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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박종강 변호사 칼럼

[오늘의 명상] 왜 갑자기 도덕성을 강조할까

by anarchopists 2020. 1. 10.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9/13 06:49]에 발행한 글입니다.


왜 갑자기 도덕성을 강조할까
-사람은 도덕적 책임이 있다.-

하나님은 왜 사람속에 도덕의식을 넣었나를 물어도 소용없다. 그러나 그 뜻을 체험하는 자에게는 한없는 축복이다. 하나님은 이 우주를 산 생명으로 완성하기 위해 그 가운데 도덕적인 인간을 두었다. 종같이 복종하는 것만을 원치 않는다. 그러므로 자유의지를 주었다. 그러나, 자유의지만으로는 위험하다. 자유와 방종은 서로 멀지 않고 의지는 늘 고집ㆍ교만에 빠진다. 그러므로 자유하는 의지와 함께 양심을 넣어 자유의 가는 곳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르게 하였다
(함석헌,《뜻으로 보는 한국역사》, 한길사 2009, 61쪽 중단).

사람을 도덕적 책임자로 보므로 역사가 도덕적인 의미활동으로 된다. 그저 문화의 발달이 아니라 도덕적발달이다. 그저 진화가 아니라 도덕적 향상이다. 이해와 편리를 위해서는 정의와 인도도 관계하지 않는다는 오늘날의 문명에 있어서는 이 점을 특별히 주장할 필요가 있다. 배타적민족주의, 사람 죽이기를 꺼리지 않는 계급투쟁주의, 모두 다 성경의 자리에서는 허락안되는 죄악이다. 이름을 자유에 빌려가지고, 말은 평등에 팔아가지고, 사람을 마구 짐승이나 생선같이 죽이는 오늘의 정치가들은 차라리 왕도정치를 이상으로 하던 옛날 전제군주에게 가서 그 책임감을 배워야 할 것이다(함석헌, 같은 책, 2009, 63쪽 하단).

이 나라의 최근에 부는 바람은 도덕성이다.
왜 갑자기 도덕성이 강조될까? 의아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의아시하는 사람은 둘 중에 하나다. 본래, 도덕성이라는 것에는 관심도 없었다. 사람 중에서도 동물성이 강한 사람이거나, 하나는 사람은 도덕성이 기본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하도 세상살이가 칡넝쿨처럼 얽혀있어 그저 망각 속에서 살아오면서 체념한 사람이다.

그간 이 나라의 역사를 볼 때 전제군주 하에서도 도덕성이 강조되어 온 삶이 그래도 존경을 받아왔다. 공자가 말한 군자를, 맹자가 말한 대장부를 높이 받들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현대의 물질문명의 홍수 속에 이것이 가려졌다. 거울에 먼지가 많이 쌓인 것이다. 그래서, 왠만한 흠이 있어도 장관자리, 의원자리 하는데 지장이 없었다.

그런데, 왜 지금 와서는 부동산투기, 위장전입, 탈세, 자녀의 이중 국적등이 문제가 될까? 더욱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거짓말 하는 것이다. 최근의 모 총리지명자가 결국 거짓말 때문에 실상 낙마하였지 않은가? 최근에는 장관이 자기자녀를 특채로 합격시키려다 자리에서 물러나기까지 하였다. 이젠 비밀이 없다. 성역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이런 것을 즐겼던 사람들은 조금 짜증이 날 것이다. 그렇지만 할 수 없다. 도도한 역사의 강물이 그렇게 가는데 어쩔 것인가?

사람들이 이젠 의식이 조금은 터진 것이다.
요즈음은, 진보니 보수니, 영남이니 호남이니, 좌파니 우파를 가르기 전에 기본의 덕목에 접근하고 있다
. 그간 정치 쪽에는 사실 양심이니 도덕이라는 것이 들어가기 쉽지 않았다. 우선 “잘 살아 보세”라는 구호 앞에서 바로 살자는 구호는 힘을 잃었다. 그런데, 이제는 알았다는 것이다. 민중들이 알았다. 결국, 구호나 새로운 장면을 보여주면서 장면을 바꾸어가는 정치가들의 야바위속임수를 일부 알아차린 것이다.

그래서, 이젠, 자녀의 취학을 위하여 위장전입이라는 말은 역사 속에서 사라져야한다. 소시민들도 위장전입에 대하여는 어떻게든 책임을 지는데, 공직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위장전입하면서 그 법을 집행하는 것은 안되는 것 아닌가? 대법관, 장관이 위장 전입하는데 누구를 보고 법을 지키려하는가? 사람은 도덕적 책임을 지는 것을 가슴에 품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려야 하는가? 양심의 거울에 쌓인 먼지를 없애면 된다. 스스로 쓸면 되겠지만 강력한 태풍으로 쓸어버려야 한다. 태풍이 오면 일부 피해도 오지만 전체를 하기 위해서는 양심의 태풍이 필요하다.

아! 누가 저 양심의 바다에서 태풍을 불게 할 것인가? 저 멀리 있는 하나님인가? 하느님일까? 아니다. 각 민중들이다. 민중들의 가슴에 있는 양심의 소리가 태풍이다. 태풍이 오고 있다. 태풍은 먼 바다에서 서서히 만들어지기에 육지에 상륙하기 전까지는 잘 모른다. 지금 이 나라의 청문회에서 보여준 실상은 이 양심의 태풍을 예보하는 것이다.

태풍은 일단 만들어지면 도는 것이다.
거대한 태풍이 되느냐 안 되느냐는 도는 것에 달려있다. 내부의 중심기압이 낮아야 강력한 태풍이 된다. 내부의 중심기압이 낮다는 것은 내적으로 더 파고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즉, 양심의 강에 더 깊이 접근하여야 강력한 태풍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민중들의 양심이 돌고 돌면 거대한 태풍이 부는 것이다. 이 나라 민중들의 양심이 서울에서 저 시골로,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저 한라산에서 백두산산록까지 돌고 돌아간다. 아! 태풍이 불면 시원하다. 태풍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은 굴에 숨고 피하고 난리지만 그것이 피한다고 안 오는 것이 아니다. 더욱 잘 알아야할 것은 이러한 양심의 태풍은 이제 시작이라는 것이다. 이제 이런 태풍은 계속된다. 하나가 지나가면 또 오니까 그냥 숨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태풍이 불면 바람이 그냥 휩쓸고 그 자리를 비로 씻는다. 한마디로 정화의식이다. 이 나라에 부는 양심의 태풍은 사람들의 가슴에 쌓여있는 그 먼지를 쓸어버리고 비로 깨끗이 씻겨줄 것이다. 아 양심의 태풍이여 계속 불어라! 먼지가 날아갈 때까지 양심의 거울이 반짝반짝 빛날 때까지 불어라. 이젠, 민중의 가슴에 가득 차있는 저 양심의 창고에 각자 불을 붙이자! 훨훨! 먼지를 날리고 태워서 이 땅에 정의가 돌아가게 하자. 그래야 사람이 사람구실 하는 것이다. 왜냐면 사람은 함석헌 말씀대로 도덕적 존재이니까!(2010. 9.12 아침, 박종강)

박종강 변호사님은
사법고시 33회 출신이다. 법률사무소 “민중”에 소속되어 사회적 약자를 돕는 변론활동을 하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 한세병인권변호단, 서울지방변호사회 변호사기자, 한국소비자보호원 소송지원단으로 일하고 있다. 그리고 제도권의 로스쿨에 반대하여 빙송통신 로스쿨(민중로스쿨)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외 함석헌학회 감사직을 맡고 있으며 새물결포럼, 함석헌평화포럼에도 관여하고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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