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함석헌평화연구소/김영호 교수 칼럼

[새해 첫날 메시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by anarchopists 2020. 1. 2.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1/01 07:17]에 발행한 글입니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 새해의 소망-

21세기도 제2 십년주기(decade)에 접어들었다. 새해에도 다시 물어야할 질문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일 것이다. 어디에 와 있는가. 시좌(時座)는 어디쯤인가. 이는 개인 차원이나 공동체 차원에 다 해당하는 과제이다. 인생의 도정에서 잠시 멈춰서 살펴보지 않고 아무런 성찰 없이 산다면 개인이나 사회나 표류하는 돛단배 격이 될 것이다.  

개인, 특히 젊은이에게는 대개 현실적인 꿈이 있다. 수입이 많은 안정된 직업이 목표가 된다. 그것을 달성하고 나서는 꿈이 없어진다. 그렇게 되고 난다면 어떻다는 거냐? 되묻게 된다. 그 다음 꿈이 또 설정되어야한다. 그것은, 고도원식 표현으로, ‘꿈 너머 꿈’이다. 두 번째 꿈은, 이타적, 사회적인 내용이 되어야 한다. 빌 게이츠는 몇 해 전 하버드대 졸업식에서 한 연설에서 미개발 후진국을 위한 봉사를 졸업생들에게 당부했다. 꿈은 두 번째로 그치지 않아야 한다. 세 번 째 꿈은 영성 차원에서 지구를 넘어 우주적, 영적인 승화 같은 것이 될 것이다. 성인들은, 그리고 함석헌도, 육체와 물질을 넘어선 정신과 영성을 강조했다.

아직도 자기 길을 못 찾은 자녀에게, 이타적 가치관과 올바른 세계관을 일찍이 제시해주지 못한 부모가 간섭하려들면, 왜 나를 낳았느냐고 항의하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개인과 가정에도 단계별 목표와 대안이 있어야 한다면, 하물며 국가에 있어서이랴. 나라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세 가지 꿈처럼 단기 목표만 아니라 중, 장기 목표와 비전이 있어야할 것은 당연하다. 있었더라도 당파적 이익에 밀려 정권에 따라 바뀌고 만다. 4대강 사업은, 그것도 여러 면에서 현명치 못한 지도자로 판명된, 대통령 혼자의 생각으로 추진되고 있다. 정권에 구속받지 않고 국가 비전을 세우는 범사회적 국가기구가 필요하다. 여기에서 정권을 넘어선 장기적인 국가목표, 통일정책이 입안되어야 한다.

함석헌은 우리 민족의 세계사적 사명을 새로운 통일된 세계의 질서를 창출 하는 일에서 찾았다. “수난의 여왕,” “세계의 하수구요 공창(公娼)”인 이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고난은 우리에게 참 종교를 주기 위한 신의 섭리였다. “생명의 한 단 높은 진화를 가져올 새 종교를 찾아내기 위하여,” “세계를 하나로 만드는, 모든 부족신, 계
급신, 주의(主義)신을 다 몰아내는, 새 믿음을 얻기 위하여”
유난히 심한 고난이 있어야했다.(전집1:317) 지금도 그 고난은 계속되고 있다. 대통령도 국격(國格)을 말하지만, 민족분단이 지속되고 있는 한 국격(國格)이 갖추어진 나라라고 볼 수 없다. 분단은, 함석헌이 진단한대로, 정신분열증, 인격분열을 상징한다. 따라서 온전한 인격이 있을 수 없다. 나라에 인물이 귀한 것은 그 때문이다.

비밀문서 폭로 사이트 ‘위키리크스’(WikiLeaks)에 의하면, 주한 미국대사가, 남북한 통일을 위하여, 중국과 상담(딜)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리차드슨 아리조나주 지사도 통일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종래, 미국을 포함,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가들이 한반도의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는데, 미국 인사들의 이러한 표명은 우리에게 고무적인 놀라움을 준다. 높은 담장에 틈바구니가 보인다. 이러한 입장을 부각시켜 중국, 일본을 비롯 관련 국가들을 설득해가야 한다. 우선 북한과의 관계도 개선되어야 한다.

이러한 분위기를 살려 나가기 위해서는 고도의 전략과 외교력이 있어야 한다. 장관들까지 자기 자식들을 외교부에 집어넣어 동종교배하기에 바쁜 관리들을 기대하거나, 또 지역과 기득권층 이익만 도모하고 대변하는 정권에게 희망을 걸기도 힘들게 보인다. (동종교배는 경제계는 물론, 학계까지 파다하게 퍼져있는 암적 현상이다.) 분단국가이기 때문에 정체성을 더 갖추어야한다”는 알쏭달쏭한 궤변을 쏟아내는 지도자로는 어렵다. 정체성이 달라야 분단을 고착화시킬 수 있다는 뜻인가. 위험천만한 논리가 들어있다. 또 갑자기 군사력 강화와 남북대화를 병행해야 한다는 발언이 튀어나온다. 종잡을 수 없는 통일관, 민족관이다. 이제 남은 길은 내년 선거에 대비하여 야당 연(통)합을 이루는 것이다. 소이(小異)를 접고 대동(大同)의 정신으로 큰 우산을 마련해야한다. 이제는 대동과 상생만이 살 길이다. 분단극복의 방식과 논리도 거기에 들어있다.

지구와 인류의 위기가 점쳐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새로운 패러다임과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것은 모두가 공감하는 일이다. 본질적인 변화가 요구되는 현실 속에서 우리《함석헌평화포럼》도 새로운 접근을 시도해야할 필요를 느낀다. 우선 2월 17일에는 제3차 간디/함석헌 추모 학술발표회 행사로서 “방향 잃은 민족공동체 어디로 가나 - 위기의 진단과 대안”을 주제로 포럼을 연다. (장소는 추후 발표) 이 꽉 막힌 현실에 숨통을 트는 발상들이 제시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 같은 정기적, 부정기적 발표마당은 앞으로 특정 주제나 현안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강좌 형식으로 아카데미나 학당 같은 것이 될 것이다.

또한 창립 이래 그동안 게재된 글들을 모아 [시민강좌] 시리즈로 출판하려 한다. 그 제1권이 현재 편집 중이며 곧 출간될 예정이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포럼에 점점 더 참여하고 있다. 여성, 생태환경, 교육 등 분야들이 보완되어 새로운 대안과 의제를 제시해줄 것이다. 일종의 작은 두뇌 집단(think tank)으로 발전되기를 바란다. 이제는 개인 중심보다는 더 효율적인 집단 운동이 필요하다. 권력이 집중된 한 사람의 두뇌에 의존하는 대통령 제도는 비효율적인 낡은 방식으로 폐기되어야 한다. 교육, 언론, 종교 등 각 분야에 우리사회처럼 대안이 긴요한 사회도 드물다. (종합편성 채널이 예상대로 조, 중, 동, 매경 수구언론 카르텔에만 몽땅 허가되었다는 암울한 소식은 오마이뉴스 같은 대안매체의 역할을 더욱 중시하게 만든다.)

이와 함께 우리는 현재의 명칭(함석헌평화포럼)이 설정된 목표를 잘 반영하고 있는가를 다시 살펴보려고 한다. 한 인물 중심보다는 스펙트럼을 더 넓히는 더 포괄적인 명칭이 적합하게 보인다. 한 인물보다는 사상이나 이념, 가령 ‘비폭력’을 초점으로 한다면, 함석헌 이외에도 간디, 톨스토이, 소로우 등 위대한 사상가/행동가들, 나아가서 세계종교들과 성인들의 사상까지 포괄할 수 있는 명칭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렇다고 어떤 담대한 ‘평화재단’ 처럼 ‘비폭력평화 포럼’만으로 명칭을 독점할 수는 없다. 이에 대한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싶다.

필진만이 아니라 포럼은 모두에게 열려있다. 짧은 댓글 만이 아니라 그보다는 구체적인 내용이 담긴 일정 분량의 합당한 내용의 글을 투고한다면 포럼이 더 큰 광장이 될 것이다. 그동안 귀한 장을 제공한 오마이뉴스, 그리고 함께 참여하고 성원해준 모든 분들에게 큰 감사를 드린다. 앞으로도 함석헌 정신으로 연대하여 자유롭고 인간다운 사회를 만들어가자는 다짐을 함께하고 싶다. (2010.1.1., 김영호)

김영호 선생님은
인문학의 몇 분야를 방황하면서 가로질러 수학, 연구(스톡홀름대, 하버드대 펠로우), 강사(연세대 숭실대), 교수(인하대, 현재 명예교수)로 일했다. 전공은 종교철학(원효사상)으로, 그의 세계관의 큰 틀(패러다임)은 다원주의다. 다원주의를 통해 민족분단. 사회 및 지역 갈등, 종교간 갈등 등 한국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극복하기위한 방법론을 모색하고 있다. 그의 사상적 준거는 함석헌과 크리슈나무르티이다. 그 동안, 해외 민주화운동의 도구인 민중신문』(캐나다) 창간(1079)에 관여,『씨알의 소리』편집위원, 함석헌기념사업회 씨알사상연구원장을 맡기도 했다. 지금은 함석헌평화포럼 공동대표와 함석헌학회 학회장직을 맡고 있다.(2015년 12월 현재)
/함석헌평화포럼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