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 박사 칼럼

다문화를 뒤틀지 말고 허하라!

by anarchopists 2019. 11. 19.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4/21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다문화를 뒤틀지 말고 허하라!



“큰 지혜를 지닌 사람은 여유가 있지만 작은 지혜를 지닌 사람은 남의 눈치만 본다. 위대한 말은 담담하고 너절한 말은 수다스럽기만 하다.”(大知閑閑, 小知閒閒, 大言炎炎, 小言詹詹.)
-莊子


  아마도 우리 민족은 같은 핏줄을 타고난 동포가 해외에서 잘 나가는 위치에 서게 되고 세계 언론에 주목을 받게 되면 박수를 보내싶고 괜히 어깨가 으쓱해지는가 보다. 보상심리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왜소한 국가에서 사는 우리 국민의 속성인지는 몰라도 선진국에 대한 엘리트 콤플렉스도 작용을 하는 것 같다. 한국 사람이 아닌 듯이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한 유명한 대학의 총장으로서 뿐만 아니라 이제는 세계은행의 총재가 된다는 사람, 그에 비해 한 동남아 국가에서 대학 공부를 하고 한국으로 시집와서 어엿한 대한민국 국민이 된 그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 필리핀 여성. 한 사람은 재미동포 김용이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이번에 새누리당 비례의원으로 선출된 이자스민이다.


  이 둘의 공통점은 자신의 본국에서보다 현재 살고 있는 국가에서 훨씬 많은 이목을 받고 있다는 것이고, 게다가 이제는 본국이 아니라 지금 살고 있는 국가의 시민이라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미국에서 성공적인 출세길을 달리고 있는 김용에 대해서는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반면에 이자스민에게는 안타깝게도 외국인혐오증(Xenophobia)으로 인한 인격적 폄하가 끊이질 않고 있다. 우리 사회가 이미 다문화 사회로 접어들었다고 말들을 하건만 타인에 대해서 환대하지 못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연유일까? 다문화(多文化)에서 ‘다’(多)는 단순히 많다거나 다양하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다’는 다름이 있지만 다 같은 한 민족이라는 동질성을 내포하는 개념이다. 설령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 정체성이 인간성이나 인격을 대변하는 것이 아님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선진국에 대한 우월의식, 백인 선망의식 같은 것들이 공존하면서 피부색이 다른 민족에 대해서는 인종차별적 태도를 서슴지 않는다.


  그렇다면 앞으로 ‘다’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한국 내에 문화적 다양성, 민족적 다양성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면, 진지하게 ‘다’에 대한 존재와 이해를 달리 하지 않는 이상 타문화, 다문화적 현실을 타개해 나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다’는 포개어짐이다. 여러 개가 중첩되어 하나가 되는 현존재적 성격을 띠고 있다. ‘다’에는 특별한 시공간이 있는 장소이다. ‘다’는 거기에-있음이라는 존재 의미를 드러낸다. ‘다’는 다른 어떤 말보다도 우선성을 점유한다. 그러므로 ‘다’를 인식하고 인정해야 그 다음의 언어와 행위가 가능한 것이다.


  지금의 우리나라와 같은 ‘다’의 사태를 미리 내다 본 사람이 있었다.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인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이다. 그는 “본국인이 기피하는 업종에서 기꺼이 일해 줄 노동력을 수입”할 수밖에 없고 “값싼 노동력의 부족으로 자국민이 제공할 수 없는 용역에 대한 수요는 계속 있을 것이기 때문에, 제3세계에서 제1세계의 인구 이동은 피할 수 없는 결과”라고 보았다(에릭 홉스봄, 안토니오 폴리토, 강주헌 옮김, 새로운 세기와의 대화, 끌리오, 2000, 184-185쪽).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우리에게도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던 때가 있었음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우리 앞에 나타나 있는 존재를 부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최소한 그들이 이제 이 사회의 뼈아픈 고통과 여러 난관 속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적어도 이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사람이라면 영원한 이방인은 없다. 몸이 낯설다 하여서 그들의 정신세계마저 혐오스러움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땅에서 풀 한 포기, 돌 하나라도 소중하지 않은 것
이 없듯이, 이성을 가진 존재의 삶과 행위는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
자본은 이미 세계 자본이요, 정치는 세계 정치가 되었다. 이 지구사회 전체의 유익을 위하여, 공공선을 위하여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어느 누구도 손가락질 받아서는 안 되며, 차별 받아서도 안 될 것이다. 에릭 홉스봄은 “대부분의 이민자가 제3세계 출신이라는 사실에서 인종 차별은 피할 수 없다... 다른 용모와 다른 피부색을 가진 사람은 인정받기가 훨씬 어렵다”(에릭 홉스봄, 안토니오 폴리토, 강주헌 옮김, 새로운 세기와의 대화, 끌리오, 2000, 186쪽)라고 인종차별문제에 대해서 진단을 내린 적이 있다. 하지만 결코 이 사회가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인종차별주의) 만큼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위의 이미지는 인터넷 daum에서 퍼온 것임.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