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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영호 교수 칼럼

[오늘의 명상] 지금이 삼국시대인가?

by anarchopists 2020. 1. 9.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9/29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지금이 삼국시대인가?
지역차별, 남북, 동서 갈등을 아직고 안고 있게.

고구려는 볼 만한 나라였다. 탄탄한 조직의 나라를 이루어 자유와 통일을 다 아는 사람들이요, 기개가 있었다. 부지런하고 질박하고 법률은 엄하고 싸움을 잘하면서도 '연일가무(連日歌舞)'하는 풍정도 있었다. 이 세 나라가 솥발 같은 형세로 맞서서 서로 나라 힘을 펴기를 다투었다. 이 삼국시대는 '한'민족의 한 큰 시련의 시기였다. 민족적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그 힘을 기르고, 그 이상을 다듬고, 그 의견을 넓히고, 그 정신을 높일 때였다. 민족통일을 완성하는 것이 이 시대에 내어준 과제였다. 그리하여 한 통일된 나라를 이루었어야 하는 것이었다. 삼국이 서로 알고 하였건 모르고 하였건, 서로 서로 빼앗으려고... 싸웠다, 화친하였다... 하는 동안에 이루어질 것은... 만주, 조선에 퍼져 있는 전 민족을 하나로 통일한 한 나라, 그야말로 '한 나라'가 나왔어야 하는 것이다. 마치 이탈리아 반도 안에 갈라져 있던 여러 민족 씨름에서 지중해 세계를 통일한 로마가 나왔고, 켈트, 앵글로색슨... 등 여러 민족이 드나들며 싸우는 싸움에서 대영국민이 이루어졌고, 황하, 양자강 유역에 몇 만으로도 헬 수 없이 많았던 나라들이 천년이나 두고 뒤끓고 싸운 끝에 아시아의 절반을 그 문화권 안에 통일한 한(漢)나라가 나왔듯이.
(함석헌전집1: 120-1)

삼국이 솥발(鼎足)처럼 정립(鼎立)하여 서로 경쟁하면서 민족의 힘을 기르고 문화를 창달하면서 완전한 통일을 이루었어야하는데 분열되고 말아 민족통합이 물 건너갔다는 한탄이다.

역사를 읽다가 매양 책장을 찢어버리고 주먹으로 땅을 치고 싶어지는 것은 그놈의 소위 신라의 삼국통일이라는 대목이다. 어려서 철없을 때 가르쳐주는 대로 썩어진 선비놈들의 소리 그대로 읽었지만 지금 분해 견딜 수 없다. 생각 없는 사람들 아직도 그것을 자랑으로 알아 국민 교육이랍시고 하고 있지만, 생각해 보라, 그것이 어찌 통일이겠나? 땅으로만 해도 중요했던 국토의 대부분이 없어지고 변변치 못한 그 일부분만이 남았으며 사람은 얼마나 없어졌는지, 문화는 어떤 것이 잃어졌는지 이루 다 알 수가 없는데 아무리 자기기만 자기위로로서거니 어찌 감히 삼국의 통일이라 부를 수 있는가? 그렇게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무엇이 되란 말인가?..

우리 민족의 가장 나쁜 버릇이 파쟁이요 지방색인데, 그것을 누가 만들었나?, 단군, 동명, 온조에게 그것 있었던가? 혁거세(赫居世), 김수로(金首露)엔들 있었을까? 이것은 틀림없이 외적과 흥정을 하여 나라 땅과 사람의 대부분을 넘겨주는 대신 그 일부를 얻어 제 몫으로 차지하고는 감히 민족통일의 이름을 도둑질하는 역사적 죄악을 지은 신라의 지배계급의 병든 심리에서 나온 것이다. 이 매국망족(賣國亡族)의 심리가 성격으로 굳어져 ‘경상도 대통령’이니 ‘전라도 대통령이니 하는 따위 생각으로까지 나왔다. 우리 민족의 모든 불운, 모든 죄악의 근원은 삼국이 그 역사적 과제를 옳게 차르지 못한 데 있다. 그 책임은 셋이 같이 져야한다. 그러나 고구려, 백제는 망했으니 소용 없고, 이기고 역사를 이어 받았노라는 신라가 전적으로 담당하는 수밖에 없다. (함석헌전집 17:28-9)

국토문제에 이르면 함석헌의 감성적인 음조는 더욱 높아진다. 이것을 지방색이나 소위 지역감정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함석헌의 객관적이고 엄정한 역사 통찰에서 나온 웅변일 뿐이다. 주관적 지역정서의 표현으로 느낀다면, 그것이 바로 아직도 그런 감정에 사로잡혀 있음을 들어내는 증거다. 역사적 사실에 내가 특별히 더 큰 책임이나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지금의 지역차별, 남북, 동서의 갈등을 함석헌은 삼국시대로 추적했다. 그밖에 달리 더 잘 설명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김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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