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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취래원 농사 칼럼

어느 초상집의 유감, 문상객=돈이 되는 세상

by anarchopists 2019. 12. 12.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10/07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어느 초상집의 유감,
문상객=돈이 되는 세상

예법은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지켜내야 하는 인간의 도리(사회윤리, 사회질서)를 말한다. 따라서 이 예법에 어긋난 행동을 하면 “무례하다”, “짐승만도 못하다”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이 말은 조선후기 성리학자들이 “인간사회는 오륜오상(五倫五常)이 존재하는 사회이고, 오륜오상이 없는 사회를 인간이전의 상태, 즉 금수의 사회”로 규정한 데서 유례 하였다. 오륜오상의 각론으로 나온 윤리 중 하나가 관혼상제(冠婚喪祭)이다. 관혼상제 중에서도 상장제례는 우리 인간 삶의 마지막과정을 장식하는 절차다. 따라서 살아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에 대해 지켜야 하는 인간의 도리를 규정한 항목이다. 사람의 죽음은 그가 일생동안 함께 살아온 가족ㆍ친척ㆍ친지들과 영원한 작별을 고함이다. 그래서 죽음은 참으로 슬프고 마음 아픈 일이다.

상례는 이러한 슬픈 감정을 질서 있게 표현하면서 마지막 이별의 예를 다하여 치르는 절차이다. 때문에 예가 너무 소홀하거나 지나쳐도 안 된다. 형편과 사정에 따라 진심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관혼상제 중에서도 상례가 우리의 생활 속에서 가장 엄숙하고 정중하며 그 절차가 까다롭고 말이 많은 게 이 때문이다. 이처럼 까다롭고 엄격하였기에 옛 법에서도 "예를 다하여 장례를 지내되 지나친 공경은 예의가 아니다." 라고 하였다. 때문에 형편에 따라 허례허식에 결코 기울지 말아야 하는 예법 중 하나다. 그리고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변한 만큼 장례절차도 우리 생활감정과 일치되어야 한다. 그런데 요즈음 너무 해괴한 상례모습들이 주변에서 종종 목격된다. 즉 상례가 죽은 이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산자의 과시와 부의 축적에 이용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일반적으로 죽은 사람이 발생하면 살아남은 가족들은 죽은 사람에 대한 애도의 표시로 장례를 치루고 제례를 드린다. 요즈음 이 애도기간은 일반적으로 사흘장(3일장)이다. 유교윤리가 사회질서를 지배하고 있을 때는 5일장이었다. 그리고 부유층은 9일장, 사대부는 25일장, 왕의 경우는 때에 따라 5개월장을 치루기도 하였다. 이러한 관습이 근대화 이후 서양의 그리스도윤리가 우리 사회에 스며들면서 우리의 전통윤리와 접목하여 많은 변화를 격고 있다. 이 탓에 요즈음의 장례기간은 3일장으로 일반화되었다. 이 3일은 그리스도교교리에서 나온 숫자이다.

즉, 그리스도교의 기도문(사도신경)에 의하면 예수가 죽은 후 “3일만에 부활하여 하늘에 올라 하느님 우편에 앉아”라는 말이 있다. 그러니까 이 3일은 사람이 죽어 저승에 갔다가 돌아오는(부활) 시간을 말한다. 그래서 한국인 행운의 수인 3과 그리스도교의 부활기간인 3이 서로 맞아떨어졌다. 이러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을 때 1969년 《가정의례준칙》이 발표되었다. 이에서 한국의 장례기간은 5일장에서 3일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 3일장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매우 합리적인 장례기간이다. 유교윤리가 지배하고 자연시간을 생활시간으로 가지고 있던 농업사회에서는 5일장은 그다지 살아있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번거로움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도덕의 황금률’이 되고 있는 현대 산업사회에서 5일장은 살아있는 사람들(가족과 조문객) 모두에게 누를 끼친다.

그런데 최근에 일부 권력층과 부유층에서 이러한 사회적 공감대를 무시하고 ‘신분의 과시’와 ‘시신을 매개로 한 부의 축적’을 목적으로 4일장과 5일장을 의도적으로 늘려 추진하는 추태가 곳곳에서 행해지고 있다는 풍문도 있고 경험도 했다.
얼마 전 일이다. 아는 집에 초상이 났다. 그 집은 세칭 부유한 집이다. 그런데 4일장을 치른다고 한다. 그 이유는 그 집 망자의 죽은 날이 목요일 밤이었다. 3일장으로 할 경우 토요일 아침이 발인이 된다. 이렇게 되면 금요일 하루밖에 조문객을 받을 수 없다고 효성스런 망자의 형제자매들은 판단하였다. 또 이들 산자들은 “망자가 사망한 병원이 교통이 불편하고 외진 곳에 위치해 있으므로 조문객이 오기가 불편하다. 교통이 편리한 장례식장으로 시신을 옮기자”, “장례기간도 일요일까지 연장하여 조문객을 더 받도록 하자.”라고 결정하였다. 이것은 언뜻 보면 “자식된 도리로서 망자의 죽음을 슬프게 생각한다.” 그리고 “망자를 애도하는 사람들에게 조문할 시간을 충분히 주자.”는 효성스런 생각으로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실제는 결코 망자를 위한 것이 아님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서울 변두리에서 번화가의 화려한 장례식장으로 정한 것은 산자들의 신분과시요, 부의 과시였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많은 조문객을 받아서 부조금을 챙기자는 속셈이 깔려 있었다. 이는 그곳을 찾아온 문상객들이 어디서 들었는지 “예의에도 어긋나게 일요일까지 연장하면서 4일장을 정한 것은 부조금을 많이 걷자는 의도였데, 돈 많은 자식들이 더 무서워” 하면서 못마땅해 하는 문상객들의 소곤거림이 곳곳에서 들려왔다. 참으로 착잡한 심정이다. 안면 때문에, 직장의 동료이기 때문에, 직장의 상사이기 때문에 할 수없이 문상을 오는 조문객의 불편은 아랑곳 하지 않는다. ‘자기목적’(부조금 받는)에만 충실한 오늘날의 부패한 세태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옛사람들이 초상났을 때 망자의 덕을 기리기 위하여 장례기간 동안 자신의 재산으로 망자를 위한 음식을 장만하여 마을 사람들을 대접하면서 “망자를 위로해 달라”고 선심을 쓰던 미풍은 어디로 가고 장례식이 ‘시신을 매개로 한 돈벌이’가 되었는지 한탄스럽다. 이 모든 것이 자본주의가 비인간화시킨 탓이려니. (2005. 3.5 아침, 2011.10.7. 다시 싣다.)

취래원농사는
황보윤식(皇甫允植, 醉來苑農士)
학생시절부터 민족/통일운동을 하였다. 동시에 사회개혁에도 관심을 갖고 생명운동을 하였다. 나이 60을 넘기자 바람으로, 도시생활을 과감히 접고 소백산(영주) 산간에 들어와(2010) 농업에 종사하면서 글방(書堂, 반딧불이서당)을 열고 있다. “국가보안법폐지를위한시민모임”, "함석헌학회" “함석헌평화포럼”, “함석헌평화연구소”에도 관여를 하고 있다. 글로는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2017) 등 다수의 글이 있다.(수정 2018. 10.3) /함석헌평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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