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4/03/15 04:40]에 발행한 글입니다.
글쓴이가 사는 이웃 마을 상평에 정혜사가 있다. 들어선 지 3년이 조금 넘었다. 정혜사는 여일(如一) 이고(尼姑)님께서 개인 사찰로 지었다. 이제는 신도들도 제법 늘어가고 있다. 이번에 그 스님이 기획하여 라오스 불교유적지를 둘러보게 되었다. 라오스(Lao, 그리스어로 인민人民이라는 뜻이다)는 프랑스, 태국, 미국이라는 나라에게서 온갖 시달림을 다 당한 탓에 나라구실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가난하고 슬픈 나라이다. 그래서 나라사람들은 자신들의 고달픈 삶을 자기업보로 여기며 가난을 숙명처럼 알고 살아가는 가난하지만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게다가 공산주의를 국가이념으로 삼고 있어서 개인의 행동적 자유가 상당히 통제를 받고 있다. 이것 또한 숙명으로 받아들이며 사는 순진한 사람들이다. 이 모든 것을 행복으로 받아들이고 사는 사람들이다. 이렇듯 정신적 태도와 사회적 환경이 결합되어 자본주의 사회보다는 사회발전과 경제발전이 더디게 가고 있는 나라이다.
라오스는 바다가 접해 있지 않고 높은 산악지대로 둘러싸여 있는 내륙국가이다. 14세기 중반, 중국 윈난성[云南省]의 산악지대에서 살고 있던 몽골혈통의 타이[Thai族]계 라오족(Lao)이 이동해와 나라를 건설하였다.(1353, 란쌍 왕국, 이전은 부족상태) 라오스는 지형상 높은 산악지대, 고원지대, 평원지대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산악(평균고도 1,500m)과 고원지대(평균고도 1000m)가 전 국토(총 면적 236,800km²로, 한반도면적 223,348km²과 비슷하고 남한면적 99,720㎢의 약 2.4배에 해당된다)의 1/3을 넘는다. 이런 지리적 환경조건 때문에 라오스는 지역과 지역 사이에 문화 접속과 교류가 차단되어, 지역별로 서로 다른 전통적 성격을 농후하게 갖고 있는 나라이다. 이와 함께 선진문병을 빠르게 받아들인 지역과 그렇지 못한 지역 사이에 부족적, 문명적 불평등 관계가 지속되면서 지배와 피지배간 갈등이 심화되어왔던 나라이다. 이 때문에 현 라오정부는 지역 간, 소수민족 간 갈등과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소수민족(정부 공식집계는 49족, 학술적으로 160~850족)의 개념을 일소하고 라오스에 거주하는 모든 민족을 라오족으로 통일하였다. 그리고 지역에 따라 평지(저지)라오족, 고원(구릉)라오족, 산악(고지)라오족으로 구분하여 민족적 통일을 기하고 인민의 평등성을 강조하고 있다.
라오스의 공식 나라이름은 ‘라오인민민주주의공화국’(Lao People's Democratic Republic, 1975.12.2. 설립)으로 수도는 비엔티엔(Vientiane)이다. 정치적으로는 공산주의(Marx-Lenin의) 이념을 갖는 ‘라오스인민혁명당’(1975년 성립)의 일당체제로 구성된 권력구조를 가지고 있다. 현재 인구는 약 700만명(2013년말 현재)으로 영토면적에 비하여 인구밀도가 1㎢당 약 31명꼴(남한은 490명)이다. 인구밀도는 동남아지역에서 가장 낮다. 바로 이것이 잦은 외세침탈과 함께 라오스 경제발전을 더디게 만든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문화적으로 이들 종교는 우리와 달리 남방불교인 소승불교(전 인민의 67%, 나머지 33%는 토속신앙인 샤머니즘 신봉)를 신봉하고 있다. 그러나 라오스 전통의 민간신앙(샤머니즘)과 결합한 종교적 색채를 가지고 있어 불교신앙의 본질이 많이 왜곡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러한 토착신앙과 결합한 라오스 소승불교가 라오인민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는 라오스인의 정신세계(사찰이 지역주민의 윤리세계와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를 지배해 왔다. 이런 이유로 라오스 사회에서는 승려가 가장 존경 받는 사회계급을 구성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공산주의 이념을 갖는 라오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는 인민혁명당의 청년동맹(Lao People's Revolutionary Youth Union)과 지역행정부서에서 허가를 받은 자만이 승려가 될 수 있게 되었다. 이 때문에 사회문화적으로 성속일치(聖俗一致)를 보이는 사회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부권력(공산주의 이념을 갖는)이 종교를 지배하고 있는 셈이다. 헌법에서도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가 안치되어 있다는 탓 루엉(That Luang) 사원을 국가사찰로 받들고 있다.
현재 라오스는 소련의 붕괴 이후, 사회주의식 시장경제정책을 채택하고 있지만(1979. 12) 국토의 지리적 환경, 낮은 인구밀도, 전통적 농업경제, 그리고 프랑스의 장기간 식민지(1860~1949), 미국 등 외세의 잦은 전쟁지화(베트남 전쟁시 미국이 라오스에서 벌인 비밀전쟁, 1964~1973)으로 영토와 자연환경이 대부분 유린되어 황폐화된 탓에 경제발전이 동남아에서 가장 더디게 발전하고 있는 나라이다.(2010년 기준, 1인당 국민소득 1170달러)
미국이 베트남과 전쟁(1975.4.30. 마감)을 끝낸 뒤 ‘라오스인민혁명당’ 정부는 미국에게 라오스에서 벌인 비밀전쟁으로 입은 피해(불발탄의 산재로 인한 라오스주민의 피해와 공포, 미국의 융단폭격으로 자연환경 파괴)등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였다. 이에 미국은 실질적인 경제적 보상을 하지 않고, 그 대가(代價)로 라오스를 세계적으로 홍보해 주기로 했다. 바로 이 미국의 알량한 홍보보상이 뉴스위크지에 실린 “지구촌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 깨끗한 자연과 친절한 사람들, 순수-청정의 이미지”라고 선전문구와 함께 “꼭 가봐야 할 나라” 1위로 선정한 일이다.(2008) 이것은 위선이다. 사기다. 경제보상을 하지 않고 사기를 친 게다. 이 때문에 세계여행객들이 미국의 사기홍보(詐欺弘報)에 유혹되어 라오스를 보려고 여행을 하게 된 연유가 여기에 있다. 현지에 가서야 미국의 사기홍보에 속아 이곳에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매우 불쾌한 일이다. 미국의 더러운 속임수에 세계인들을 농락당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라오스를 여행하는 관광객 중에는 라오스의 전통문화와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가는 부류도 있지만, 미국의 사기홍보에 속아 호기심, 그리고 조용한 나라라는 말에 홀려서 가는 일반적 여행객들이 많다. 일반 여행객 중에는 추한 한국인들이 꼭 끼기 마련이다. 예전에 중국과 수교가 있고 나서(1992) 많은 한국 여행객들이 중국 연변과 백두산으로 갔을 때도 느꼈지만, 이번에도 자기과시에 기고만장(氣高萬丈)하여 떠드는 ‘매우 추한 한국인’들이 있었다.
라오스 기행 마지막 날 저녁, 숙박지인 비앤티엔(Vientiane)의 돈찬 팔래스 호텔(Donchan Palace)에 머물게 되었다. 한밤중이다.(현지시간 01:00, 한국시간 새벽 3시) 요란한 음주가무(飮酒歌舞)의 소리(한국어)가 호텔 전체를 뒤흔드는 듯 시끌벅적하였다. 끝내는 호텔 측 관리인의 종용하는 소리와 함께 퇴숙경고를 받는 소리가 들렸다.(퇴숙 경고는 이튼 날 호텔식당에서 현지 가이드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이튼 날 호텔 식당이다.
호텔의 아침식사는 당연히 양식이다. 어제 말썽을 핀 그 여행객(농민으로 구성된)인 듯한 사람들이 커다란 스츠로폰 상자와 종이 상자에 각각 파김치와 배추김치를 담아가지고 와서는 호텔 식당의 식탁 위에 버젓이 올려놓고 그 냄새나는 음식을 배분하고 있다. 식당 안에 농익은 김치냄새가 요란하게 퍼져나간다. 옆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던 우리가 창피할 정도이다. 그리고 식사를 하는 도중 자랑스럽게 어제 있었던 일들을 왁작거리며 시끄럽게 떠들어댄다. 그래도 잘 사는 나라에서 가난한 나라로 여행을 왔다고 한다면 기본교양은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이제는 사람다운 교양과 사람다운 상식을 가지고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가 아닌가.
라오스 사람들한테 참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그냥 웃어넘길까. 부처님의 아량을 가지고 우리를 용서할까. 마지막 일정을 소화하기 위하여 라오스 불교사찰의 상징이요, 라오스 국가문장에도 들어가 있는 탓루앙 사원(Pha That Luang: 위대한 불탑Great Stupa이라는 뜻) 등지를 탐방하였다. 여기서도 무질서다. 도데체가 남의 종교를 존중할 줄 모르는 한국인이다. 사찰에서 요구하는 질서를 지키지 않는다. 한국인이 그리도 뭐가 잘난 것인지. 창피해서 이내 나오고 말았다.
이번 라오스 여행을 통하여 라오스에 대하여 많이 왜곡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미국의 사기홍보 전략에 우리가 말려들었다는 씁쓸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미국이 실질적인 피해보상 대신에 라오스 홍보를 했다고는 하지만 그 내면에는 공산주의를 이념으로 하고 있는 국가들의 사는 모습이 다 그렇고 그렇다는 이념홍보를 하기 위함이 아니었는가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게다가 아직은 라오스 측에서 중요 유적지와 볼거리를 연결하는 교통로가 확보되어 있지 않아서 교통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그리고 산림과 수풀도 미군의 상상을 초월하는 무차별적 폭격으로 모두 훼손되어 자연경관도 볼만한 게 없다. 굳이 라오스 여행을 간다면. 지금 한창 도로망이 구축되고 유적지와 문화재들이 정지되고 있으니 5년 후나 가보는 게 좋을 듯하다. 미국의 사기홍보를 저주하면서 이제는 제발 추한 한국인이 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2014. 3.12, 취래원농부)
황보윤식(皇甫允植, 醉來苑農士)
학생시절부터 민족/통일운동을 하였다. 동시에 사회개혁에도 관심을 갖고 생명운동을 하였다. 나이 60을 넘기자 바람으로, 도시생활을 과감히 접고 소백산(영주) 산간에 들어와(2010) 농업에 종사하면서 글방(書堂, 반딧불이서당)을 열고 있다. “국가보안법폐지를위한시민모임”, "함석헌학회" “함석헌평화포럼”, “함석헌평화연구소”에도 관여를 하고 있다. 글로는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2017) 등 다수의 글이 있다.(수정 2018. 10.3) /함석헌평화연구소
라오스와 추한 한국인
글쓴이가 사는 이웃 마을 상평에 정혜사가 있다. 들어선 지 3년이 조금 넘었다. 정혜사는 여일(如一) 이고(尼姑)님께서 개인 사찰로 지었다. 이제는 신도들도 제법 늘어가고 있다. 이번에 그 스님이 기획하여 라오스 불교유적지를 둘러보게 되었다. 라오스(Lao, 그리스어로 인민人民이라는 뜻이다)는 프랑스, 태국, 미국이라는 나라에게서 온갖 시달림을 다 당한 탓에 나라구실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가난하고 슬픈 나라이다. 그래서 나라사람들은 자신들의 고달픈 삶을 자기업보로 여기며 가난을 숙명처럼 알고 살아가는 가난하지만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게다가 공산주의를 국가이념으로 삼고 있어서 개인의 행동적 자유가 상당히 통제를 받고 있다. 이것 또한 숙명으로 받아들이며 사는 순진한 사람들이다. 이 모든 것을 행복으로 받아들이고 사는 사람들이다. 이렇듯 정신적 태도와 사회적 환경이 결합되어 자본주의 사회보다는 사회발전과 경제발전이 더디게 가고 있는 나라이다.
라오스는 바다가 접해 있지 않고 높은 산악지대로 둘러싸여 있는 내륙국가이다. 14세기 중반, 중국 윈난성[云南省]의 산악지대에서 살고 있던 몽골혈통의 타이[Thai族]계 라오족(Lao)이 이동해와 나라를 건설하였다.(1353, 란쌍 왕국, 이전은 부족상태) 라오스는 지형상 높은 산악지대, 고원지대, 평원지대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산악(평균고도 1,500m)과 고원지대(평균고도 1000m)가 전 국토(총 면적 236,800km²로, 한반도면적 223,348km²과 비슷하고 남한면적 99,720㎢의 약 2.4배에 해당된다)의 1/3을 넘는다. 이런 지리적 환경조건 때문에 라오스는 지역과 지역 사이에 문화 접속과 교류가 차단되어, 지역별로 서로 다른 전통적 성격을 농후하게 갖고 있는 나라이다. 이와 함께 선진문병을 빠르게 받아들인 지역과 그렇지 못한 지역 사이에 부족적, 문명적 불평등 관계가 지속되면서 지배와 피지배간 갈등이 심화되어왔던 나라이다. 이 때문에 현 라오정부는 지역 간, 소수민족 간 갈등과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소수민족(정부 공식집계는 49족, 학술적으로 160~850족)의 개념을 일소하고 라오스에 거주하는 모든 민족을 라오족으로 통일하였다. 그리고 지역에 따라 평지(저지)라오족, 고원(구릉)라오족, 산악(고지)라오족으로 구분하여 민족적 통일을 기하고 인민의 평등성을 강조하고 있다.
라오스의 공식 나라이름은 ‘라오인민민주주의공화국’(Lao People's Democratic Republic, 1975.12.2. 설립)으로 수도는 비엔티엔(Vientiane)이다. 정치적으로는 공산주의(Marx-Lenin의) 이념을 갖는 ‘라오스인민혁명당’(1975년 성립)의 일당체제로 구성된 권력구조를 가지고 있다. 현재 인구는 약 700만명(2013년말 현재)으로 영토면적에 비하여 인구밀도가 1㎢당 약 31명꼴(남한은 490명)이다. 인구밀도는 동남아지역에서 가장 낮다. 바로 이것이 잦은 외세침탈과 함께 라오스 경제발전을 더디게 만든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문화적으로 이들 종교는 우리와 달리 남방불교인 소승불교(전 인민의 67%, 나머지 33%는 토속신앙인 샤머니즘 신봉)를 신봉하고 있다. 그러나 라오스 전통의 민간신앙(샤머니즘)과 결합한 종교적 색채를 가지고 있어 불교신앙의 본질이 많이 왜곡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러한 토착신앙과 결합한 라오스 소승불교가 라오인민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는 라오스인의 정신세계(사찰이 지역주민의 윤리세계와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를 지배해 왔다. 이런 이유로 라오스 사회에서는 승려가 가장 존경 받는 사회계급을 구성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공산주의 이념을 갖는 라오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는 인민혁명당의 청년동맹(Lao People's Revolutionary Youth Union)과 지역행정부서에서 허가를 받은 자만이 승려가 될 수 있게 되었다. 이 때문에 사회문화적으로 성속일치(聖俗一致)를 보이는 사회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부권력(공산주의 이념을 갖는)이 종교를 지배하고 있는 셈이다. 헌법에서도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가 안치되어 있다는 탓 루엉(That Luang) 사원을 국가사찰로 받들고 있다.
미국이 베트남과 전쟁(1975.4.30. 마감)을 끝낸 뒤 ‘라오스인민혁명당’ 정부는 미국에게 라오스에서 벌인 비밀전쟁으로 입은 피해(불발탄의 산재로 인한 라오스주민의 피해와 공포, 미국의 융단폭격으로 자연환경 파괴)등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였다. 이에 미국은 실질적인 경제적 보상을 하지 않고, 그 대가(代價)로 라오스를 세계적으로 홍보해 주기로 했다. 바로 이 미국의 알량한 홍보보상이 뉴스위크지에 실린 “지구촌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 깨끗한 자연과 친절한 사람들, 순수-청정의 이미지”라고 선전문구와 함께 “꼭 가봐야 할 나라” 1위로 선정한 일이다.(2008) 이것은 위선이다. 사기다. 경제보상을 하지 않고 사기를 친 게다. 이 때문에 세계여행객들이 미국의 사기홍보(詐欺弘報)에 유혹되어 라오스를 보려고 여행을 하게 된 연유가 여기에 있다. 현지에 가서야 미국의 사기홍보에 속아 이곳에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매우 불쾌한 일이다. 미국의 더러운 속임수에 세계인들을 농락당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라오스를 여행하는 관광객 중에는 라오스의 전통문화와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가는 부류도 있지만, 미국의 사기홍보에 속아 호기심, 그리고 조용한 나라라는 말에 홀려서 가는 일반적 여행객들이 많다. 일반 여행객 중에는 추한 한국인들이 꼭 끼기 마련이다. 예전에 중국과 수교가 있고 나서(1992) 많은 한국 여행객들이 중국 연변과 백두산으로 갔을 때도 느꼈지만, 이번에도 자기과시에 기고만장(氣高萬丈)하여 떠드는 ‘매우 추한 한국인’들이 있었다.
라오스 기행 마지막 날 저녁, 숙박지인 비앤티엔(Vientiane)의 돈찬 팔래스 호텔(Donchan Palace)에 머물게 되었다. 한밤중이다.(현지시간 01:00, 한국시간 새벽 3시) 요란한 음주가무(飮酒歌舞)의 소리(한국어)가 호텔 전체를 뒤흔드는 듯 시끌벅적하였다. 끝내는 호텔 측 관리인의 종용하는 소리와 함께 퇴숙경고를 받는 소리가 들렸다.(퇴숙 경고는 이튼 날 호텔식당에서 현지 가이드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이튼 날 호텔 식당이다.
호텔의 아침식사는 당연히 양식이다. 어제 말썽을 핀 그 여행객(농민으로 구성된)인 듯한 사람들이 커다란 스츠로폰 상자와 종이 상자에 각각 파김치와 배추김치를 담아가지고 와서는 호텔 식당의 식탁 위에 버젓이 올려놓고 그 냄새나는 음식을 배분하고 있다. 식당 안에 농익은 김치냄새가 요란하게 퍼져나간다. 옆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던 우리가 창피할 정도이다. 그리고 식사를 하는 도중 자랑스럽게 어제 있었던 일들을 왁작거리며 시끄럽게 떠들어댄다. 그래도 잘 사는 나라에서 가난한 나라로 여행을 왔다고 한다면 기본교양은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이제는 사람다운 교양과 사람다운 상식을 가지고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가 아닌가.
라오스 사람들한테 참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그냥 웃어넘길까. 부처님의 아량을 가지고 우리를 용서할까. 마지막 일정을 소화하기 위하여 라오스 불교사찰의 상징이요, 라오스 국가문장에도 들어가 있는 탓루앙 사원(Pha That Luang: 위대한 불탑Great Stupa이라는 뜻) 등지를 탐방하였다. 여기서도 무질서다. 도데체가 남의 종교를 존중할 줄 모르는 한국인이다. 사찰에서 요구하는 질서를 지키지 않는다. 한국인이 그리도 뭐가 잘난 것인지. 창피해서 이내 나오고 말았다.
이번 라오스 여행을 통하여 라오스에 대하여 많이 왜곡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미국의 사기홍보 전략에 우리가 말려들었다는 씁쓸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미국이 실질적인 피해보상 대신에 라오스 홍보를 했다고는 하지만 그 내면에는 공산주의를 이념으로 하고 있는 국가들의 사는 모습이 다 그렇고 그렇다는 이념홍보를 하기 위함이 아니었는가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게다가 아직은 라오스 측에서 중요 유적지와 볼거리를 연결하는 교통로가 확보되어 있지 않아서 교통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그리고 산림과 수풀도 미군의 상상을 초월하는 무차별적 폭격으로 모두 훼손되어 자연경관도 볼만한 게 없다. 굳이 라오스 여행을 간다면. 지금 한창 도로망이 구축되고 유적지와 문화재들이 정지되고 있으니 5년 후나 가보는 게 좋을 듯하다. 미국의 사기홍보를 저주하면서 이제는 제발 추한 한국인이 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2014. 3.12, 취래원농부)
취래원농사는
학생시절부터 민족/통일운동을 하였다. 동시에 사회개혁에도 관심을 갖고 생명운동을 하였다. 나이 60을 넘기자 바람으로, 도시생활을 과감히 접고 소백산(영주) 산간에 들어와(2010) 농업에 종사하면서 글방(書堂, 반딧불이서당)을 열고 있다. “국가보안법폐지를위한시민모임”, "함석헌학회" “함석헌평화포럼”, “함석헌평화연구소”에도 관여를 하고 있다. 글로는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2017) 등 다수의 글이 있다.(수정 2018. 10.3) /함석헌평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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