통일이 아니요, 분할이다. 이 때문에 나라 땅의 대부분은 잃어지고 겨우 일부분만이 남아서 한국을 대표하게 되었고, 사람과 민족의 아름다운 것이 많이 없어지고 아름답지 못한 것이 남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그 통일도 백년이 못 지나서 썩고 말았다. 오늘 경주에 남아 있는 신라문화의 유물을 민족의 자랑거리라 하며, 이따금 지나가는 세계의 손님들이 가벼운 칭찬을 던지고 가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다 오늘의 한국이라는 거친 들 가운데 섰으니 말이지, 한 다리를 만주 평야에 디디고 한 다리를 개마고원 위에 놓으며 오른편에 발해를 끼고 왼손으로 동해를 더듬으려던 그 때의 기상으로 한다면 그만한 것이 그리 놀랄 것이 못 된다
.(함석헌전집 1: 129)

결과론적으로 고구려가 (신라가 이룬 반쪽의) 삼국통일을 위한 방패막이 역할을 했다는 지적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오늘의 북한도 일정 부분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남북의 갈림, 동서의 갈등을 보면 오늘의 한국은 삼국시대의 연장이나 마찬가지다. 고구려(북), 신라(남동), 백제(남서)가 아직도 쟁패하고 있는 형국이 아닌가. 아무리 부정해도 그것이 (심리적, 정치적) 현실이라면 통일과정에서 그에 맞는 정치체제가 필요하지 않을까. 바로 남북이 이미(7.4 공동선언) 합의한 바 있는 ‘낮은 단계의 연방’ 국가가 그것이다. 다른 더 좋은 대안이 없다면, 그 방향으로 왜 아무런 진전이 없는가. 역사를 다시 반복하자는 것인가. 만주 땅은 두고라도, 조선시대의 영토인 압록강 이남조차 버리자는 것인가. 미래에 대한 아무런 비전이나 계획이 없는 정치현실이 답답하기만 하다. (김영호)

김영호 선생님은
인문학의 몇 분야를 방황하면서 가로질러 수학, 연구(스톡홀름대, 하버드대 펠로우), 강사(연세대 숭실대), 교수(인하대, 현재 명예교수)로 일했다. 전공은 종교철학(원효사상)으로, 그의 세계관의 큰 틀(패러다임)은 다원주의다. 다원주의를 통해 민족분단. 사회 및 지역 갈등, 종교간 갈등 등 한국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극복하기위한 방법론을 모색하고 있다. 그의 사상적 준거는 함석헌과 크리슈나무르티이다. 그 동안, 해외 민주화운동의 도구인 민중신문』(캐나다) 창간(1079)에 관여,『씨알의 소리』편집위원, 함석헌기념사업회 씨알사상연구원장을 맡기도 했다. 지금은 함석헌평화포럼 공동대표와 함석헌학회 학회장직을 맡고 있다.(2015년 12월 현재)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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