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4/27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 BCE 4-CE 65)는 히스파니아(Hispania)의 코르두바(Corduba, 오늘날의 Cordoba)에서 유복한 기사 가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수사학과 철학을 공부하면서 스토아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당대의 걸출한 웅변가와 문필가로 명성을 떨쳤다. 우리는 그의 철학적 사유를 통해서 부와 시간에 대한 여러 교훈들을 살펴볼 수가 있다. 우리 사회는 부에 대한 관심이 날로 증대되고 있는 반면에, 정말 부자가 되면 행복한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거의 없는 것이 안타깝다. 세네카는 사람들이 부에 대해서 자유롭지 못한 점을 비꼬면서 자신은 적어도 부의 노예는 아니라고 말한다. “부는 나에게서는 어떤 자리를 차지하지만, 그대에게서는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 나는 부의 주인이지만 그대는 부의 노예다.”
그렇다면 부에 대해서 우리가 초월할 수 있는 길은 전혀 없는 것일까? 아니 좀 더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일까? 세네카는 말한다. “부에 둘러싸여 있을 때 가난을 생각하시오.”라고. 더 나아가서 “절약이 없이는 어떤 재물이 와도 충분하지 않고, 절약하면 어떤 재물로도 충분하다. 검소하게 생활하면 가난 자체가 부로 변할 수 있다. 우리는 과시하기를 멀리하고, 사물을 장식적 가치보다는 쓸모에 따라 평가하는 버릇을 들이도록 해야 한다. 먹을 것은 허기를 달래게 하고, 마실 것은 갈증을 멎게 하고, 성욕은 필요한 곳으로 움직이게 해야 할 것이다.”라고 충고한다. 겸손, 절약, 검소, 허기를 달래는 식사라는 말은 근대적인 계몽 언어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 사회가 잊고 사는 실천적 삶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부 혹은 부자가 되기 위해서 그 목 좁은 길 뒤로 줄을 선다. 그 길로만 가겠다고 말이다. 그러나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가야 할 길이 아니라 사람들이 다니고 있는 길로 들어서서 가축 떼처럼 앞서가는 무리를 뒤따라가는 것이다. 게다가 소문을 믿고는 가장 박수를 많이 받는 것을 가장 좋은 것으로 여기고, 전례(前例)가 많다고 해서 이성에 따르지 않고 거기에 맞춰 사는 것만큼 우리를 큰 불행에 말려들게 하는 것은 없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 애를 쓰기에는 우리의 인생이 너무 허망하다. 세네카는 그것을 인생의 시간과 연관을 짓는다.
자연은 우리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어서 낭비하지 않도록 했는데, 우리가 지나치게 돈 버는 일에만 매달려서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는 늘 인생이 짧다고 말하고 있는 게 아니던가. “우리는 수명이 짧은 것이 아니라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인생은 충분히 길며, 잘 쓰기만 한다면 우리의 수명은 가장 큰 일을 해내기에도 넉넉하다... 짧은 수명을 받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수명을 짧게 만들었고, 수명을 넉넉히 타고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수명을 낭비하는 것이다... 자연은 선심을 썼는데, 인생은 제대로 쓸 줄만 알면 되니까 하는 말이다. 어떤 사람은 끝없는 탐욕에 사로잡혀 있고, 어떤 사람은 쓸데없는 일들에 줄곧 매달린다.”
그렇다면 돈을 위한 시간, 부를 위한 시간, 경쟁을 위한 시간, 소유를 위한 시간에서 한 발짝 물러서야 할 것이다. “현재의 시간은 매우 짧다. 너무나 짧아 어떤 사람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현재는 언제나 움직이고 급히 흘러가기 때문이다... 모든 분주함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사는 사람들의 인생은 당연히 길지 않겠는가?” 우리가 남의 보조 혹은 자본의 보조에 맞춰 경쟁과 폭력, 긴장과 갈등, 불행과 속임, 배신과 아픔 등의 삶을 사는 것은 결국 나의 템포가 아닌 타자에 의한 템포를 살고 있는 것이다. “분주한 자들은 하나같이 처지가 딱하지만, 그 중에서도 자기 일에 분주한 것이 아니라 남의 잠에 맞춰 자기 잠을 조절하고, 남의 걸음에 보조를 맞추고, 가장 자유스런 것인 사랑과 증오에서 남의 지시를 받은 자들의 처지가 가장 딱하다. 그들이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짧은지 알고 싶으면 인생에서 얼마나 적은 부분이 자신의 것인지 생각해보라고 하라.”
더불어 지금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나, 그 욕망하는 내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를 깨닫는 일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아무리 약한 타격에도 아무리 가벼운 진동에도 부서져버리는 취약한 그릇. 뿔뿔이 해체시키는 데 격렬한 폭풍 따위는 필요 없다. 어딘가에 부딪치기만 해도 분해되고 만다.” 혹 우리가 그렇게 됨으
로써 삶이 힘들 때, “신은 자신이 인정하고 사랑하는 자들을 단련시키고 시험하고 훈련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지나친 자기 합리화일까?
마지막으로 세네카는 우리에게 말한다. “철학을 위해 시간을 내는 사람들만이 여가를 즐긴다. 그들만이 살아 있다. 그들은 인생의 시간에 덧붙일 줄도 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철학을 해야만 하는 시간임에 분명하다. 삶에 대해서 철학을 하고, 시간에 대해서, 돈에 대해서 철학을 해야 한다. 그러한 사람만이 지금 여기에서 삶의 시간의 빼기와 더하기, 곱하기와 나누기를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위 이미지는 인터넷 daum에서 퍼온 것임.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부자가 되고 싶습니까? 가난을 생각하십시오!
그렇다면 부에 대해서 우리가 초월할 수 있는 길은 전혀 없는 것일까? 아니 좀 더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일까? 세네카는 말한다. “부에 둘러싸여 있을 때 가난을 생각하시오.”라고. 더 나아가서 “절약이 없이는 어떤 재물이 와도 충분하지 않고, 절약하면 어떤 재물로도 충분하다. 검소하게 생활하면 가난 자체가 부로 변할 수 있다. 우리는 과시하기를 멀리하고, 사물을 장식적 가치보다는 쓸모에 따라 평가하는 버릇을 들이도록 해야 한다. 먹을 것은 허기를 달래게 하고, 마실 것은 갈증을 멎게 하고, 성욕은 필요한 곳으로 움직이게 해야 할 것이다.”라고 충고한다. 겸손, 절약, 검소, 허기를 달래는 식사라는 말은 근대적인 계몽 언어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 사회가 잊고 사는 실천적 삶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부 혹은 부자가 되기 위해서 그 목 좁은 길 뒤로 줄을 선다. 그 길로만 가겠다고 말이다. 그러나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가야 할 길이 아니라 사람들이 다니고 있는 길로 들어서서 가축 떼처럼 앞서가는 무리를 뒤따라가는 것이다. 게다가 소문을 믿고는 가장 박수를 많이 받는 것을 가장 좋은 것으로 여기고, 전례(前例)가 많다고 해서 이성에 따르지 않고 거기에 맞춰 사는 것만큼 우리를 큰 불행에 말려들게 하는 것은 없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 애를 쓰기에는 우리의 인생이 너무 허망하다. 세네카는 그것을 인생의 시간과 연관을 짓는다.
그렇다면 돈을 위한 시간, 부를 위한 시간, 경쟁을 위한 시간, 소유를 위한 시간에서 한 발짝 물러서야 할 것이다. “현재의 시간은 매우 짧다. 너무나 짧아 어떤 사람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현재는 언제나 움직이고 급히 흘러가기 때문이다... 모든 분주함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사는 사람들의 인생은 당연히 길지 않겠는가?” 우리가 남의 보조 혹은 자본의 보조에 맞춰 경쟁과 폭력, 긴장과 갈등, 불행과 속임, 배신과 아픔 등의 삶을 사는 것은 결국 나의 템포가 아닌 타자에 의한 템포를 살고 있는 것이다. “분주한 자들은 하나같이 처지가 딱하지만, 그 중에서도 자기 일에 분주한 것이 아니라 남의 잠에 맞춰 자기 잠을 조절하고, 남의 걸음에 보조를 맞추고, 가장 자유스런 것인 사랑과 증오에서 남의 지시를 받은 자들의 처지가 가장 딱하다. 그들이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짧은지 알고 싶으면 인생에서 얼마나 적은 부분이 자신의 것인지 생각해보라고 하라.”
더불어 지금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나, 그 욕망하는 내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를 깨닫는 일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아무리 약한 타격에도 아무리 가벼운 진동에도 부서져버리는 취약한 그릇. 뿔뿔이 해체시키는 데 격렬한 폭풍 따위는 필요 없다. 어딘가에 부딪치기만 해도 분해되고 만다.” 혹 우리가 그렇게 됨으
마지막으로 세네카는 우리에게 말한다. “철학을 위해 시간을 내는 사람들만이 여가를 즐긴다. 그들만이 살아 있다. 그들은 인생의 시간에 덧붙일 줄도 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철학을 해야만 하는 시간임에 분명하다. 삶에 대해서 철학을 하고, 시간에 대해서, 돈에 대해서 철학을 해야 한다. 그러한 사람만이 지금 여기에서 삶의 시간의 빼기와 더하기, 곱하기와 나누기를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위 이미지는 인터넷 daum에서 퍼온 것임.
김대식 선생님은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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