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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홍원준 논객 칼럼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자

by anarchopists 2019. 10. 29.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4/06/19 06:00]에 발행한 글입니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자



우리는 온갖 치장을 하면서 밖으로 나간다. 외적인 부분인 옷, 헤어스타일, 악세사리, 향수 등 자신을 보여주기 위해 꾸미고 ‘난 이런 사람이다’라고 표현되어지길 바란다.
특히 사회생활에 있어서 외적 양식의 표현은 기본적인 예의로 인식 되어있다. 여기에 내적으로는 타인에게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호감을 사고 싶어 하고 예절바르게 보이고자 한다. 이러한 행위는 흔히 ‘공적’이라는 수식어로 말해지며 사회에서 이렇게 행하는 것은 일말의 여지없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된다. 격과 식을 차려서 상대를 존중하고 자신 또한 존중받고자 한다는 논리에서 말이다.


이러한 시대에 현존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위의 것에 순응하며 이것이 자명하다고 여기고 있다. 이것은 너무도 완벽해보여서 개인으로써는 비판의 여지조차 보이지 않는 완벽한 기준으로 나에게 주어진 것으로 느낀다. 하지만 몸은 무엇인가를 느끼고 있다. 서로 존중하기 위한다는 그 누구도 비판할 수 없는 논리이지만 그 안에 감춰진 우리의 본성의 짓눌림을 무의식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라는 개념을 빌려와 ‘사생활’의 ‘공적생활’과 다른 자신의 활동무대를 만들어낸다. ‘공적’, 도덕의식의 교육만으로는 그 해결책을 찾을 수가 없기에 자신을 나눠버린 모습인 것이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공적생활’에서 자신의 ‘사생활’을 완전히 버릴 수 없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딜레마일 것이다. ‘공적생활’에서 억눌렸던 ‘사생활’의 욕구가 분출되어 더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행위를 ‘사생활’을 나타낸다.


자 우리는 이러한 것을 너무나 너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분화 되지 않은 자신을 무의식과 의식을 통해 둘로 나눠서 스스로 정신분열로 만들어버리고 이 정신분열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이 현상을 감추기 위해 ‘사생활’의 본연한 사람의 자신을 표현하는 이들을 오히려 정신병자로 취급하고 연극무대나 영화의 스크린 속에만 존재해야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다수의 정신분열자가 소수의 정상인을 보고 정신병 취급하는 상황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이기에 대부분은 사람들은 둘로 나눠진 자신의 자아 속에서 갈팡질팡하며 선택을 후회하고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한 채 아니 원하는 방향조차 알지 못한 채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이 사회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내가 만들어놓은 것이 아님에도 이 굴레에 속박되어진 마치 트루먼쇼에 주인공이 갇혀있는 스튜디오와 같은 것이다. 그렇다고 낙담할 필요는 없다. 분명 여길 살아가고 있는 것은 나이며 우리들이기에 우리가 행동하기에 따라 창조자가 될 수도 있다. 바다처럼 느껴지는 곳을 고난과 역경을 뚫고 가서 마주한 벽을 만나고 조그마한 출구를 찾은 주인공처럼 우리도 끊임없이 현실을 바라보고 불현 듯 떠오르는 잘못된 느낌을 받았을 때 즉각적인 반응을 하고 이를 통해 적극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우리는 정신분열자이다. 그렇기에 수많은 선택 아닌 선택을 하게 되고 딜레마 아닌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인생은 B와 D사이에 C’라고 말했다. ‘탄생과 죽음 사이에 선택’으로 해석되어지는 이 어구를 나는 ‘현존-Being-과 위장-Disguising- 사이에 선택’이라 말하고 싶다. 위장되어 만들어진, 보여진, 형이상학화 된 것이 아닌 창조하는, 현존하는, 그 자체인 나를 선택하는 삶을 만들어가야 한다. 남에게 표현하기 위한 행위보다는 진정 내가 표현하고 싶은 행위를 나타내고 자신을 당당히 드러내는 각각의 ‘내’가 된다면 자신들이 이루고 있는 사회도 자연스럽게 바뀌어갈 것이야말로 자명할 것이다.


*위 이미지는 인터넷 daum에서 퍼온 것임.


홍원준 필자는
숭실대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으로서 평소 사회, 정치, 문화 등에 비판적 의식을 견지해왔습니다.

그래서 의생명시스템학과에서 철학으로 전공을 바꿀 정도로 존재, 사유, 실존, 본래성 등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철학도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프랑스 철학의 인식론을 중심으로 촘스키와 같은 언어철학자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젊은이로서, 우리 사회 진보에 대한 대안제시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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