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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영호 교수 칼럼

[오늘의 명상] 우리는 왜 만주를 버리려 하나

by anarchopists 2020. 1. 9.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9/30 08:16]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님의 말씀]
1. 이 신라의 마지막을 고구려의 그것에 비할 때 어떤가? 고구려 백성은 나라가 망한 후도 오히려 나라를 도로 찾자는 운동이 식을 줄을 몰랐다. 4,50년 후에 일어난 발해는 사실상 고구려의 부흥이다.
그러나 고구려 사람이 아무리 도로 일어나도 역사의 방향은 이미 달라졌다. 발해가 아무리 산동반도에 깃발을 날려 보려고 하고, 동해 건너 일본에 화친의 팔을 내밀어 신라를 억눌려 보려고 하나, 이제는 다 쓸데없다... 역사의 지침이 한번 고난의 골짜기로 놓인 다음에는, 만주는 한 민족에게 빼앗겨 버린 유업이다... 발해는 수백 년을 겨우 견디었으나 그 후로는 거란, 여진(女眞), 몽고, 한(漢) 하는 각 민족이 연차로 들어오며 서로 싸우는 장소가 되어 버렸다. 발해 사람은 그래도 그 혈관 속에 고구려의 피가 식지 않아 기회 있는 대로 나라를 도로 찾아보려고 애를 썼으나, 다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나중에는 압록강을 건너 고난의 집으로 돌아왔고, 그렇지 않은 것은 아주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만주 벌판 버들 숲마다 아직도 서리어 있을 그 원통한 혼을 어느 날에 가서야 위로해 줄까?

이리하여 만주는 여러 민족이 드나드는 곳으로 내준 바 되어 오늘까지 오게 되었고, 한(韓)이니 조선이니 하는 이름은 그 꼬리인 반도에만 국한되게 되었으니, 시작되던 때의 이 시대의 의미와 끝나는 때의 그것을 비교해 보면 실로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의 느낌이 없지 못하다. 한이라면 만고(萬古)의 한이다.
(함석헌전집 1:130-1)

2. 고려 사람으로서 만일 역사의 부름을 듣는 귀를 가졌었더라면 이 때에 만주의 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만주는 고구려 사람이 민족통일의 큰 사명을 띠고 말을 달리던 곳이요, 싸우다 못해 그 순전(殉戰)의 뼈다귀를 묻은 곳이다. 그 만주가 한 세기 반 전에 하던 것같이 또 한 민족을 향하여 부르고 있다. 이 부르짖음이 한 얼을 아니 울릴 리가 없다. 과연 숙종(肅宗) 때에 이르러 북으로 가자는 소리가 또 일어났다. 그 때에 동북 방면에 여진의 장난이 자주 있으므로 이 때에 철저한 토벌을 하여 아주 북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숙종 9년 3월 윤관(尹瓘)을 시켜 쳤으나 그만 실패하고 돌아왔으므로 임금은 "분을 내어 천지신명에 고하여 가만히 도와 도둑을 쓸어버리게 해주기를 빌고," 군사를 기르며 곡식을 저축하여 다시 토벌할 경영을 하다가 이듬해에 한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 다음에 예종(睿宗)이 이어서자 아버지의 뜻을 받아 북을 치기를 크게 계획하여 2년과 3년에 이르는 동안 몇 차례 정벌을 하였다. 북으로 가자는 주장의 맨 앞장군인 윤관을 도원수로, 오연총을 부원수로 삼아 17만군을 내어 떠났다. 한 민족의 운명이 뜨느냐 가라앉느냐 하는 이 역사적 대사건의 첫 번 행동은 빛나는 성공을 거두었다. 윤관은 함경 남북도 지방을 평정하여 아홉 성을 쌓고 남쪽 지방사람 6만호를 옮겨 식민을 하고, 두만강을 건너 지금의 간도지방까지 쫓고 돌아왔다. 이 때 역사의 바늘은 또다시 대조선(大朝鮮) 부흥 쪽으로 놓인 듯하였다.

그런데 아니었다. 조정안에는 윤관 같은 적극적으로 나가자는 주장을 하는 이가 성공하는 것을 시기하는 썩어진 선비들이 많았다. 그들의 주장은 압록강 이남에 온순하게 가만 있자는 것이다. 내세우는 것은 사대주의요, 속셈은 될수록 현상유지를 하여 자기네의 지위를 잃지 말자는 것이다... 나라 도둑 토벌에는 그렇게도 약하였던 사람들이 공신 토벌에는 어찌도 그리 강하냐? 모양이 그랬기 때문에 이기고 돌아오던 장군이 복명도 미처 못 하고 제 집으로 돌아갔고, 임금도 할 수 없이 그 벼슬을 깎고 아홉 성은 여진에 돌려주고 말았다.
(함석헌전집 1:130-1)

[오늘의 명상]
만주에 관한 기술은 발해와 고려로 이어진다
. 윤관, 숙종, 예종 이외에도 묘청, 최영 등을 통해서, 나아가 조선시대에는 김종서, 임경업, 효종 등을 통해서 북벌 즉 만주고토 회복이 시도되었으나 다 좌절 되고 말았다. 그것이 함석헌의 아쉬움이다. 그만의 아쉬움만일까. (김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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