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함석헌평화연구소/취래원 농사 칼럼

설날 아침, 안녕 못하십니까

by anarchopists 2019. 11. 1.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4/01/31 06:40]에 발행한 글입니다.


설날 아침,
안녕 못하십니까

2014년 1월 31일은 4347년 1월 1일 설 명절이다. 2014년이란 말은 서양의 산업사회 문화유산이고, 4347년 1월 1일이라는 말은 전통적인 농업문명의 유산을 말한다. 그러니까 서양에는 없는 농업사회의 전통문화인 설날과 추석(한가위)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에는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설날과 추석은 서양의 산업사회가 지배하기 전 농업사회를 이루고 있던 한국의 전통문화이다.

설날은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역법(曆法)에서 한 간지(干支)가 끝나고 새 간지가 시작되는 날을 말한다. 곧 '설'은 새로 시작한다는 뜻이다. 그와 함께 '설다'(익지 않았다), '낯설다', '삼가다' 등의 의미도 지닌다. 설날과 함께 추석(한가위)도 있다. 이 두 날을 농경사회에서는 큰 명절(名節; 佳節, 조상을 기리는 신성한 날)로 삼았다. 특히 설날은 농경사회에서 네 계절 중 겨울을 마치고 봄을 맞이하면서 한해 농사를 준비하는 첫날로 중요한 날로 여겼다. 이 첫날에 새로운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의미가 조상님들로부터 ‘농사지혜’와 ‘풍년음덕’을 받아 한 해 농사가 잘 되기를 바라는 특별한 날이 되면서 세시풍속으로 발전하였다. 그래서 설날은 조상을 기리는 날이다. 추석도 이와 같은 의미다. 곧, 조상들에게 감사하는 날이다. 그래서 설날과 한가위는 조상을 기리는 날로 농경사회에서 중요시 했던 날이다.

그러나 설날이니 추석이니 하는 명절은 오늘날 산업사회의 발달과 함께 도시문화가 중심을 이루고 있는 이 시대에는 맞지 않는 게 사실이다. 다만 명절이라는 명분으로 휴가를 얻는 기분 좋은 날일뿐이다. 시대의 흐름을 외면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인류의 문화유산의 계승이라는 측면에서 지구의 각 지역에서 이루어진 전통문화는 보전할 가치가 있다. 그리고 문화의 전통을 이어갈 우리 한겨레의 책무도 있다. 토종종자를 보전해야 할 책무처럼.

그런데 이 설날이 우리나라에서는 한민족이 겪어 온 것처럼 수난을 당하며 존재해 왔다. 지난 날 이 나라는,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침탈을 받고 그들의 식민지로 지낸 적이 있다. 그리고 해방조국에서도 자신을 이 나라의 왕으로 착각하며 봉건적 독재권력을 휘둘렀던 파쇼가 있었다. 곧 박정희다. 이 두 파쇼들은 이 나라 사람들의 생활정서까지 강제하였다. 여기서 나온 탄압정책이 양력설이다. 양력설은 일제(일본제국주의)가 우리 민족에게 전통문화 파괴 일환으로 강요했던 통치행위였다. 뒤에, 일제가 패망하고 이 땅에서 쫓겨 가자 우리 민족은 재빨리 우리의 명절, 설날을 되찾아 지냈다. 민족의 정서다. 민족의 생활정서가 어디 가나. 그런데 해방조국에서까지 친일장교였던 박정희[岡本 實]가 쿠데타로 권력을 움켜쥐고는 일제의 통치행위를 그대로 답습하여 다시 양력설을 쇠라고 강제하였다. 여기서 신정(新正-설의 개념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는 뜻의)이라는 말이 유행하게 되었고 우리의 전통 명절 설날은 구정(舊正, 설날이 아닌, 음력의 첫날이라는 뜻)이 되어 뒷전으로 밀리게 되었다.

앞에서도 조금 비추었지만, 설날은 새로운 날의 시작(새날이 서는)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그보다는 조상님을 기리는 날(愼日신일: 몸을 삼가는)이라는 의미가 더 크다. 그래서 산자들이 죽은 자(조상)을 위하여 몸을 바르게 하고 욕된 일을 삼가는 날(설)이라는 뜻이다. 즉 설은 새날에 산자(후손)들이 죽은 자(조상)들을 위하여 받든다(서다 →선다 →섬, 여기서 섬이라는 말은 죽은 조상을 위하여 몸을 일으켜 서서 그들을 기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의미가 "설"(새해 첫날은 몸을 단정히 하여 서서 조상님을 뵙는다는)의 개념으로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전통문화까지 강제로 바꾸려 하였던 일제와 박정희, 사람의 정신적 정서마저 지배하려 했던 참으로 무서운 파쇼들이다.

박정희가 죽임을 당하자, 이번에도 나라사람들은 재빨리 우리의 설 명절을 다시 찾아왔다. 우리의 정서가 어디 가나. 박정희 권력이 무서워 어쩔 수 없이 양력설을 쇠던 우리네들. 지금은 아니다. 일제와 박정희식 신정을 쇠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우리의 설 명절은 구정이 아니고 그냥 설 명절이다. 우리의 설날을 구정이라고 하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구정이라는 말은 '일제침략' '독재권력'의 언어적 상징이다.

우리나라의 설날은 음력설을 말함이 아니다. 옛 사람들이 농사를 시작하는 첫날이라는 뜻으로 사용해 왔다. 그래서 이 날은 조상님들한테서 농사지혜와 풍년음덕을 받기 위해 마음과 몸을 깨끗이 하고 맞았다. 그리고 추원보본(追遠報本, 遠은 조상을 말하며, 本은 자신혈통의 근본을 말함. 그래서 조상의 음덕을 기리며, 자신의 근본이 되는 조상의 은혜를 갚는다는 뜻)의 의미에서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집안의 어른들에게 세배와 성묘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또 설날의 운수가 그 해의 운수라고 생각하여 점괘를 들여다보고 풍년(사업의 번창)을 기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갑오년 설날은 과세(過歲) 안녕하십시오.(2014. 1.31. 설날 새벽, 취래원농부)

댓글