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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말씀과 명상

[오늘의 명상] 민족개조가 필요한 시대이다.

by anarchopists 2020. 1. 13.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7/29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민족개조가 필요한 시대이다.

[함석헌 말씀]
그러나 사람은 자기에도 속지만 단체에 더 잘 속는다. 단체는 전체인 듯 가장을 하기 때문이다. 단체와 전체는 다르다. 전체는 우주 근본에 일치되는 다시 알해서 하나님의 뜻 그대로를 반영하는 것이요, 단체는 이기적 나의 모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의 이기심은 뿌리 깊은 것이다. 그것과 하나님과 맞서서 공정의 원을 그으려고 하는 한 끝이다. 그러므로 무엇에도 지려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단체 뒤에 숨어서 그것을 곧 전체라 하고 자기 주장을 내세우려 한다. 단체 중에서 가장 크고 강한 것이 민족이요, 나라다.

그러므로 민족 감정이야말로 치우친 생각이 가장 많이 들어 있을 수 있고, 민족적 반성이야말로 기장 어려운 일이다. 이기심을 이기는 것은 하나님 뿐이다. 하나님은 곧 우주적인 무한한 전체다. 이기심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이기심이 강한 민족일수록 크게 될 수 있다. 다만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으로 더불어 켕겨 일직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구심력만으로 원을 그릴 수 없듯이, 그 민족은 망하고 말 것이다, 그 민족은 망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민족적 반성을 하기 위하여 다른 민족의 평을 듣는 것이 필요하다. 나를 아는 것은 나지만, 또 나를 아는 것은 남이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보나 그것을 알아야 참으로 나를 안 것이다.
(함석헌전집1권 86쪽)

[오늘의 명상]
함석헌은 개인주의를 배격하지만 단체주의도 배격한다. 발전, 혁명, 진화의 단위는 개인도 아니지만 단체도 아니고 전체이다. 우리 사회는 개인들이 이런 저런 단체의 연줄에 얽어매어 있는 연줄 사회이다. 혈연, 지연, 학연에다 종교, 재벌까지 생활 구석구석에서 우리를 칭칭 묶고 있다. 모두가 각종 파벌에 예속된 노예 사회이다. 그 훈련을 받는 곳이 학교이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창살 없는 감옥에서 살고 있다. 일정한 사고와 행동의 틀을 벗어나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는 획일(유니폼) 사회이다. 미치거나 자살이 탈출구이다. 그 속에서 자유를 말할 수는 없다. 단체도 벗어나고 민족도 벗어나야 참 나를 찾을 수 있다.

제대로 된 열린 민족주의에라도 충실했다면 남북이 적대하고 동서가 분열, 갈등하는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민족 이전에 부족, 씨족, 호족 세력이 지배하는 원시 봉건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삼국시대의 연장에 불과하다. 신 삼국시대인 셈이다. 공산당, 한나라당, 민주당이 삼국을 대표하는 정당들이다. 이 현실을 감안한 정치제도(연방제, 양원제, 개인보다 정당이 책임지는 내각제)만이 통일과 사회통합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인데, 개헌을 말하기는 하지만 의식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하고 있다. 얼마나 더 시행착오를 더 저질러야 할 것인가. 한 민족이라 하면서 여태껏 민족을 하나로 묶는 민족주의를 발휘해본 적이 없다. 언어만이 유일하게 제 구실을 다했을 뿐이다. 언어가 다른 민족들도 한 나라로 잘해가고 있는 국가가 수두룩하다.

윗 대목에 잇대어 함석헌은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을 길게 인용하고 있다. 중국인이 본 한민족에 대한 부분이다. 그 자신도 다른 글에서 민족/민족성개조론을 폈다. 이광수의 민족개조론만이 유일한 개조론이 아니다. 나중에 이광수가 친일을 했다고 해서 그의 민족개조론까지 부정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학계일각에서 오해하듯이 개화파가 수입한 사회진화론이 유일한 진화론 모형이 아니다. 함석헌도 사회개혁론과 더불어 일종의 사회진화론을 폈다. 그가 강조하는 ‘전체’가 바로 사회학에서 말하는 사회에 해당한다. 사회전체가 탈바꿈하고 진화해야 한다.

전체진화론이라 해도 좋지만 ‘전체’가 곧 개인들의 집합체 이상인 사회에 다름 아니다. 서양학계의 진화하는 지식과 상식조차 못 따라가는 학자들이 사실상 한국사회의 개혁과 진화를 막고 있는 세력이 되어있는 꼴이다. (최근에는 진보를 표방하는 학자까지 가세하여 이 개념 하나를 두고, 마치 정치인들의 헤게모니 싸움처럼, 정통성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함석헌에게 정통성은 따로 없었다. 그는 늘 정통조직의 밖에 서있는 들사람, 맨사람이었다. 보편적 진리와 ‘하나님의 뜻’ 그리고 양심이 사고와 행동의 기준이었다. 함석헌의 하나님은 ‘전체’를 떠나서 존재하는 그런 절대자가 아니다. ‘하나-님’이다. 더 이상 한 종교(기독교)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스라엘 출신 신이 아니다.)

이 점에서 자연과학이나 기술공학과 달리, 거의 모든 인문사회 분야는 보편적 상식과 국제 수준에서 뒤쳐져있다. 그나마 알고 있는 이론과 현실이 겉돌고 있다. 당장 자기 명리만 쫓느라 사회발전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교육, 언론, 종교가 제 구실을 못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이다. 그래서도 더욱 근본적인 탈바꿈, 민족개조 같은 것이 필요하다. 이대로는 나라라고도 민족국가라고도 할 수 없다. 지금이라도 함석헌이 외친 메시지를 되새겨 봐야 살길이 보일 것이다. (2010. 7.28, 김영호)

김영호 선생님은
인문학의 몇 분야를 방황하면서 가로질러 수학, 연구(스톡홀름대, 하버드대 펠로우), 강사(연세대 숭실대), 교수(인하대, 현재 명예교수)로 일했다. 전공은 종교철학(원효사상)으로, 그의 세계관의 큰 틀(패러다임)은 다원주의다. 다원주의를 통해 민족분단. 사회 및 지역 갈등, 종교간 갈등 등 한국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극복하기위한 방법론을 모색하고 있다. 그의 사상적 준거는 함석헌과 크리슈나무르티이다. 그 동안, 해외 민주화운동의 도구인 민중신문』(캐나다) 창간(1079)에 관여,『씨알의 소리』편집위원, 함석헌기념사업회 씨알사상연구원장을 맡기도 했다. 지금은 함석헌평화포럼 공동대표와 함석헌학회 학회장직을 맡고 있다.(2015년 12월 현재)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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