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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박병상 박사 환경칼럼

봄이 와도 봄을 찾지 못하는 동물들

by anarchopists 2019. 12. 23.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5/10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봄이 와도 봄을 찾지 못하는 동물들

3월 꽃샘추위가 심술을 멈출 때 인적이 드문 근린공원에서 오전 햇살을 즐기려는데,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관목 숲에서 딱새 수컷 한 마리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다. 고개를 돌리니 딱새뿐이 아니다. 노랑턱멧새, 곤줄박이도 햇살을 만끽하고 있다. 잔설마저 녹아내린 양지바른 산록에서 한해살이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나 보다. 머지않아 관목 맨 꼭대기에서 다른 수컷의 접근을 온몸으로 막으며 교교하게 울어대겠지. 바야흐로 봄이 왔다. 내일을 기약하는 삼라만상의 생명들이 기지개를 펴리라.

올 겨울은 참으로 유난했다. 지구온난화의 역설이 삼한사온을 몰아내더니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가는 맹추위가 근 한 달이나 지속되지 않았나. 겨울이면 하얀 얼음으로 뒤덮여야 할 북극해가 얼지 않으니 햇볕에 증발량이 늘었고, 북극의 한파를 가두던 제트기류가 헐거워지자 그 아래 위도인 시베리아에 눈이 쌓이게 했다. 그 여파로 우리나라에 맹추위가 왔다고 주장한 기상 전문가는 지난 2월의 ‘눈폭탄’을 설명했다. 엘니뇨에 이은 라니냐가 고온다습한 북태평양고기압을 우리나라에 밀어내자 차가운 시베리아 기단과 백두대간 동쪽에서 부딪혔다는 건데, 지구온난화에 이은 기상이변이 원인이라는 분석이었다.

1미터 이상 내린 눈이 먹이를 찾지 못하는 백두대간의 동물들을 빈사상태로 몰아넣을 즈음, 해외 언론은 북극곰이 수백 킬로미터나 헤엄치는 게 목격되었다고 전했다. 북극해 빙원의 틈새에 가끔 머리를 내밀고 숨 쉬러 올라오는 물개를 잡아먹는 북극곰에게 얼지 않는 북극해는 멸종을 예고한다. 동면할 때 태어난 두 마리의 새끼들을 도저히 먹여살릴 수 없지 않은가. 지구온난화가 변하게 만든 자신의 오랜 터전에서 많은 생물종들이 시방 멸종위기를 맞고 있다. 터전을 떠날 수 없는 생물에게 바뀐 환경은 치명적인데, 우리 산하의 동물들은 요즘 잘 버티고 있을까.

1998년 3월 중순, 경상북도의 한 저수지에서 두꺼비들이 죽은 황소개구리를 뒤에서 끌어안고 있는 모습이 관찰되어 언론에 회자된 적 있다. 당시는 고유 생태계를 교란하는 황소개구리 퇴치에 골머리 않던 시절인 만큼 두꺼비가 황소개구리의 천적이라며 환호했지만, 기대와 달리 지구온난화가 일으킨 일회성 현상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개나리와 진달래와 목련이 한꺼번에 꽃잎을 편 그해, 짧은 겨울이 지나자마자 스치듯 다가온 봄은 이내 이른 여름처럼 무더웠다. 살얼음이 남았을 때 알을 낳는 두꺼비도 꽤 혼란스러웠을 날씨였다.

황소개구리는 3월 초순에 낳은 두꺼비 알이 올챙이에서 작은 성체로 모두 변태하고 떠난 5월 중순 이후 연못에 나타나는데 그해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봄부터 유난스레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자 때 이르게 연못으로 나온 황소개구리는 그만 번식을 위해 나온 두꺼비를 만난 것이다. 자신보다 덩치가 큰 암컷의 등에 올라 앞발의 엄지로 배를 꾹 누르며 끌어안는 번식 행동을 가진 두꺼비 수컷은 황소개구리의 등에서 엉뚱한 배를 눌렀던 건데, 황소개구리는 익숙하지 않은 두꺼비 피부 독이 몸에 퍼지자 그만 죽어버렸고, 그 장면을 본 낚시꾼의 제보로 두꺼비가 황소개구리의 천적으로 잠시 등극한 것인데, 천적이라. 자신의 유전자를 낭비한 두꺼비도 원치 않은 오해일 뿐이었다.

지구온난화를 부른 인간의 탐욕스런 개발은 동물들의 번식지를 크게 위축시켰다.
4월 초에 알을 낳는 참개구리는 주로 물이 고인 논 가장자리를 찾고 5월 말에 알을 낳는 금개구리는 연못을 고집하건만 집요한 아파트단지 개발로 논과 논 가장자리의 웅덩이가 거듭 메워지면서 1980년대 중순 광주 변두리의 논에서 참개구리와 금개구리 사이에 잡종이 발생했다. 그 때에도 봄이 무더웠다. 번식시기가 달라 알을 낳을 때 만날 기회가 없을 뿐 아니라 번식행동에 차이가 커서 만난다 해도 짝짓기가 일어날 가능성은 여간해서 없건만, 잡종이 나타난 건 번식지의 위축 때문이었다. 지구온난화에 이은 기상이변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기만 하는데, 올봄은 어떨지.

1월의 추위가 2월에 누그러들다 꽃샘추위가 봄을 재촉하는 우리나라의 3월은 서해안의 갯벌마다 주꾸미 잡이로 어민들을 바쁘게 만든다. 가는 밧줄에 100개의 빈 소라를 묶어 바닥에 내려놓으면 알을 낳으려 낮은 바다로 다가오던 주꾸미들은 한 마리 씩 빈 소라로 들어가게 되고, 어부들은 밧줄을 끌어올려 주꾸미를 빼낸다. 그래서 주꾸미는 ‘소라방’으로 잡는다고 하는데, 바다가 차가운 올해는 영 신통치 않다고 한다. 겨울바다가 유난히 추웠기 때문이라는데, 지구온난화로 육지보다 먼저 아열대화된 우리 바다가 올봄에 변고를 맞은 것인가. 알 낳고 깊은 바다로 되돌아가는 5월이면 주꾸미는 질겨진다는데, 올 우리 서해안의 주꾸미는 알을 낳지 않을 셈인가.

도요새가 날아와야 봄을 느끼는 뉴질랜드의 마오리족은 우리나라 정부에 제발 갯벌을 보전해달라고 호소한다고 한다.
노고지리가 울어야 쟁기를 매고 논밭에 나갔던 우리 조상처럼, 그들은 도요새를 만나야 비로소 화가는 화구를 챙기고 시인을 시상에 잠기며 농부는 농구를 들고 들로 나간다는 건데, 근래부터 도요새가 통 보이지 않아 봄이 와도 봄을 느끼지 못한다는 게 아닌가. 최근 상승한 기온이 지구 평균보다 배나 높은 우리나라에 혹한이 지나가자 면역이 약해진 많은 노인들이 생을 접었다. 노곤해진 자신의 생명을 잉태된 후손에게 건강하게 물려주는 건데, 해를 거듭할수록 강력해지는 지구온난화의 경고를 귀담아듣지 않는 인간은 어떤 내일을 준비하는 것일까.

자전축이 23.5도 기운 지구가 하루에 한 차례 자전하고 1년에 한 번 태양을 공전하는 한, 봄철에 쏟아지는 태양빛은 겨울보다 따사로울 수밖에 없다. 시베리아 기단이 아무리 심술을 부려도 양지바른 곳에 나가면 따사로움을 느낀다. 이럴 때 삼라만상의 동물들은 번식을 준비한다. 먹이가 충분할 때 새끼들을 낳으려면 때를 놓치면 안 된다. 작년에 쓴 둥지를 고치는 까치는 벌써부터 짝을 찾아 나섰고 선명해진 깃털로 갈아입은 딱새와 노랑턱멧새도 곧 봄을 만끽할 것이다. 개나리도 진달래도 꽃봉오리를 펼치지 않았으니 생명의 축제는 잠시 후 펼쳐질 텐데, 허둥대며 찾아오는 요사이 계절이 걱정이다. 이른 봄부터 에어컨 광고가 과열인 인간의 봄은 무탈한 한해를 약속해줄 것인가.(2011. 5.9, 박병상, 내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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