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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 박사 칼럼

[오늘의 명상] 씨알의 인간학 3- 종교적 인간, "마음을 씻으십시요"

by anarchopists 2020. 1. 11.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9/08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씨알의 인간학3
종교적 인간, “마음을 씻으십시오!”

종교의 근본적인 목적은 무엇일까요? ‘종교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에 대한 물음에 해답을 구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먼저겠지만 이처럼 종교가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성을 묻는 것 또한 가벼이 여길 수가 없습니다. 눈으로 보고[目] 과녁을 향해 나아가는 것[的]은 과녁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먼저 눈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다시 말해서 눈을 통해 과녁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과녁이 있기 때문에 눈은 과녁을 향해 혹은 과녁을 넘어 시선을 둘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대상에 의해서 감각이 촉발되어 이성이 그 대상을 규정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따라서 과거 종교의 본질과 목적을 묻는 질문에 ‘주체’를 먼저 내세웠다면, 지금은 주체가 지향하는 ‘대상’ 혹은 ‘종착지’를 물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논리에서 볼 때 모든 종교가 추구하는 것, 그것은 ‘성인’(聖人)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푼다면 ‘온전한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함석헌은 “성인이란 마음을 씻어서 깨끗한 데 이르는 분”(함석헌저작집 15, 펜들힐의 명상, 한길사, 2009, 119-125, 이하 내용은 같은 쪽수에서 풀어 인용함)이라고 정의내립니다. ‘마음 씻기’가 종교가 추구하는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재물의 축적이 신이 인간에게 내린 복이라고 여기거나, 질병은 악이요 건강은 신이 주신 선으로 인식하고, 자녀나 사업이 잘 되기를 바라는 욕망 등을 신에게 투사하는 것은 성숙하고 온전한 인간이 되기 위한 것 즉 ‘마음 씻기’와는 다른 문제입니다.

어쩌면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복잡하고 번잡스러운 몸과 마음을 “가라앉힘”은 본능제어수련이며, 본성에서 영성으로 나아가기 위한 중요한 수양입니다. 그래서 함석헌은 “명상을 하면, 마음을 가라앉히면 하나님을 접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하나님과의 일치를 꾀하는 것과 마음 씻기는 일맥상통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과의 일치를 위해서 일체의 모든 잡념, 잡심, 잡다한 것들을 가라앉히고, 순수하고 깨끗하지 않으면 내 안의 신을 발견하기도(M. Eckhart), 들이기도 어려울 것이니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인이 되기 위해서, 신과의 일치를 위해서 먼저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 되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함석헌도 인정하고 있듯이, 세상에서 마음을 가라앉힌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손과 발을 움직이며 심지어 눈을 깜빡일 때마다 일어나는 나의 분심을 잠재우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에 함석헌은 “부족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보려고 거기에만 전심을 하노라면 마음이 가라앉는다”는 영성적 경험을 내놓습니다. 그러므로 가라앉힘과 성인이 되는 길은 그저 부족하지만 하나님을 “보기 위해서” 부단히 애를 써보는 일입니다. “보려고 하기 때문에 청결해진다”는 함석헌의 체험적 영성을 본받아서 말입니다. 더 나아가서 “마음 중의 근본 마음, 초월한 마음, 그 마음을 접해보려고 노력을 하노라면 나 자신이 언제든지 맑아지는 걸 우리가 느낄” 것입니다.

따라서 그분을 보기 위해서 어떤 표상이나 이미지 등을 배거하고(ausshaltung) 편견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신을 보려고 해야 합니다. 성인 즉 완전한 인간이 된다는 것은 종교가 도달해야 하는 목적입니다. 종교는 신의 말씀으로, 그리고 그 신의 말씀을 깨닫고 그대로 산 성인들을 통해 모두가 완전한 인간이 되기를 바라는 가르침을 말합니다. 그러나 구원은 그와 같은 경지에 도달하지 못해도 노력하는 이들에게도 무한한 가능성으로 열려 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함석헌의 메시지가 우리에게 좋은 ‘길’이 될 것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을 볼 수 있다 그러지만, 또 한편 뜻을 바꾸어 생각하면 청결치 못한 마음을 가지고라도 하나님을 보려고 힘을 쓰노라면, 하나님 생각을 하노라면 하나님이 무언지 모르지만 하나님이라는 그것 때문에-하나님은 물질도 아니고 그 무어라고 이름할 수 없는 분이지만-하나님이라고 하는 그분 때문에 마음이 청결해지는 거예요
”(122). 영성신학자 샤를 앙드레 베르나르(Charles André Bernard)가 인간의 영성생활을 ‘나그네 인간’, 혹은 ‘순례자 인간’(homo viator)라고 말한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자신들을 향한 신의 계획을 이루기 위해서 끊임없는 진보를 지향하는 유한한 시간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영성생활의 시간성은 단순히 순간들의 연속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에 따르는 참된 생활의 표지인 진보를 지향하는 지속적 기간이다”(Charles André Bernard, 정제천․박일 옮김, 영성신학, 가톨릭출판사, 2007, 121). 그러니 “순수한 것, 순수한 마음, 모든 마음이 근본이 되는 마음을 만나”기 위해서 각 종교가 가르친 길을 일평생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는 그나마 그분의 등이라도 볼 수 있지 않을까요?(2010.09.08 새벽, 김대식)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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