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10/11 06:33]에 발행한 글입니다.
1. 타자화된 인간의 노동과 타자화된 자연
“노동력의 사용은 노동 그 자체이다. 노동력의 구매자는 노동력의 판매자를 노동하게 함으로써 노동력을 소비한다. 이를 통하여 노동력의 판매자는 실제로 활동하는 노동력[즉 노동자]이 되는데, 그 이전까지는 그는 단지 잠재적인 노동자로만 머물러 있다. 자신의 노동을 상품으로 나타내기 위해서 그는 무엇보다도 먼저 그것을 사용가치[즉 무엇인가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유용한 물품]로 나타내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자본가가 노동자로 하여금 만들게 하는 것은 어떤 특수한 사용가치[곧 어떤 일정한 물품]이다...... 노동은 우선 무엇보다도 인간과 자연 사이의 한 과정, 다시 말하면 인간이 자기 자신의 행위를 통해 인간과 자연 사이의 한 과정, 다시 말하면 인간이 자기 자신의 행위를 통해 인간과 자연 사이의 물질대사를 매개하고 규제하며 통제하는 한 과정이다. 인간은 하나의 자연력으로서 자연소재와 대립한다. 그는 자연소재를 자신의 생활에 유용한 형태로 만들기 위하여 자신의 타고난 신체의 힘인 팔, 다리, 머리, 손 등을 움직인다. 그는 이런 움직임을 통해서 자기 외부의 자연에 작용을 가하고 그것을 변화시키며 또한 이를 통해서 자신의 본성까지도 변화시킨다. 그는 자신의 본성 속에 잠자고 있는 잠재력을 개발해내고, 그것이 자신의 통제 아래 발휘되게 한다”(K. Marx, 강신준 옮김, 자본 1-1, 길, 2008, 265-266).
알튀세르(L. Althusser)에 의하면 “마르크스는 철학을 당혹스럽고 새로운 방식으로 실천”하였습니다. 종래의 전통적인 철학(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하이데거 등)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그 명맥과 학파를 형성하면서 교조적인 철학을 답습하고 나름대로 체계를 세워나갔습니다. 그렇지만 마르크스는 철학조차도 그 생산을 거부하고 오히려 과학적, 비판적, 정치적 작업 속에서 철학을 실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철학은 자본가 계급의 착취와 지배, 그리고 인간 해방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르크스는 인간이란 노동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실천함으로써 생존적 활동을 영위해 나간다고 보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은 자신의 노동을 통해서 자신을 변화시키고, 세계를 변화시키는 존재이면서 현재 속에서 미래를 실현시켜나가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노동은 인간의 자기 변혁의 방편이며, 타자인 자연을 통한 자기 창조의 수단입니다. 이에 자기 창조의 지속성을 방해하는 그 어떤 요소가 있다고 한다면 투쟁해야 하는 것이고, 그것은 인간의 가능성을 실현시키고자 분투하는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서 노동으로부터 소외되어 또 다른 타자가 되지 않으려는 자기의식의 활동입니다(G. Pertrovic). 그 누구보다도 이러한 노동자 혹은 인간의 해방에 대해서 꿈꾸어 온 철학자가 에른스트 블로흐(E. Bloch)였습니다.
블로흐는 마르크스의 철학을 “인간본위주의”라고 규정하였습니다. 그는 “인간본위주의는 실제 가능한 민주주의 속에 자리 잡게 된다...... 마르크스주의를 정직하게 수행하면, 우리는 사악한 이웃으로부터 해방되고 억압이라는 무거운 짐을 벗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자본가가 노동자를 단순히 추상적인 노동으로 환원하여 이익을 발생시키는 근원적인 생산수단으로만 본다면, 노동자에게 인권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컨베이어 시스템 속에서 기계와 같은 도구로 인식되는 것은 인간 존재가 타자화(Autre라는 말은 ‘소외’를 일컫는 alienus에서 파생되었음)되고 말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K. Marx, 위의 책, 275, 288.
노동자는 자본가의 통제 아래에서 노동하며, 자본가가 구매한 노동자의 노동력(의 사용가치)을 통해서 나온 생산물은 직접적인 생산자인 노동자의 소유물이 아니라 자본가의 소유물이 됩니다. 마르크스는 여기서 자본가가 노동자를 하나의 물품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인간본위의 철학을 확립한다는 것은 인간의 모든 억압으로부터의 해방과 자유를 획득하는 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2010/10/11; 김대식)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본문 사진은 인터넷 다음에서 따온 것임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철학과 타자 문제
1. 타자화된 인간의 노동과 타자화된 자연
알튀세르(L. Althusser)에 의하면 “마르크스는 철학을 당혹스럽고 새로운 방식으로 실천”하였습니다. 종래의 전통적인 철학(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하이데거 등)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그 명맥과 학파를 형성하면서 교조적인 철학을 답습하고 나름대로 체계를 세워나갔습니다. 그렇지만 마르크스는 철학조차도 그 생산을 거부하고 오히려 과학적, 비판적, 정치적 작업 속에서 철학을 실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철학은 자본가 계급의 착취와 지배, 그리고 인간 해방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르크스는 인간이란 노동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실천함으로써 생존적 활동을 영위해 나간다고 보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은 자신의 노동을 통해서 자신을 변화시키고, 세계를 변화시키는 존재이면서 현재 속에서 미래를 실현시켜나가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노동은 인간의 자기 변혁의 방편이며, 타자인 자연을 통한 자기 창조의 수단입니다. 이에 자기 창조의 지속성을 방해하는 그 어떤 요소가 있다고 한다면 투쟁해야 하는 것이고, 그것은 인간의 가능성을 실현시키고자 분투하는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서 노동으로부터 소외되어 또 다른 타자가 되지 않으려는 자기의식의 활동입니다(G. Pertrovic). 그 누구보다도 이러한 노동자 혹은 인간의 해방에 대해서 꿈꾸어 온 철학자가 에른스트 블로흐(E. Bloch)였습니다.
노동자는 자본가의 통제 아래에서 노동하며, 자본가가 구매한 노동자의 노동력(의 사용가치)을 통해서 나온 생산물은 직접적인 생산자인 노동자의 소유물이 아니라 자본가의 소유물이 됩니다. 마르크스는 여기서 자본가가 노동자를 하나의 물품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인간본위의 철학을 확립한다는 것은 인간의 모든 억압으로부터의 해방과 자유를 획득하는 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2010/10/11; 김대식)
김대식 선생님은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본문 사진은 인터넷 다음에서 따온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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