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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박경희 작가 단상

어린 학생을 감옥에 보낸다고 문제가 해결되나

by anarchopists 2019. 11. 26.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1/04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독자 여러분, 새해에는 일을 냅시다]


무서운 아이들

대구 자살 중학생의 가해자, 그 아이들을 감옥에 오래 가둬 놓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일까?

내 아들이 질풍노도의 길을 걸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 공부는 물론 운동도 잘하고 리더십도 많아 학급 임원은 도맡아 하던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완전히 다른 아이가 되어 갔다. 공부보다는 밖에서 노는 시간이 더 많았고, 엄마인 내 말보다는 어울려 다니는 아이들의 말을 더 신뢰했다. 아침마다 학교 가기 싫다고 이불 속을 파고 드는 아들을 데리고 학교에 가 담임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게 나의 일이었다.

알고 보니 내 아들은 소위 말하는 노는 아이들에게 포섭(?)이 된 상태였다. 돌아 갈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는 아들을 보는 내 가슴은 피멍이 들어 갔다. 내 앞에서는 착한 눈빛을 보이다가도 아이들과 어울리는 곳을 찾아가면 성난 하이에나처럼 변해 있었다. 아들은 자기 패거리들 눈치를 보느라 새벽까지 잠도 못 자고 찾은 엄마의 손을 잡지 못했다. 패거리들은 무섭게 날 노려보았다. 그 때 나는 알았다. 집단으로 뭉치면 얼마나 무서운 아이들로 변하는지를 말이다.

급기야 나는 내 아들을 수렁에서 구하기 위해 패거리들의 부모님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렵게 부모님들의 전화번호를 알아 전화기를 돌렸다. 그들에게 돌아오는 답은 상상을 초월하는 말이었다.

“난 이미 그 자식 내 아들이라고 생각 안 해요. 그러니 쓸데없이 전화하지 마쇼.”

택시 운전을 한다는 K 아빠가 퉁명스럽게 한 마디 툭 던지고는 전화를 끊었다. 다른 아이 부모는 다르겠지라는 기대를 안고 또 전화를 했다. 패거리의 짱인 부모는 이혼하고 각기 재혼을 한 상태였다. 어머니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죄송하지만 재혼한 남편이 전 남편의 아들을 만나는 걸 꺼려요.”

아버지의 답은 더욱 기가 막혔다.

“내 아들 걱정 말고 당신 아들이나 잘 키우슈.” 였다.

12명의 아이들 부모 모두에게 전화를 마친 나는 망연자실 할 말을 잃었다. 한 마디로 부모들이 자신의 삶이 너무 힘들고 버거워서 아이들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거였다. 애가 타는 건 오직 나 하나였다.

이번에는 학교 선생님을 찾아 가 상담해 보았다. 선생님들은 이미 학교에서 낙인 찍힌 패거리에 내 아들이 들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를 벌레 보듯 홀대했다. 그 때 담임 선생 앞의 나는 아무런 존재감이 없었다. 단지 문제아의 엄마일 뿐이었다. 나에게 그토록 무례하게 구는 것을 보니 문제아인 내 아들에게는 오죽했을까, 싶었다.

“ 그 패거리에 한번 들어가면 평생 나오기 쉽지 않습니다. 부모가 아들 관리 못하는 걸 어떻게 학교에서 합니까. 아이들이 한 둘이어야지...”

선생은 양 손을 휘, 휘 내저을 뿐 아이들에 대해 눈곱만큼의 애정이나 관심이 없었다. 솔직히 말해 쓰레기통에 싹쓸이해 버리고 싶다는 식이었다. 선생님과 상담을 마치고 나오는데 왜 그리도 눈물이 나오던지. 내가 느낀 그 당시 내 아이의 담임은 단지 돈벌이를 위해 지식을 파는 강사에 불과했다. 솔직히 말해 학원 강사는 아이들 성적을 위해서라도 그 정도 무심하지는 않았다.

패거리들은 날이 갈수록 무서워졌다. 오토바이를 훔치는 것은 장난에 불과했고 집단 폭력 등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우리 가족은 결단이 필요했다. 나는 중학교 3학년인 아들의 손을 잡고 새로운 정착지를 찾기 위해 비행기를 탔다. 아이는 다행히 자기 본연의 모습을 찾아 열심히 공부해서 지금은 좋은 영화 만드는 일에 몰입하고 있다.
나는 요즘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을 보며 누구보다 가슴이 아프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나 역시 아들 일로 가슴앓이를 너무 많이 한 부모이기에.

가해자 학생들에게 형량을 높여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서 나는 혼자 쓴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그 아이들을 감옥에 오래 가둬 놓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일까. 나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만났던 부모들의 무심함과 선생님들의 무관심이 아이들을 병들게 했다는 것을 정녕 모르는 것일까.
그 아이들은 가해자나 피해자 모두 마음이 병든 상태다. 그 아이들을 진정 회복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 뿐이다. 진부한 말일 수 있지만 자신들이 사랑받는 존재라는 인식이 없는 한 아이들은 더욱 무섭게 변해 갈 수 밖에 없다. 이미 어린 나이에 문제아라고 낙인 찍혀 상처 받은 영혼들은 아무나 물고 뜯을 태세가 되어 있다. 그래서 아이들은 집단으로 뭉치면 성난 사자처럼 변하는 것이다.

이번 대구 중학생의 자살 사건을 보며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불쌍한 아이들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건, 그 모든 것이 어른들이 물려 준 아픔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살한 아이의 아픔을 우리는 절대 쉽게 잊어서는 안 된다. 이제 그 원인과 치료약을 찾아 나서야 한다. 또한 그 사건의 가해자인 아이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지금 저들을 부모가, 학교가, 사회가 버린다면 그 아이들은 영영 어두움의 그늘에서 독버섯처럼 살아갈 뿐이다. 싹이 노랗다고 손가락질을 하기 전, 오늘 그 아이들의 사악함에 거름을 준 존재가 누구인가에 대해 한번 쯤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2012.1.4., 박경희)

박경희 작가님은
2006년 한국프로듀서연합회 한국방송 라디오부문 작가상을 수상했다. 전에는 극동방송에서 "김혜자와 차 한잔을" 프로의 구성 작가로 18년 간 일하다 지금은 탈북대안학교 '하늘꿈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함석헌평화포럼의 필진이다.

작품으로는 《분홍벽돌집》(다른, 2009), 《이대로 감사합니다》(두란노, 2008), 《여자 나이 마흔으로 산다는 것은》(고려문화사, 2006), 《천국을 수놓은 작은 손수건》(평단문화사, 2004)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 본문 내용 중 사진 위는 네이버 이미지에서, 중간은 연합뉴스(2011.12.31)에서 따온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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