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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취래원 농사 칼럼

염 추기경, 한국천주교와 우리사회 불행(?)

by anarchopists 2019. 10. 31.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4/03/04 04:48]에 발행한 글입니다.


염수정 추기경,
한국천주교와 우리 사회에 불행


염수정(1943년생) 천주교 추기경이 가톨릭의 수장 교황(프란치스코Francis, 1936년생)으로부터 추기경 서임을 받고 귀국하였다
.(지난 달 27일) 한국 천주교에서 세 번째 추기경이다. 세계적으로 그리스도교(가톨릭, 개신교 모두 포함)가 쇠퇴하여 가는 이 시기에 한국만은 천주교 신자 수가 증가일로에 있다. 이런 시기에 추기경이 새로 탄생한 것은 좋은 일인지 모르지만 신자 수에서 일본과 인도를 앞지르고 있으면서 추기경이 겨우 2명( 1명은 유명무실)인 것은 한국 천주교가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냉대를 받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는 곧 천주교가 순수 종교성보다는 중세 봉건적 가톨릭의 속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결국 추기경의 존재는 정치적이다. 곧 정치적 속셈에서 한국 추기경은 탄생하였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추기경 탄생은 일본과 인도보다 뒤늦게 나타났다. 김수환 추기경이 그 처음이다.(1969) 김 추기경은 친일이라는 논란을 벗고 우리 사회 민주화와 정치발전에 공한한 바가 크다. 곧 그는 성속일치(聖俗一致)를 몸소 실천하였다. 그 후 정진석 추기경이 임명되었으나(1998) 그는 무능하다 못해 있으나 마나한 신부였다. 그러다가 이번에 염수정 주교가 추기경으로 임명되었다. 염 추기경이 정 추기경의 무능을 답습하지 않나 하는 우려가 인다.

지금 한국 사회는 민주주의, 자유주의, 복지주의의 등 총체적 위기상황이다. 한 마디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정의사회가 구현되지 못하고 있다. 사회발전이 거꾸로 가고 있다. 이 시점에 한국천주교의 역할은 중요하다. 그것은 한국의 현대사에서 한국 천주교의 역할이 또 한 번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독재권력이 기승을 부릴 때 한국천주교는 민주주의 회생(回生)에 앞장을 섰고, 독재 타도와 함께 자유주의 구현에 일익을 담당해왔다. 한국의 천주교가 이렇게 한국의 정치사회 발전에 크게 공헌했기 때문에 한국천주교는 우리나라 사람들로부터 가장 사랑을 받는 종교가 되고 있다. 최근에 조사에 의하면, 한국에 존재하는 종교 중에서 한국인이 신뢰하고 선호하는 종교는 그리스도교 구파인 가톨릭이 41.4%, 불교가 33.5%, 그리스도교 신파인 개신교가 20.0%로 나타났다.(가톨릭뉴스, 2010.12.15.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측 조사) 이렇게 가톨릭은 한국사회에서 사랑을 받는 종교로 부각되고 있다.

한편, 한국은 헌법에서 정교분리(政敎分離)를 지향하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종교인구의 비율(전 인구의 53.3%), 종교단체의 수, 종교계의 활동영역 등을 감안할 때 한국 사회와 종교의 관계는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종교인들은 종교적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각자의 종교 활동에 시간과 재화 등을 소비하며 살아가고 있다. 곧 종교영역은 개별적 신앙생활에만 국한되지 않고, 교육 영역, 사회복지영역, 국방 영역, 법무 영역 등 적지 않은 영역에 관여하면서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한국인의 종교현황, 문화체육관광부, 2012, 4~9쪽 참조)

이와 같이 종교가 생활영역을 지배하고 있는 현대생활에서 종교는 점점 성속일체로 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 한국천주교의 상징적 수장이 된 염수정 추기경의 보면 현대사회가 성속일치로 가는 종교현실을 무식한 듯하다. 그의 언행(言行)을 보면 그는 분명 종교의 성속일치를 부정하고 있다. 현실사회의 종교진화(進化) 상황으로 볼 때 매우 우려된다. 잠시 그의 언행을 살펴보자,

그는 천주교 정평의 시국미사에 대해 “사제들이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 고 비판한 적이 있다(2013. 11) 그리고 아주 비인간적면도 보였다. 용산참사 유족들이 면담 요청이 있을 때 그는 거절한 적이 있다(2012. 8) 아마도 추기경 임명을 기대하고 정진석 추기경과 로마바티칸 대사에게 잘 보여야 하는 야심 때문였던 것으로 보인다. 추기경 승진에 야망을 가진 자의 태도로 치부할 수 있다. 그런데 야망이 아니었던 것 같다. 바티칸 교황청이 발행하는 일간지 <로세르바또레 로마노> 보도에 따르면 염수정 추기경이 인터뷰에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하 정평) 신부들의 주장은 비이성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한다(2014. 2.20일자) 어처구니없는 말이다. 아마도 이게 그의 인간 됨됨인가 보다.

한 마디로 말해서 한국 천주교의 〈정의구현사제단〉(이하, 정평)이 있었기에 이 땅에 정의가 살아났고 평화가 일고 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예수님의 진리를 몸으로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은 정녕, 그 정평 소속의 사제들이고 신자들이다. 그런데 이를 비난하는 말을 염 추기경이 그의 입으로 말했다면, 이것은 한심한 일이다. 야단난 일이다. 기(期)가 막힐 말이다.

지금 한국사회는, 말이 아니다.(헌법이 똥통에 빠졌다) 역사의 오류가 반성의 여지도 없이 계속 추하게 흘러가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을 보라. 얼마나 추한가. 다스림의 윤리가 처절할 정도로 구겨져 있고, 때 묻고, 찢겨져 있다. 이것을 펴고 씻고 꿰맬 어떤 처방도 울연히 드러나지도 않고 있다. 32년 전 간첩조작사건이었던 아람회와 부림회 사건 무죄판결, 23년 전 유서대필조작사건 무죄판결 등, 하나같이 정치권력의 위기와 맞물린 시국사건들이 시간이 흐르면 국가권력에 의해 의도된 조작사건임이 드러나고 있다. 그럼에도 18대 대선 부정선거와 여론호도의 주범중의 하나인 김용판(전 경찰청장) 무죄판결, 이석기의원 등의 강연회에 내용에 대한 내란음모조작사건 유죄판결, 북한탈북자 서울시공무원 간첩조작사건에서 외교문서조작 사건 등,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는 시국사건들이 2~30년 전과 마찬가지로 현 정치권력의 의향대로 놀아나는 판결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여기에 용산참사 미해결, 제주해군기지 건설반대로 망신창이 된 강정주민들 문제, 밀양 송전탑 공사반대로 궁지에 몰린 주민들, 철도민영화 반대로 실직된 노조원들. 사회적 약자들이 양산되고 있다.

이렇게 불의한 현실을 만들어가는 권력자들에 의해 지금도 억눌린 자, 사회적 약자가 양산되고 있다. 그리고 거짓과 허위선전이 난무하고 있다. 이들 억눌린 자, 마음이 아픈 자, 국가폭력에 고통을 받는 자들을 대변하는 일이 종교의 신성한 의무가 아니겠는가. 이런 현실에서 염 추기경은 계속 성속분리만 외치고 있을건가. 한국 천주교는 누가 세웠는가. 성직자가 아니고 신자들이다. 그 신자들이 정치권력에 의해 탄압을 받고 있는데도 이른바 교회의 우두머리라고 하는 성직자들은 눈감고 있겠다는 건가. 해미읍성의 호야나무에서 들려오는 울부짖음에 귀 막고 있자는 속셈인가.

예수의 삶을 돌이켜 보자.
그는 인민과 제자들 뒤에 비겁하게 숨어 사태를 만들고 선동하는 자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직접 그의 생각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그 실천적 삶이 바로 십자가의 고난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그는 예수가 되었다. 염 추기경은 십자가의 고난을 피하고 피의 포도주잔을 받지 않겠다는 말인가. 가톨릭의 수장 프란치스코 교황도 “규제 없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형태의 독재”라고 정의하고 “사제들은 안일한 교회에 머물지 말고 길거리에 나가 사화변혁(멍들고 상처받는 이들을 위해 더러워져라)에 동참하라고 주문하였다.

염수정 추기경이 한국 천주교에서 제대로 된 상징적 수장이 되려면 예수의 거룩한 십자가의 본을 받아야 한다.(한국사회 ‘다스림의 윤리’를 바로 세우기 위해 십자가 죽음도 불사해야 한다) 그래서 천주고 사제들에게 성속일치의 생각을 가지고 "정치, 사회문제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가 아니라, 적극 개입하라고 주문해야 한다. 만약 염 추기경이 계속 성속분리를 주장한다면 한국 천주교의 불행일 뿐 아니라, 한국사회의 불행이 된다. 종교는 성속일치일 때 바른 종교이다.(2014. 2.28, 취래원농부)

취래원농사는
황보윤식(皇甫允植, 醉來苑農士)
학생시절부터 민족/통일운동을 하였다. 동시에 사회개혁에도 관심을 갖고 생명운동을 하였다. 나이 60을 넘기자 바람으로, 도시생활을 과감히 접고 소백산(영주) 산간에 들어와(2010) 농업에 종사하면서 글방(書堂, 반딧불이서당)을 열고 있다. “국가보안법폐지를위한시민모임”, "함석헌학회" “함석헌평화포럼”, “함석헌평화연구소”에도 관여를 하고 있다. 글로는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2017) 등 다수의 글이 있다.(수정 2018. 10.3) /함석헌평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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