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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말씀과 명상

[오늘의 명상]오늘 한국사회가 어디를 지향 하고 있는가

by anarchopists 2020. 1. 13.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7/30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말씀〉

지금의 세계사의 모양은 세계혁명의 발효다. 인류는 또 한번 생각을 근본적으로 달리하게 되었다. 그러지 않는 한 세계구원의 길은 없다. 현대 사람의 사상을 길러가는 데 가장 큰 힘을 가지는 것은 문예인데 그 문예의 특성은 윤리관, 종교관을 쏙 뺀 것이다. 옛날의 문예는 그렇지 않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 뒤에는 늘 확실한 종교, 도덕적인 인생관이 서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작품이라도 쓰면 유치한 것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문예를 위한 문예가 되었다. 어느 작품을 봐도 인생은 종교도 도덕도 아무것도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듯이 되어있다. 그 가운데 주인공은 그러한 사람들이다. 오늘의 세계를 만든 것은 정치가와 문인이다. 그들의 합작이다. 정치가는 사회생활의 기틀을 잡아 쥐고 앉아 그것으로 하고 문인은 이야기로 하고, 그리하여 의미도 아무 구속도 없는 각자 제 취미대로 하는 향락본위, 편리주의의 살림을 선전해왔다. 그 결과로는 사람들의 가슴 속에 의무관념이 없어졌다. 있는 것은 제각기 저 본위로 주장하는 권리뿐이다. 그렇게 한 결과 인간의 생각에서 ‘하나’라는 것이 없어졌다.
옛날 문명의 특색은 그들이 세계의 통일성을 꽉 믿는 가운데서 살아간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질서도 의미도 마비되고 행복의 추구만을 하는 생활을 하고 보면 인간을 한데 묶는, 그리고 만물 앞에서 스스로 영장으로 책임을 지던 그런 생각은 다 없어지고 모든 사람이 저 본위가 되어 버렸다. 사실상 우리는 하나의 세계를 잃어버렸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인류가 멸망을 면하려면 가슴속에 하나의 세계를 회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세계의 통일성을 믿는 사람이 나와야 한다.
(함석헌저작집2권, 72-3쪽)


〈명상〉

오늘 한국사회가 어디를 지향하여 가고 있는가. 정치는 말썽 많은 대통령 중심제에 매달려서 예측불허로 가고 있고, 닭과 달걀의 관계이긴 하지만 올바른 정치를 계도하고 유도해야할 문화는 문화대로 종잡을 수 없는 현실이다. “문제는 정치에 있다. 정치가 바로 되어야 모든 것이 바로 될 수 있다”고 외친 함석헌은 여기서도 정치는 물론 문화의 무책임한 행태, 제멋대로 가기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반세기 전의 통찰이 오늘에 더욱 실감나게 들리는 것은 그만큼 본질적인 변화, 개선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퇴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예, 그 중에도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송 매체의 내용물(콘텐츠), 특히 드라마는 방향감각을 상실한 모습이다. 상식과 도덕과는 무관하게 오로지 천박한 재미를 유도하는 것들이 판을 친다. 특히 가정 드라마는 청취율 점유만을 목표로 파격적, 패륜적인 내용으로 가득차서 도덕성 파괴, 패륜을 선도하고 있다. (그 영향으로 나타난 현상 하나가 연상의 여자와 결혼하는 풍습이다. 물론 연하, 연상의 문제는 도덕성과는 무관한 개인적 가치판단의 문제이긴 하지만 방송극이 그만큼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한 소설의 제목처럼, “세상이 나를 버리기 전에 내가 세상을 버린다”는 담대함은 좋지만, 그래서 어쩌자는 선동인가. 인간다운 지향점은 있어야할 것이 아닌가. 요상한 제목으로 책만 잘 팔리면 된다는 것인가. 함석헌이나 누구라도 케케묵은 낡은 윤리관, 종교관을 지키자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것을 세워가자는 것이다.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드라마 천국이다. 따로 연출된 드라마, 영화를 안 봐도 벼라별 드라마가 전개되고 있다. 정치에서부터 개인의 야망에 이르기까지 상상불허의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 살아볼수록 한국 사람의 속은 더욱 알 수가 없다고 할 정도로 일상의 곳곳에서 무궁무진한 술수와 사기술이 동원되고 있다. 구태여 문학적 상상력이 동원된 드라마와 소설을 볼 필요가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드라마다. 친구, 동지라고 하지만 언제 돌아설지, 배신당할지 모른다. 형제간에도 믿을 수 없다. 재벌 2세, 3세들의 재산 싸움을 보라. 이씨 조선 시대의 왕자의 난 드라마 후속편이다. 속은 아리지만 참 재미있는 사회이다. 이 사회를 잠시라도 떠나보라. 갑자기 진공상태에 빠질 것이다. 예측 가능한 사회, 최소한의 원칙과 예모를 갖춘 사회가 그립다. 어디서 희망을 찾아야 할까. 희망의 원천이라 할 교육계, 종교계, 언론계를 쳐다볼 수 있을까. 이대로는 안 된다. 그 어느 것도 히말라야적, 백두대간적 개혁, 혁명이 오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다시 함석헌의 말씀을 반추할 수밖에 없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탈바꿈, 진화하는 사회라야 산다!. (김영호)

김영호 선생님은
인문학의 몇 분야를 방황하면서 가로질러 수학, 연구(스톡홀름대, 하버드대 펠로우), 강사(연세대 숭실대), 교수(인하대, 현재 명예교수)로 일했다. 전공은 종교철학(원효사상)으로, 그의 세계관의 큰 틀(패러다임)은 다원주의다. 다원주의를 통해 민족분단. 사회 및 지역 갈등, 종교간 갈등 등 한국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극복하기위한 방법론을 모색하고 있다. 그의 사상적 준거는 함석헌과 크리슈나무르티이다. 그 동안, 해외 민주화운동의 도구인 민중신문』(캐나다) 창간(1079)에 관여,『씨알의 소리』편집위원, 함석헌기념사업회 씨알사상연구원장을 맡기도 했다. 지금은 함석헌평화포럼 공동대표와 함석헌학회 학회장직을 맡고 있다.(2015년 12월 현재)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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