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함석헌평화연구소/홍원준 논객 칼럼

연대의 의무

by anarchopists 2019. 10. 30.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4/06/05 06:00]에 발행한 글입니다.


연대의 의무



마이클 샌델은 자유주의를 비판하면서 공동체주의를 말한다. 마치 공동체주의가 지금의 자유주의-개인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말하면서 사회, 국가의 중요성을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개인주의와 마찬가지의 극단에 불과하다. 분명 우리는 공동체에 소속해 어떤 사회나 모임, 국가에 소속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 모임, 국가는 과연 그들이 스스로 만들고 지배하고 지배당하고 있는가? 대부분의 경우 그 공동체에 함몰되어 마치 공동체의 규범이나 법에 절대적으로 복종하고 비非-비판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 속에서 각자(개체 혹은 개별성)는 없어져 그저 한국인, 서울사람, 중산층과 같은 관계들만 나타나는 이 관계의 한계성을 표현할 수 있을 뿐이다. 분명 각자는 각자이며 그들의 ‘삶’, 관계는 위와 같이 공동체의 관계나 하나의 방법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각자가 ‘활동하는 주체’-기드보르가 『스펙타클의 사회』에서 말하는 주체-가 되어야 어떤 종교처럼 받아들여지는 이론, 방법, 정의를 거부하고 진정 자기를 억압하는 것을 비판할 수 있으며 직접 마주한 장애물-혹은 벽-을 바라보고 이를 극복하고자 할 것이다. 이러한 바탕 속에서 주체들이 느끼는 장애물이 나만의 것의 아니라 모두가 마주한 것이라는 인식에서만 지배 없는 지배를 통한 자유로운 연대가 가능하다. 대표-이데올로기, 단편적이고 일방적인 관계-를 통해 누군가에게 자신의 권력을 이행하여 표현되는 것이 아닌 스스로가 인식하고 판단하여 지배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물론 이러한 행위는 지금과 같이 그저 하늘에서 떨어지는 혹은 누군가가 명령하는 체제에 익숙해진 우리들에게 너무도 힘든 아니 실현불가능한 일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는 유사 이래로 이러한 체제에 순응해온 인간들이 대부분이며 지금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마치 거대하고 강한 강물에 휩쓸려 이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며 그 안에서 안분지족을 느끼고자 하는 이들이 대부분인 상황이다. 아니 어쩌면 그들은 그런 강물에 빠져있는지 인식하고 있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 강물은 따뜻하고 화려하며 다른 인간들도 다 같이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러나 우리는 그 강물 속에서 나오고자 발장구 치고 헤엄쳐야 한다. 여태까지 보이지 않았던 육지를 본 이상 그 강물에 계속 흘러갈 수 없다. 우리는 물에서 보다 땅에서 걷는 존재이다. 하지만 이러한 헤엄치는 방법은 각자가 다 다르다. 그리고 그 헤엄을 치느냐 안치느냐는 각자가 강물의 위험을 감지하고 육지로 나가고자 하는 자각이 느껴졌을 때 가능하다. 스스로 물살을 헤치며 육지에 다다랐을 때 그 육지야 말로 자신이 서 있는 곳이며 있어야할 곳이다.


누군가가 보트, 구명조끼, 튜브를 던져줘서 자신을 건져주는 것을 거부해야한다. 그는 분명 자신을 건져줬기에 무엇
인가를 요구하며 우리는 생명을 구해줬다는 답례로 그에게 헌신해야 한다. 결국 강물에서 벗어났지만 누군가에게 다시금 종속되어 스스로가 밟을 육지가 아닌 다른 육지를 밟은 순간 다른 억압의 시작, 다른 지배당함의 시작만이 연속될 뿐이다.
남을 통해서 얻는 방법은 나를 남과 같다는 감각을 통해서만 방법을 실행하여 자유를 얻는다는 것인데 이는 분명 나와 남이 다르기에 오류인 것이다. 어떤 진실, 진리를 얻기 위한 방법은 모두가 다르며 각자의 고유한 방법으로만 위의 것들을 깨달을 뿐이고 이 방법은 절대적으로 자신에게만 유효하다. 그러므로 방법의 단편화, 일반화, 절대화는 우리가 마주한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며 거부해야할 명령, 지배이다. 각자가 가진 다양한 관계를 통해서만 자신은 드러나고 이러한 관계의 열림을 바탕으로 자신의 방법을 추구할 때만 진정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위 이미지는 인터넷 daum에서 퍼온 것임.


홍원준 필자는
숭실대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으로서 평소 사회, 정치, 문화 등에 비판적 의식을 견지해왔습니다.

그래서 의생명시스템학과에서 철학으로 전공을 바꿀 정도로 존재, 사유, 실존, 본래성 등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철학도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프랑스 철학의 인식론을 중심으로 촘스키와 같은 언어철학자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젊은이로서, 우리 사회 진보에 대한 대안제시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함석헌평화포럼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