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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 박사 칼럼

어리신 분은 얼의 끈이다!

by anarchopists 2019. 11. 18.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5/05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어리신 분은 얼의 끈이다!




  잘 알다시피 어린이는 ‘어리신 분’이라는 말에서 왔다고 한다. 존중받고 존대해야 할 귀한 존재임을 함축하는 말이겠다. 그렇다면 어린이는 어떤 끄는 힘이 있다는 말인데, 그것은 어른과의 관계 속에 있는 끈이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어리신 분에 의해 이끌려왔다. 그들이 힘이 있어서, 주목을 받아서,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약자(弱者)였기 때문이다.


  역사 속의 약자가 강자에게 짓밟히기만 했던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도 끊임없이 생명으로 일어나서 정신을 이끌었기에 뿌연 안개 속에서도 희망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끈이다. 역사의 끈이요, 생명의 끈이자 삶과 세계의 끈이다. 어른들은 그들의 끈으로 산다. 어른들은 그들의 눈빛으로 아직-오지-않은 세계를 향해 나아간다. 어른들은 그들의 맑은 언어 속에서 침묵과 웃음을 배운다.


  어리신 분들과 어른들은 아직-오지-않음과 지금-여기에-있음, 그리고 이미-와-있음의 끈 속에 끈끈한 관계를 가지고 살아간다. 한편 그렇기 때문에 이미-와-있음의 존재 지평을 통해 아직-오지-않음을 함께 살아야 할, 함께 향해 가야 할 어른은 어리신 분들을 끌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둘의 존재는 동일한 존재 지평에서 만나지만 이미-와-있음의 경험 지평에 속했던 어른들은 자신의 경험으로 어리신 분들을 묶는 것이 아니라 끌어야 할 지혜자가 되어 주어야 한다.


  이는 자신들의 경험 지평을 어리신 분들이 확장시켜서 주도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끌어가도록 만들어 주어야 한
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아직-오지-않음의 세계로 어른들은 끌어가는 존재, 자신들조차 다시 맑은 정신으로 이끌리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어른들 스스로 얼로서, 얼을 향해 어리신 분들이 끌리도록 이끌어주어야 한다. 지금-여기에-있음의 세계에서 교육은 획일화되어 학생들은 자신의 아직-오지-않음에 대해서 꿈과 희망을 갖고 살기보다는 지금-여기-있음의 세계 속의 관계적 타자들을 모두 적으로 간주하고 경쟁을 하려고만 한다. 따라서 교육은 황폐되고 학교는 폭력의 도가니에 휩싸여 헤어 나올 줄 모른다. 도덕과 윤리는 땅으로 떨어져 아직-오지-않음의 세계를 예측할 수 없을 정도다.


  어른들의 얼이 문제다. 어른들의 얼이 오염되고 바로 서 있지 못하니 어르신 분들의 얼이 온전할 수는 없다. 얼이 깨어있지 못하니 어르신 분들의 얼을 깨울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어른들의 얼은 물질에 중독되어 있다. 아니 얼빠진 사람들이 된 것이다. 얼을 쏙 빼놓고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어리신 분들에게 얼의 방향성, 참바탈의 발현을 유도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먼저 어리신 분들을 보고 어른들이 얼을 찾아야 한다. 오히려 그들에게서 얼의 가능성을 찾지 못한다면, 아직-오지-않음의 세계는 벼랑으로 끌려갈 것이다. 아직-오지-않음을 지금-여기-있음으로 끌어와야 할 에너지는 얼인데, 당장 그것이 없다면 그 세계 자신이 스스로 드러나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세계-내-존재인 인간이 세계가 자신을 드러내 주지 않는데, 인간 스스로 세계를 구현하고 의식의 얼개를 만들어 갈 수 없다. 세계를 끌어오기 위해서 얼의 끈을 찾아야 한다. 얼의 끈은 물질에 있지 않다. 명예나 권력에 있지도 않다. 더군다나 아직-오지-않음을 하나의 모험 세계로 인식하지 않는 어른들의 여유로움을 넘은 권태적인 삶의 노정에 있지도 않다. 그것은 지금-여기에-있음에서 힘겹게 비틀거리며 걷고 있는 참된 얼의 표상인 어리신 분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얼의 끈은 해맑은 어리신 분들에게 있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어른들은 돈, 명예, 권력, 지배, 경쟁, 물질 등의 전도된 가치를 심어줄 것이 아니라, 깊이 있는 어른들의 얼로서 얼을 전수해 주어서 어리신 분들의 아직-오지-않음의 세계를 밝게 밝혀주는 것, 그것을 사명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위 이미지는 인터넷 daum에서 퍼온 것임.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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