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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취래원 농사 칼럼

[말씀과 명상] 새로운 나라를 만들 수는 없는가

by anarchopists 2020. 1. 14.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7/19 06:17]에 발행한 글입니다.


새로운 나라를 만들 수는 없는가.

[함석헌 말씀]
1.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발견하는 거야. 다른 모든 걸 하기 전에 자기발견을 해야 될 거예요. 인간이 인간다운 특징은 자기의 과거를 돌이켜 살펴보는 것, 반성의 가치가 있다는 점이예요. 사람은 제가 저를 돌이켜서 생각해보고 그럴 줄 아는데, 다른 말로 하면 사람이란 유의적인 존재라 할 수 있어. 지(知)ㆍ정(情)ㆍ의(意)의 활동이 있다는 말이야. 정신활동이 있어서 제가 저리는 것을 알게 되는 거야(함석헌, <한국의 발견>, 《함석헌저작집》13, 한길사, 2009, 15쪽)

2. 사람은 자아를 가진 것이야. 그 자아라는 것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여러 가지 기능이 있는데, 그 기능 중에서도 통일된 기능과 주체가 있을 때 비로소 자아라는 게 생겨. 제가 스스로 주체 노릇을 하기 때문에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어 동물에게는 그런 게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사람에게는 특별히 정신적인 불구자 외에는 모두가 목적의식이 있어. 목적은 마지막 끝이니까 자연 처음이 있을 것이야. 사람은 처음을 생각하고, 끝을 생각하고, 그렇기에 중간점도 있게 돼.(잎의 글, 19쪽)

[오늘의 명상]
위 글은 1961년,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에서 발간하는 《상록(常綠)》제10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오늘은 위의 함석헌 선생님의 말씀을 가지고 ‘자아발견’에 대한 명상을 해봅시다. 함 선생님은 자아발견의 토대는 ‘과거에 대한 반성’이라고 했습니다. 과거에 대한 반성을 통하여 우리는 자아를 발견하고 나라는 정체성(주체)을 세울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주체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행동하는 존재라고 했습니다. 목적의식은 끝만 세우는 게 아니고 처음과 끝을 분명하게 하되 목적을 수행하는 과정도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삶의 목적의식과 주체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한국인이 얼마나 되는지 우리는 오늘의 시점에서 반성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중 하나로,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사회구조가 과연 우리 인간의 행복을 창출해 내는 제도인가를 반성해 봅시다.

민주주의가 과연 좋은 제도일까요. 민주주의 구조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대의민주주의(의회)제도는 과연 대안이 없는 최고의 제도인가요, 서구식 정당(양당)제도 또한 합당하고 필요한 제도인가, 선거에서 다수결원칙이 과연 불가결한 제도인가. 그렇다면, 우민(愚民)정치의 우려는 없는가. 민주주의 탈을 쓰고 있는 삼권분립(정부, 사법, 입법)은 과연 존재가치가 있는 것인가. 존재가치가 있다면, 한국사회에서 이 삼권분립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가. 평등주의를 지향하는 민주주의의 시행이 과연 이 나라 만민의 평등을 가져왔는가. 오히려 기득권세력을 형성하고 권력층과 피권력층이라는 계급구조만 만들어 낸 것은 아닌가. 이렇듯, 서구유럽에서 도입된 사회구조는 훌륭하고 아시아의 과거 사회구조, 즉 위민주의에 입각한 왕도정치는 맞지 않는 것인가. 한번 반성할 문제라고 봅니다.

또 서구식 자본주의는 우리 삶을 행복하게 만들고 있는가. 위(국가)로부터 도입된 자본주의 경제구조 속에서 우리는 정말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가, 절대빈곤이 정말 사라졌나. 상대적 빈곤은 없는가. 자본주의 도입으로 절대적 빈곤이 사라지고 상대적 빈곤이 새로 발생했다면, 국가는 상대적 빈곤을 잘 해결해 가고 있나. 오히려 자본권력이 생겨나서 자본권력과 정치권력이 결합하여 지배층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부유계급과 빈곤계급이라는 자본에 의한 강제된 계급사회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능력주의ㆍ경쟁주의 속에서 희생을 강요당하는 사람은 없는가. 우리는 반성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문제가 발견되고 고쳐야 한다면 그 대안은 무엇인지. 국가권력ㆍ관료제도ㆍ자본권력이 없는 사회를 만들 수는 없는지. 오늘의 화두로 던져봅니다. (2010.7.19 아침, 취래원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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