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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영호 교수 칼럼

[오늘의 명상] 수구세력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by anarchopists 2020. 1. 9.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9/27 07:33]에 발행한 글입니다.



수구세력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북한이, 중국의 동북4성이 된다는데

"삼국시대의 실패의 원인은 고구려가 망한 데 있다. 누구나 역사를 읽는 사람은 민족의 종주권을 고구려에 허하지 않을 수 없고, 또 일마다에서 고구려에 동정이 가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민족의 혼이 거기 대표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일 고구려가 그렇듯 갑자기 망하지 않았더라면 만주, 조선을 반드시 하나로 통일이 되어 큰 나라를 이루었을 것이요, 그랬다면 신라와 백제가 한때 분한 일이 좀 있다 하더라도 민족 전체의 운명은 잘못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 평원에까지 그 다리를 한번 뻗었을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평화를 사랑하고, 남을 업신여길 줄 모르는 한족이 한번 아시아를 쥐었더라면 세계 역사는 좀 다르게 되지 않았을까? 혼 빠지고 얼 빠지어 소국민으로 스스로 만족하는 후일의 조선 사람으로는 꿈도 못 꿀 일이겠지만, 그 때의 고구려로는 결코 못할 바가 아니었다. 역사상의 환한 사실이 이것을 증명한다.

고구려가 하려다가 못한 그 일을 후에 금(金), 청(淸)은 사실로 해놓았으니, 문화 정도가 훨씬 뒤떨어졌던 여진(女眞)도 하는 그것을 고구려가 못했을 리가 없다. 그런데 만일 고구려의 힘이 한때나마도 중국에 뻗었다면, 그것은 또 그만 두고 만주라도 놓지 않고 그 주인이 되었더라면 동양 역사는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적어도 조선의 형편은 지금으로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이렇게 말함은 제국주의를 주장함도 아니요, 무력주의를 예찬함도 아니다. 다만 민족 운명의 변천을 말하는 데서 지난날의 천하 형세가 그랬다는 말이요, 우리의 자기를 잃어버린 경로와 그 결과가 그랬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고구려가 망했으니, 이는 한갓 고구려의 일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민족 전체의 일이요, 한때의 실패만이 아니라 실로 길이 민족의 운명을 결정하는 일이다. 5천년 역사상에서 가장 아프고 쓰린 일이다. 역사를 읽어 매양 고구려의 실패에 이를 때, 책장을 찢어 버리고 싶고, 주먹으로 땅을 치고 싶지 않을 사람이 누구냐? 고구려가 망하여서 한족은 그 맏아들이 죽은 셈이다. 그 희망이 꺼졌고 그 유산이 모두 흘러 빠졌다. 물론 맏아들이 죽었으면 찌끄러기의 막내아들이라도 대를 이어야지. 하지만 막내아들이 뽐낼 자격은 없느니라. 마땅히 울며 섰어야하지. 신라는 찌끄러기 막내아들이다. 신라 문화라 자랑하는 사람들아, 생각 옅게 하지 마라. 그러면 네 혼이 또 줄어든다.

우리가 본래 흥안령 마루턱에서 천하 형세를 내다보며, 백두산 꼭대기에서 천지(天池)에 목욕하고 나라 일을 의논할 때에 그렇게만 생각했던 것이 아니니라. 고구려를 편들고 신라를 깎는다 하지 마라. 그런 좁은 마음을 가지고는 역사를 토론하지 못하느니라. 만주와 조선을 하나로 다스릴 하늘이 정한 자연적 위치인 불칸산(아마 백두산) 잔등에서 고구려가 떨어졌으면, 신라가 그 다음 아무런 재주를 부린다 하여도 요컨대 국한(局限)이 빤히 내려다보이는 일이다. 하물며 제 힘으로 된 것 아니요, 남의 힘을 빌어서 하였음일까? 한때 당나라를 업은 거라 하지 마라. 업히는 자는 업는 자를 되업자는 꾀가 앞서는 법이요, 남의 집 아들을 업으면 네 아들은 내려놔야 하지 않느냐?"
(함석헌전집 1권 126-7쪽)

근래 옛 만주 지역 즉 중국의 동북 3성(길림성, 요녕성, 흑룡강성) 지역에 대한 언급이 자주 있었다. 그것은 역사와 민족통일과 관련이 깊은 문제로서, 중국과 일본 사이에 맺었던 간도협약 100주년을 계기로 더 관심을 불러일으킨 바도 있다. 최근 북한 지도자 김정일이 장춘 지역을 방문하면서 새로운 우려를 자아내게 하였다. 북경에서 후진타오 주석이 날아와 악수하고 회담까지 하였다. 중국과의 밀착이 우리의 신경을 자극하는 일이다.

만일 북한이 붕괴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아무래도 중국 쪽으로 넘어가지 않을까. ‘동북공정’을 통해서 고구려가 원래 중국의 지방 세력이었다는 논리를 개발해온 중국은 북한지역을 원래 자기 구토라고 권리를 주장하고 ‘귀속’시킬 준비를 해온 셈이다. 한국과 미국이 각기 국내정치와 연관된 전략으로 인하여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더욱 북한을 소원시키고 있는 마당에 북한으로서는 중국 말고 달리 기댈 데가 없을 것이다.

왜 우리가 국토/민족 통일을 해야 하는가, 동북 3성, 그중에도 간도지역 즉 길림성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는 것이 좋은가. 우리에게 던져진 당면문제요 풀어내야할 화두다. 요즈음에 중국에서는 동북3성을 대치한 동북4성(3성+북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놀라운 소문이 들린다. 이런 지경에 왔는데도 우리의 보수(수구)정권은 민족의 숙원 사업에는 관심이 없는 이상한 정권으로 비친다. 무엇보다 보수가 지켜내야 할 것은 국토와 민족이 아닌가. 미국, 일본, 중국을 두고 그때그때 골라가면서 사대주의만 일삼아야하는가. 그러고도 보수(수구)라 할 수 있는가. 무엇을 지키자는 것인가. 지킬 것이 오직 가진 자들의 기득권이라는 것밖에 없는 정권인가.

민족이 안고 있는 이 당면문제에 대해서 아마 함석헌 만큼 분명한 근거를 제시한 역사가나 지식인은 드물 것이다. 그의 역사해석을 들어보자. 그의 명저로 꼽히는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함석헌은 고구려의 고토회복까지는 아니더라도 북벌(北伐) 같이 북방 경계를 지키고 확장하는 계획을 시도한 왕, 정승, 장군들을 높이 평가한다. 이 주간에는 이 책에서 고구려에 대한 기술을 몇 대목 뽑아서 다시 생각해보자. (2010.9.27/김영호)

김영호 선생님은
인문학의 몇 분야를 방황하면서 가로질러 수학, 연구(스톡홀름대, 하버드대 펠로우), 강사(연세대 숭실대), 교수(인하대, 현재 명예교수)로 일했다. 전공은 종교철학(원효사상)으로, 그의 세계관의 큰 틀(패러다임)은 다원주의다. 다원주의를 통해 민족분단. 사회 및 지역 갈등, 종교간 갈등 등 한국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극복하기위한 방법론을 모색하고 있다. 그의 사상적 준거는 함석헌과 크리슈나무르티이다. 그 동안, 해외 민주화운동의 도구인 민중신문』(캐나다) 창간(1079)에 관여,『씨알의 소리』편집위원, 함석헌기념사업회 씨알사상연구원장을 맡기도 했다. 지금은 함석헌평화포럼 공동대표와 함석헌학회 학회장직을 맡고 있다.(2015년 12월 현재)
/함석헌평화포럼

* 사진은 다움에서 따온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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