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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박경희 작가 단상

돌잔치=돈잔치? 참된 자식 사랑의 의미

by anarchopists 2019. 11. 21.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3/14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말로만 듣던 ‘돌잔치’가 ‘돈잔치’일 줄이야!

얼마 전에, 지인의 손자 돌잔치에 초대를 받았다. 돌잔치를 하는 장소가 시내에 있는 유명 호텔이었다. 왠지 마음이 편치는 않았지만 그래도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싶은 마음으로 초대에 응했다. 그런데 돌잔치가 준비된 룸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속이 울렁거렸다. 화려하게 꾸며진 실내 분위기와 각종 이벤트를 위한 설치로 어지러운 무대, 무슨 시상식에 온 듯한 화려한 옷차림을 한 손님들. 어느 것 하나 조촐한 돌잔치의 모습은 없었다.

잠시 후에 시작된 돌잔치는 기상천외한 일들로 가득 했다. 현란한 말솜씨를 자랑하는 사회자의 이벤트성 각종 놀이로 손님들의 정신을 뺐는가 하면, 드라마처럼 꾸며진 영상이 끝난 뒤 엄마 아빠의 화려한 옷맵시 자랑까지 이어졌다. 식이 끝난 뒤 먹는 음식 또한 가격이 만만치 않아 보였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서 맞는 첫 번째 생일은 정말 뜻 깊은 일일 것이다. 아픈 곳 없이 건강하게 자라 주위의 많은 사람들을 기쁘게 해준 보물 덩어리를 축복해 주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어느 샌가 돌잔치가 이상한 형태로 변질되고 말았다.

  그 날처럼 내가 들고 온 축하금 봉투가 옹색해 보인 적이 없다. 웬만한 결혼식보다 더 비용이 많이 들었음직한 대단한 돌잔치를 구경하고(?) 돌아오는 발길은 가볍지만은 않았다.

예전 우리 어머니들처럼 백설기에 건강을 기원하는 수수경단을 빚어 주는 것만이 아름다웠노라 말하는 건 아니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동안 말로만 듣던 ‘돌잔치’가 ‘돈잔치’ 인 현장을 직접 목격하고 나니,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요즘은 부모님 칠순 잔치는 간단하게 친한 사람들끼리 식사하는 걸로 끝이지만, 아이 첫 돌 잔치만은 남들 못지않게 해 줘야 기가 죽지 않는다.” 는 말이 현실인 듯싶었다.

  언제부터 우리 아이들이 상전이 되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고 보니 요즘은 아이들이 뱃속에 있을 때부터 시어머니가 이백 만원이 넘는 유모차를 사 주는 것이 관례처럼 되었다는 말도 낭설이 아닌 듯싶다. 그건 유모차가 아니라 뱃속의 아이에게 자가용 한 대를 사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유모차마저도 수입품이 아니면 시부모의 낯이 안 선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생각해보니 아이에 대한 부모의 지나친 사랑은 내가 아이를 키울 때도 마찬가지이긴 했다. 어쩌다 보니 아이가 교복을 입는 학교에 추천되어 들어가게 되었다. 그 결과 교육열 하면 대한민국에서 최고라는 학부형들을 만나게 되었다. 어쩌다 내 아이가 학급 임원이 되다보니 다른 엄마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의 불같은 자식 사랑을 목격하며 놀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아이의 생일 잔치였다.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을 초대해 놀이공원 자유이용권은 물론 코스 요리까지 먹이는 게 아닌가. 적어도 백만 원이 넘게 나온 음식 값과 놀이 비용을 보며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드높은 경제 능력임에 탓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그런 일이 어느 특권층만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건 착각이었다. 그 후로도 몇 몇 아이들이 비슷하게 생일잔치를 하는 것을 보며, 나는 내 아이를 그 자리에 보내지 않았다. 언젠가는 나도 그들을 대접해야 하는데, 그럴 생각이 없었다. 돈이 없다기보다는 마음이 없었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그 때 그토록 요란을 떨며 생일잔치를 한 아이들은 성인이 된 지금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까?

얼마 전에 신문 기사를 보니 거금을 들여 생일잔치를 하는 일은 아직도 여전한 것 같았다. 그렇게 자식을 상전처럼 떠받들어 돌잔치를 해 주고 생일잔치를 해 줘 봤자, 그들이 상전처럼 살아가는 세상도 아니다. 실제로 내 아이의 주변인들을 보아도 그렇다. 아무리 물질만능 시대라고 하지만, 스스로 자기 길을 개척해 나가지 않은 아이들은 엄마들의 극성에 명문 대학은 갔을지 몰라도, 그다지 빛나는 삶의 현장에 들어선 것 같지는 않다. 물론 일부는 승승장구 잘 나가고 있긴 하지만.

  흔히 말한다. 아무리 목마른 짐승일지라도 물가까지 고삐를 끌고 갈 수는 있지만, 물을 먹여 줄 수는 없다고.
자녀도 마찬가지다. 돈으로 남보다 조금 더 화려하게 돌잔치를 해 주고, 생일잔치에 기백만 원을 쓴 다해도 그 아이들에게 참된 가치관을 심어 주지 않으면, 그 아이의 인생은 헛되고 헛될 수밖에 없다.
  참된 자식 사랑은 무엇인가? 에 대한 깊은 성찰이 요구되는 시대이다.

*위 이미지는 인터넷 네이버에서 퍼온 것임.

박경희 작가님은
2006년 한국프로듀서연합회 한국방송 라디오부문 작가상을 수상했다. 전에는 극동방송에서 "김혜자와 차 한잔을" 프로의 구성 작가로 18년 간 일하다 지금은 탈북대안학교 '하늘꿈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함석헌평화포럼의 필진이다.

작품으로는 《분홍벽돌집》(다른, 2009), 《이대로 감사합니다》(두란노, 2008), 《여자 나이 마흔으로 산다는 것은》(고려문화사, 2006), 《천국을 수놓은 작은 손수건》(평단문화사, 2004)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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