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함석헌평화연구소/취래원 농사 칼럼

4343주년 개천절을 맞아, 자유와 자유주의를 바로 알자

by anarchopists 2019. 12. 12.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10/03 07:35]에 발행한 글입니다.


4343주년 개천절을 맞아,
'자유'와 '자유주의'를 바로 알자.

지금 MB정권의 교과부에서 이제까지의 ‘참 역사교과서’를 ‘거짓 역사교과서’로 고치려 한다. 이 과정에서 ‘민주주의’ 용어와 ‘자유민주주의’ 용어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어처구니없는 짓거리다. ‘자유’라는 개념이 엉터리 개념으로 바뀌려는 순간이다. 왜 그리하려 하는가. 민주주의라는 용어에 꼭 자유를 붙여야 하는가. 아마도 저들은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꿔야 ‘참 교과서’가 ‘거짓교과서’가 된 다는 것을 알고 있나보다. 그래서 오늘은 자유와 지유주의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한다.

역사적으로 이 나라에 미국, 친미·친일권력 그리고 군부독재·부패세력에 의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강제되어왔다. 때문에 한반도 남쪽의 정치인들은 물론 일반사람들조차 민주주의는 고사하고 ‘자유’와 ‘자유주의’의 개념에 대하여서는 막연하게 알고 있으리라 본다.

자유주의는 근대 이후 유럽에서 발생하였다. 특히 18세기 프랑스혁명 이후에 두드러진다. 이 당시 나온 자유주의의 참뜻은 부르주아 계급과 남성만의 경제적 이익을 위한 이념이었다. 당시 이들은 자신들 "개인의 재산과 생명을 위협하는 절대 권력과 종교적 권위에 대해 저항"하였다. 그러니까 당시 남성 중심 부르주아 계급들이 정치적 절대 권력으로부터 자신의 재산을 지키고 자본적 이익을 창출해 내려는 생각이 자유라는 개념으로 등장하였다. 이 자유라는 이름으로 당시 경제적 이익을 독점하고 있는 소수의 독점 권력과 이를 옹호하고 있는 이념, 곧 가톨릭의 종교윤리를 타파하였다.

절대 권력과 종교 세력을 무너트린 이들 세력을 시민이라 한다. 그리고 이들이 갖는 이념을 ‘자유주의’라 한다. 그러니까 다수의 시민이익을 창출해 내기 위하여 소수의 독점 권력과 이념의 권위에 과감히 저항한 이데올로기 즉 혁명적 사고를 '자유주의'라 하고 또 이를 실천에 옮기는 행동을 '자유'라고 한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세계의 독점 권력인 미국에 아유하는 외세의존적 정치권력들에 의하여 자유주의가 정치적으로 강제되었기 때문에 자유의 정신과 그 이념이 전혀 왜곡되어왔다.

오늘날 MB권력에 속하는 관료들은 유럽의 봉건적 절대권력시대 부르주아 계급의 자유와 자유주의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집단이다. 따라서 이들이 ‘자유’라는 말을 민주주의 앞에 붙이려 하는 것은 그들만의 이익창출 행위를 의미한다. 곧 자유의 개념을 왜곡시켰다. ‘자유=이익창출=반공=친미’의 의미이다. ‘자유=해방=평등과 정의=세계민족평화’의 의미가 아니다.

오래 전 이야기를 하나 꺼내자. 동국대학교에서 양심적이고 정의로운 강정구 교수의 ‘직위해제’ 결정을 위해 이사회가 열린 적이 있었다.(2006. 2. 8) 이에 양심적이고 사회정의적인 학생들의 항의집회가 준비되고 있었다. 그러자 극우 보수단체인 <자유개척청년단>이 이른바 '자유주의' 옹호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에게 폭력을 휘둘렸다. 이 자유개척청년단이라는 단체가 무슨 단체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들은 분명 자유주의를 공산주의의 반대개념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무식의 소치이다. 그러니까 벌건 대낮에 학교에서 폭력을 휘두르고 있는 게 아닌가, 이게 테러가 아니고 무엇인가. 곧, 이들은 ‘반공을 위한 테러=자유’로 이해하고 있는 집단이었다.

오늘날 미국은 '자유주의', '인권', '민주주의' 수호라는 이름으로 미국을 반대하는 나라를 침략하고 미국을 반대하는 인민을 향해 테러를 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무지한 수구·보수세력들은 이 같은 미국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는 테러·폭력·전쟁을 ‘자유주의’로 알고 있다. 그래서 미국의 이익창출을 위해 강제된 정치적·경제적 약자에 몰려 있는 많은 나라들이 그들 인민의 생존과 평화를 위하여 미국에 저항하는 것을 테러ㆍ폭력으로 알고 있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폭력적 국가주의’의 상징적 나라다. 그리고 경제적 이익을 독점하는 다국적기업의 중심부를 이루고 있다. 미국의 자유주의자는 바로 이들 다국적기업을 통해 자본을 착취하는 자들을 말한다. 이들 미국의 자유주의자들은 경제적 독점을 위해 세계 곳곳에 전쟁을 일으키고,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미국의 말을 듣지 않는 나라에 대하여 야민적인 경제제재조치를 취한다. 바로 이것을 그들은 ‘자유주의’ 수호라고 한다. 이렇듯 미국은 그들의 자본적 이익창출을 위해 폭력과 테러행위를 ‘자유’로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나라들이 그들 인민의 자유(행복과 평화)를 위해 미국에 대항하면, 그것을 테러요, 폭력이라고 왜곡·세뇌시키고 있다.

이 나라의 무지한 수구세력들은 자유의 개념을 미국식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민주주의’ 개념에 미국식 폭력과 테러,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반공의 의미를 담는 ‘자유’의 개념을 덧붙이고 싶어 한다. 그래서 이 나라의 수구·보수 세력은 진정으로 자유를 부르짖으며 “국가보안법 폐지”, “민족통일”, “강정마을 해군기지 설치 반대”를 주장하면 ‘자유주의’에 대한 폭력으로 이해한다. 진정한 자유주의는 세계 경제이익을 신자유주의와 ‘자유무역’의 이름으로 자본이익을 독점하고 있는 미국의 독재에 대한 저항뿐인데도 말이다. 미국은 더 나아가 자본의 이익창출을 문화를 통해 행하고 있다. 그래서 세계 영화를 독점하고 있다. 이 할리우드 영화를 통하여 미국의 정신을 세계지배이념으로 삼으려 한다. 미국 영화의 문화적 권위에 저항하고 투쟁하는 게 바로 자유정신이다.

4343주년 개천절을 맞아, 단군의 통곡소리가 지하에서 지축을 흔들며 들려온다. 저 통곡소리가 들어보라. “민족의 주체성을 살려라, 민족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이루라, 참 자유를 위해 다국적 독점자본주의에 저항하라” (2006. 2. 8 초안, 2011. 10.3 수정, 취래원농부)

취래원농사는
황보윤식(皇甫允植, 醉來苑農士)
학생시절부터 민족/통일운동을 하였다. 동시에 사회개혁에도 관심을 갖고 생명운동을 하였다. 나이 60을 넘기자 바람으로, 도시생활을 과감히 접고 소백산(영주) 산간에 들어와(2010) 농업에 종사하면서 글방(書堂, 반딧불이서당)을 열고 있다. “국가보안법폐지를위한시민모임”, "함석헌학회" “함석헌평화포럼”, “함석헌평화연구소”에도 관여를 하고 있다. 글로는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2017) 등 다수의 글이 있다.(수정 2018. 10.3) /함석헌평화연구소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