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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취래원 농사 칼럼

간첩(빨갱이)은 이렇게 조작되더라

by anarchopists 2019. 10. 31.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4/03/20 07:11]에 발행한 글입니다.


간첩(빨갱이)은 이렇게 조작되더라

대한민국에서는 글쓴이 같은 사람이 살기에는 것은 매우 고달픈 사회다. 지금은 도시생활의 모든 걸 접고 시골에 들어와 살지만, 시골은 더더구나 내가 이웃과 대화를 나누고 살 그런 분위기가 못 된다. 우리 세상이 왜 이리 되었는지 끔찍하기만 하다. 산속에 들어와 살면서 블로그를 운영하여 세상과 접하고 있다. 세상이 행복하고 아름답게, 그리고 조금은 더 정의롭게 살아가기를 바라면서 늘 글을 쓰고 있다. 그 글을 《오마이뉴스. 함석헌평화포럼》(블로그)에 내보내고 있다. 내가 불량한 성향을 가져서도 아니다. 내가 좌빨이거나 종북세력이기 때문은 더더구나 아니다. 나는 사람상식을 갖고 건전하게 살아가는 대한민국 사람일뿐이다.

도시에서 은퇴하고 육체적 노동력이 다하는 그날까지 여생을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리라는 마음을 갖고 있는 농부일뿐이다. 글쓴이가 농사를 짓는 것은 사람에게 유익한, 좋은 농사짓는 삶의 태도를 이웃 농민들에게 계몽하고 좋은 농산물을 소비자들에게 공급하기 위함이다. 이게 내가 살아가는 삶의 본모습이다. 나쁜 농산물을 생산해서는 안 된다는 착한 마음 때문이다. 이런 내 마음을 아랑곳 않고 이웃 농민들이 늘 나에게 주문한다. “그렇게 농사를 지으면 밥 못 먹고 산다. 농약도 듬뿍 쳐야하고, 비료도 만큼만큼 주어야 나무가 틈실하고 열매도 커서 팔아먹기 쉽다”고...그러나 우리는 고집한다. 무농약(아직은 가까이 가고 있지만) 무비료로 농사지어 좋은 생산물을 만들어 도시사람들이 건강하게 살아가기를..

그래서 늘 농사짓는 하루일들을 적는 영농일기(지금은 산촌일기)를 쓴다. 더불어 하루하루 농사를 지으면서 떠오르는 명상과 삶의 지혜들을 영농일지에 적곤 한다. 농사일에 집중하다 보면 잡생각이 사라지고 마음이 고요해진다. 그런 가운데 맑은 명상이 떠오르고는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름다운 우리말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왜 우리는 “동무”라는 말과 “인민”이라는 말을 일상에서 쓰지 못하고 있나. 아름다운 생활언어들이 사라지는 것은 정치적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사회의 안타까운 현실을 탓하며 사라져가는 고운 우리말을 되찾자는 글을 포럼에 올린 적이 있다. 그런데 이 글을 우리 마을 어떤 이장이 읽고서는 글쓴이를 빨갱이로 경찰서에 고발했다. 다행이 00경찰서에서 무협의 처리했기 망정이지 또 다시 간첩으로 몰릴 뻔 했다. 글쓴이는 살아온 과정에서 세 번에 걸쳐 간첩으로 조작될 번한 일을 겪었다.

한번은 대학을 졸업하고 충남 시골의 모 중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채용되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을 때이다.(1972)
4월 말 어느 날, 고등학생들에게 “새마을운동은 농촌을 죽이는 운동이다. 그 이유는 농촌에 남아 있는 전통문화를 파괴하고 농촌을 도시화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농민들을 더 못 살게 되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 이 말을 전직 경찰서장을 지낸 손주 되는 학생이 자기 할아버지에게 말하였고 그 할아버지는 나를 경찰에 고발하였다. 그 해 5월 5일 교장실에서 00경찰서에 체포되어 갔다. 일주일 동안 조사를 받았다. 그들은 처음부터 글쓴이를 빨갱이로 몰고 갔다. 그리고 북한과 연계된 지하간첩으로 몰고 갔다. 다행이 당시 공군장교시험에 합격(이는 까다로운 공군신원조사에 통과했음을 의미한다)하여 입교를 기다리고 있었다. 옆에서 말하는 경찰들의 말을 엿들었다. “신원에 이상이 없다” 공군장교시험에 합격해 있었던 덕으로 간첩혐의에서 풀려났다. 대한민국 경찰들은 반정부적 발언을 하면 무조건 간첩으로 몰고부터 본다는 것을 이때 알았다.

두 번째는 공군장교(대위)로 공군본부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이다.(1979) 당시 박정희의 독재권력에 의하여 민주주의가 파괴되고, 인권이 유린되는 것을 눈 뜨고 볼 수 없었다. 하여 박정희 독재권력을 비난하고 지식인의 문화혁명을 유도하는 글(연하서신)을 글쓴이가 알고 있는 교수와 지식인, 지인들에게 보낸 적이 있다. 이것이 발단이 되어 당시 중앙정보부(지금의 국가정보원)에 적발되고 여기서 다시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로 이첩되어 서울의 서부이촌동 보안사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문혁사건) 이 때 보안사에서는 처음부터 빨갱이로 몰고 갔다. 조사과정 처음 단계부터 빨갱이, 간첩으로 몰면서 조사를 시작하였다.

원탁에 앉은 내 뒤로는 검은 안경을 쓰고 계급장 없는 군복과 검은 장갑을 낀 청년 5명이 뒷짐을 진 채 글쓴이를 삥 에워싸고 있었다. 수사관의 질문에 글쓴이가 “아니다”라고 대답하면 여지없이 어디선가 주먹이 머리를 강타해 왔다. 머리가 띵해지고 공포감이 오기 시작하였다. 수사관이 또 묻는다. “북괴 어느 소속에서 지령을 받았느냐”는 거다.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대답한다. 그러면 또 어디선가 주먹이 날라 온다. 이번에는 의자에서 나가떨어진다. 그러면 뒤에서 “누군가가 소리를 지른다. “이 새끼 똑바로 앉지 못해” 그러면 글쓴이는 반사적으로 오뚝이처럼 일어나 냉큼 의자에 올라앉는다. 공포감이 엄습해 온다. 허리를 곧추 세우고 부동자세를 취한다. 이렇게 공포분위기에서 하루 낮을 보내고, 밤에는 두발과 두 손이 수갑에 채워지고 다시 사지가 침대에 묶인 채로 요지부동으로 잠을 자야 한다. 잠이 올 리가 만무다.

이렇게 “빨갱이다. 아니다”를 가지고 매 맞아 쓰러지고 일어나 앉고 하면서 빨갱이가 아님을 극구 주장하였다. 이들도 같은 질문을 가지고 매 때리는 것에 지쳤는지, 아니면 글쓴이의 주장이 진실이라고 느꼈는지 며칠 뒤, 거짓말탐지기(lie detector)실로 보내졌다. 거짓말탐지기실에서는 주로 글쓴이가 간첩(빨갱이)인지 아닌지를 점검하는 질문 10가지를 했다. 그 내용이 대부분 남한의 지하간첩 명단과 북한의 대남공작을 맡고 있는 요직자 명단이었다.(나중에 알고 보니) 당시 북한에 관해서는 전혀 아는 게 없었고 간첩이나 빨갱이가 아니었기에 거짓말탑지기를 통과하였다. 그리고 다시 며칠을 기다린 후 글쓴이는 공군본부 보안사지부로 이첩되었다. 이후 당시 중앙정보부 지시에 따라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재판을 받게 되었고 공군본부 영창을 거쳐 육군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게 되었다.
.(2013. 7.14 무죄판결)

세 번째는 아람회사건이다.(1981) 긴급조치로 실형을 받고 남한산성 육각(육군교도소의 다른 이름)에 수감되어 있다가 박정희 독재권력이 권력내부의 자기모순으로 무너지고 긴급조치가 풀리면서 출옥하게 되었다. 취업이 어려웠다. 다행이 친구의 소개로 모 기술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이시기 모든 언론들이 전두환 신군부세력에 협박되어 비양심적으로 5.18광주학살에 대한 거짓사실을 보도하고 있었다. 이때 글쓴이를 비롯한 몇몇 제자들이 천주교 광주교구 정의평화위원회와 전북대 학생회에서 나온 전단지의 “5.18광주학살의 주범은 전두환이다”(일명, 전두환광주살륙작전)라는 내용을 그대로 복사하여 전단지로 만들어 살포하였다. 이것이 문제가 되어 당시 청와대와 내무부, 검찰과 경찰이 합작하여 글쓴이를 중심으로 앞의 충남 모 고등학교 재직시 만난 제자들을 엮어서 이른바 아람회 사건을 조작해 냈다.

당시 전두환 권력은 아람회사건을 조작하면서 처음부터 우리를 빨갱이 간첩으로 몰고 갔다. 사건 조작에는 필연적으로 악랄한 고문이 따르기 마련이다. 경찰은 우리를 북한과 연계시키려 온갖 고문을 통하여 조작하려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러자 우리를 ‘자생적공산주의자’로 조작해내고 우리가 ‘반국가단체(아람회)’를 구성하여 국가변란을 도모했다고 조작하였다.

글쓴이는 34일간 모진 고문을 받았다. 하루도 악질적인 고문을 받지 않은 날이 없었다. 모진고문에도 간첩(빨갱이)으로 몰리지 않기 위해 무던 애를 썼다. 고문에 지친 글쓴이가 “차라리 죽여라”고 고함을 치면, 수사관들은 어처구니없는 말을 했다. “그래 죽여주겠다. 그러면 ‘빨강볼펜으로 나는 빨갱이 짓을 하다가 죽었다’는 유서를 써라, 그러면 죽여서 가마니에 돌돌 말아 길거리에 버려주겠다.”는 말을 밥 먹듯이 했다. 경찰에 불법으로 체포되어 들어온 동지들 모두가 고문에 지쳤다. 일부 나약한 동지가 대공분실의 모진 고문에 걸려들어 없는 사실을 경찰이 조작하는 데로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하였다. 여기서 또 다시 전체 동지들에게 모진 고문이 시작되었다. “누구는 했다는데 너는 왜 안 했다”고 하느냐 식이다. 결국 일제강점기 105인사건처럼 우리는 실체도 없는 ‘자생적 빨갱이’가 되었고 반국가단체(아람회)를 결성하여 국가변란을 주도했다는 죄목으로 실형(글쓴이는 7년) 언도를 받고 징역살이를 하게 되었다. 이게 아람회사건이다.(2009.5.21,무죄판결)

글쓴이의 경험에 의하면, 독재권력들이 자신들의 권력유지에 방해가 되는 세력이 있으면/있거나 하면 시국사범으로 몰아 불법으로 체포 감금하고 무조건 고문부터 시작한다. 독재권력(박정희와 전두환 때)의 수하들이 저질은 고문을 우리가 익히 알고 있지만 글쓴이가 겪었던 악랄한 고문수법을 소개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겼었던 혹독한 고문수법들을 함께 소개해 본다. 다음에 소개하는 고문내용들이 바로 대한민국 독재권력 하에서 이루어진 고문수법들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글쓴이가 이른바 아람회사건에 연루되어 1981년 7~8월 사이에 당했던 경악을 금치 못하는 잔인무도한 고문수법을 적어본다.

“며칠씩 잠 안 재우기(생존욕구 자극)/ 몽둥이로 두들겨 패기/ 밥 안 주기/ 여러 날 굶긴 다음, 진수성찬의 음식을 차려놓고 약 올리기/ 머리채를 잡고 욕탕물에 머리를 처박기(일명 물고문) / 죽인다고 협박하기/ 가족을 죽인다. 또는 가족에게 불이익이 주겠다고 협박하기(정신적 고통 배가)/ 손가락 주리 틀기/ 다른 사람 고문하는 장면과 고문당하며 고통스럽게 내지르는 비명소리 듣게 하기(심리적 고통 배가)/ 머리를 땅에 박고 손을 등 뒤로 올린 채 오래 버티기(일명, 원산폭격)/ 얼굴에 물을 뿌린 후 백지를 발라 수막상태 만들기(일명, 통닦구이)/ 바닥에 끌어앉히고 두 무릎 사이에 각목(5cm 굵기의)을 끼운 상태에서 위에서 두 무릎 밟기/ 거꾸로 매단 채, 코에 물을 부으며 뱅뱅 돌리기/ 사람을 쓰러트린 후, 주먹과 구둣발로 목 부분과 전신을 비벼대며 구타하기/ 수사실 출입문에서 태권도식으로 날라들어와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을 공격하여 쓰러트리기/ 고문하다 기절하면, 종이로 얼굴을 봉창한 후 물 끼얹기/ 머리채와 귀를 잡고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구타하다가 방바닥에 처박고 메치기/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인다고 협박하여 공포감 유발하기/ 이외 본인은 당하지 않았지만 대나무 못으로 손톱 및 발톱 사이에 쑤셔 넣기와 천하에 공노(共怒)할 성기고문과 전기고문도 있다.

결국 글쓴이의 세 가지 사건은 모두 독재권력들이 있을 때 일어난 사건으로 새마을 운동은 박정희 독재권력이 그의 독재적 영도력을 선봉에서 휘날려줄 대중운동이었다(잘살기 운동이라는 말은 장기집권을 위한 포장) 따라서 당시 새마을운동을 비판하면 어김없이 체포, 구금되었다. 그리고 긴급조치는 다 아는 바와 같이 박정희가 황제화(제제화 帝制化)를 꿈꾸면서 국가폭력에 의해 강제된 유신헌법에서 나온, 말도 안 되는 인권탄압이었다. 곧 민주주의를 헌신짝처럼 저버리는 유신헌법에 대하여 일체 비판도 못하게 만든 위헌적 압제가 긴급조치이다. 따라서 박정희 제제화에 걸림돌이 되는 사람들은 죄다 잡아다 감옥에 가두었다. 5.18광주학살은 박정희 독재권력이 무너졌음에도 권력욕에 불탄 전두환이 광주의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하고 이러한 악귀적 행동을 바탕으로 권력을 찬탈한다. 이때 전두환은 자신의 권력찬탈에 방해가 되는 시민세력들을 모두 불법으로 잡아가두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 시국사건(양심 있는 정의로운 사람들에 의한)은 모두 독재권력을 유지/연장하기 위해 독재자와 그 수하들이 일으킨 사건들이다. 동서냉전의 희생자인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은 핑계는 이념몰이다. 1970~80년대 대한민국 독재자들과 그 수하들은 시국사건을 일으킨 사람들이 정의롭고 양심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간첩이기 때문에, 사상이 불량(빨갱이기 때문에)해서 대한민국 정부에 반대한다는 논리를 나라사람들에게 인식시키는 사기적 전략을 썼다. 그래서 엉터리 정부선전을 하기 위해 정권에 반대하는 양심이 있는 사람들(세력)을 붙잡아 일단 빨갱이나 간첩으로 몰고 본다. 이들을 강제로 간첩이나 빨갱이로 만드는 수단은 반인륜적인 고문수단과 사건 조작이다.

이러한 악독한 고문을 견딘 사람은 양심범으로 태어나고, 지독한 고문을 덜 견댜낸 사람은 빨갱이(자생적 공산주의)로, 모진 고문을 못 견뎌낸 사람은 간첩으로 둔갑되어 평생 감옥에서 살게 된다. 이번의 국정원 간첩조작사건도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부정선거 논란에 국정원이 휘말리자 이런 국면을 모면하기 위해 조작한 사건(경향신문, 2014. 3.14일자))이라고 하지 않는가. 이제는 나라사람들도 깨어야 한다. 이제 권력유지를 위하여 사람 때려잡는 일 그만 하자. 우리도 인간답게 살아가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보자. 이번 국정원의 공무원 간첩조작사건도 위의 이야기들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을 해본다.(2014. 3.16, 취래원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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