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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취래원 농사 칼럼

[오늘의 명상] 모든 진리도 진화해야 한다.

by anarchopists 2020. 1. 14.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7/21 07:57]에 발행한 글입니다.

[오늘의 명상]

모든 진리도 진화해야 한다.

함석헌 선생님은 1962년 2월 영국 우드브르크에서 <우리 민족의 이상>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그 강연 내용 중에 이런 대목이 있다.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세상이 그전 세상이 아닙니다. 생물학, 사회학, 인류학의 연
구에 따라 세상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고 복잡한 것임이 자꾸 알려집니다. 이 때문에 사람이 전의 사람이 아니고, 하는 생각과 일이 전의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종교도 흔들흔들, 도덕도 트렁트렁, 그 뒤에 정치란 것은 물론 그냥 있을 수가 없이 돼가고 있습니다...... 생각이란 것은 이상해서 제 스스로가 생각해서 진화의 나가는 길에 손을 대게 되는 데가 전과 매우 다른 것입니다.....어떻게 변할지는 몰라도 변할 줄을 알고 있었던 것만이 그때에 가서 그 날을 맞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함석헌저작집》13, 한길사, 2009, 113쪽)

오늘은 함석헌 선생님의 위 연설 글에서 진화의 개념을 찾아 “모든 진리도 진화해야 한다” 주제로 오늘의 화두를 던져볼까 합니다. 진리는 그 본질이 변하지 않을 수 있어도 개념의 해석은 변한다. 그리고 변해야 한다고 본다. 역사해석에서 이 답을 찾아보자.

1980년대 이전만 해도 최영(崔瑩, 1316~1388)은 충신이었고 최영장군의 역사적 본보기는 자라나는 어린이들의 귀감이었다. 그 당시 유행했던 동요가 이것을 반영해 준다. 그래서 아이들이 고무줄놀이를 하면서 운동장에서 뛰어놀 때도 최영이 “황금을 돌같이 보고”라는 가사를 불렀다. 그때만 해도, 최영은 한국역사에서 귀감이 되는 충신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역사해석은 다르다. 유교적 사고로 역사를 해석하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최영은 분명 고려왕실이 썩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분명 썩은 나라는 버려야 한다. 아니면 최소한 개혁은 해야 한다. 그러나 최영은 그런 의지가 없었다. 오히려 고려를 개혁하려는 의지는 이성계와 정도전이 가지고 있었다. 최영이 고려개혁의 의지를 가지지 못한 것은 그 자신이 기득권세력(정치권력과 경제이익을 모두 손에 쥐고 있었다)이었기 때문이다. 그 기득권을 영원히 가지기 위해 정치구조를 바꾸거나 사회개혁을 하려는 생각을 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권력에 도전한다는 명분으로, 사회구조개혁을 주장하는 사람(이성계, 정도전)만 제거하려 하였다. 이것이 역사에서 말하는 북진정책이다. 그러니까. 최영의 북진정책은 진정성이 전혀 없었다. 자기 권력유지수단이었을 뿐이다. 그러니까 최영은 역사적 의미에서 현대의 이승만과 박정희와 같이 권력유지를 위해 야비한 정치수단(김구를 죽이고, 장준하를 죽인)을 쓴 인물에 지나지 않는다.

또 다른 역사적 사실도 있다. 삼별초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삼별초는 고려의 강화도시절, 무인들의 권력기반이었다 그런데 고려 원종(元宗, 1219년~1274년)이 개경환도를 결정하게 된다. 그러자 무인들의 권력의 중심지인 강화도가 무너지게 되었다. 그래서 무인들은 원종의 개경천도를 반대하였다. 이것이 삼별초의 항몽사건으로 기록되었다.(1270∼1273). 그러나 삼별초 항몽은 본질이 다르다. 봉건시대 개념으로 볼 때, 왕권에 도전하는 반란행위일 뿐이다. 이것을 항몽(抗蒙) 민족운동으로 둔갑시킨는 것은 잘못이라고 역사가들은 보았다. 그 이유는 이렇다. 원종이 개경환도를 반대하여 역변을 일으킨 반란세력을 제거할 목적으로 몽골군의 지원을 받았다. 그래서 삼별초는 반란토벌군인 몽골군과 싸울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말하면, 삼별초가 처음부터 항몽의 의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곧 삼별초는 봉건시대, 자기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역변을 일으킨 반란세력에 불과하였다는 말이다.

또 다른 역사적 일을 생각해 보자. 김부식의 《삼국사기》에서 비롯된 우리 역사의 삼국시대(고구려, 백제, 신라)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분명 한반도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만 있지 않았다. 기원 전후부터 562년까지 낙동강 하류지역에 여러 부족국가인 가야가 있었다. 따라서 신라후기(통일신라) 이전의 우리 역사는 ‘사국시대’가 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러한 사국시대가 왜 삼국시대로 둔갑되었을까. 그것은 김부식(金富軾, 1075~1151)의 역사인식 때문이다.

김부식은 자발적인 친중국적 노예근성을 가지고 있던 자였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중국 북송(北宋)시대 문장가인 소식(蘇軾;蘇東坡, 1037~1101)을 사모하여 그의 이름도 소식의 ‘식’을 따서 김부식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사람이었기에 김부식이 우리 역사를 쓸 때 역사편찬법도 중국에서 모방하였다. 그런데 그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는 유교적 가치관이 확립된 시대가 중국의 삼국시대를 통일한 한(漢,BC 202∼AD 220)이다. 그래서 고려의 정통을 ‘후기신라(통일신라)에 두고 있던 김부식은 후기신라를 한반도를 통일한 정통국가라는 개념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김부식은 중국의 삼국시대를 그대로 모방하여 수백 년 역사를 가진 가야역사를 빼버리게 된다. 이제는 아니다. 우리 역사의 고대는 가야를 포함하는 사국역사이다. 이렇게 우리 역사의 삼국역사는 사국역사로 바뀌고 있다.

이렇게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의 진리는 시대상황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고, 이 새로운 해석이 역사의 진리가 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역사의 진리가 변하듯, 시대가 변하면서 정치진리도 변한다. 그런데도 오늘의 한국정치를 담당하고 있는 정치꾼들이 과거의 정치진리에만 매달려 있다면 그것은 시대의 변화를 역류하는 것이 된다. 시대의 변화와 진화를 거부하면 역사의 진리를 배반하는 고루한 사회가 된다. 고루한 사회는 인간의 발전이 없다.

이것은 대한민국에 적용해보자. 대한민국의 정치진리도 변해야 한다. 우리 역사는 일제시대-해방시대-분단시대-반공시대를 거쳐 이제 통일시대로 들어왔다. 그런데 통일시대에 반공진리를 그대로 가지고 인민을 통치하고 있다면 그것은 진화하는 나라의 정치진리가 아니다. 통일시대는 통일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야 정치도 진보하고 사회도 진보할 수 있다. 아직도 선거에 이기려고 반공논리를 들먹이고, 과거 군사권력들이나 저질렀던 정치적 조작에 북한을 이용하고 있다면 그 사회는 죽은 사회다. 정치의 진리가 진화를 못하는 그런 못난 나라가 되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오늘의 화도로 던져본다.(2010.7.21 아침, 취래원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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